'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전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열리는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서예진 기자

시사위크|서초=서예진 기자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검은 양복과 회색 넥타이 차림으로 다시 법정에 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첫마디는 “송구스럽다”였다. 

이 부회장은 25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 출석하는 길에 취재진들이 심경을 묻자 이같이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 부회장은 이후 ‘뇌물인정 액수가 올라가면 형량이 바뀔 수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26일 등기이사 임기가 만료되는데 재판에 따라 앞으로 경영활동 계획이 바뀌는가’, ‘실형 가능성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등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법정으로 향했다.

대법원에서 판결이 난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파기환송심 공판인데다, 이 부회장이 627일만에 다시 법정에 서는 만큼 이날 포토라인 주위에는 이른 새벽부터 100여명에 가까운 취재진들과 시위 인파로 발 디딜 틈 없었다. 총 34석(입석 20석) 뿐인 방청권의 확보를 위한 경쟁도 치열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들도 나와 자리를 지켰다. 이 부회장이 도착하기 직전 함께 기소된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황성수 전 전무 등이 차에 내려 포토라인 앞을 지나는 모습도 포착됐다. 

오전 9시 30분쯤 검은색 카니발이 법원 앞에 도착했고, 다소 긴장한 표정의 이 부회장이 차에서 내렸다. 이 부회장이 법정에 다시 서는 것은 지난해 2월 5일 항소심 선고 이후 600여일만이다. 또 불구속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나온 것은 처음이기도 하다.

이 부회장이 모습을 드러내자 포토라인 주변에 있던 시위 인파 쪽에서는 “삼성은 각성하라”, “부당해고자 복직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반면 “이재용 부회장 힘내세요”라고 응원을 보내는 이도 있었다. 이 부회장은 소란스러운 현장을 지나 조용히 법정으로 입장했다.

취재진 /서예진 기자
이재용 부회장이 25일 지난해 2월 항소심 이후로 처음 법정에 서게 되자, 서울고법 앞은 이른 새벽부터 취재진들로 붐볐다. /서예진 기자

이 부회장은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대상 횡령, 재산국외도피 혐의를 받았다. 그는 지난해 2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석방됐지만, 올해 8월 대법원이 뇌물액을 추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내 2심 재판을 다시 받게 됐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은 이날 재판에서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며 “대법 판결에 대해 유무죄 판단을 달리 다투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주로 양형에 관해 변소할 생각이고, 사안 전체와 양형에 관련된 3명 정도의 증인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대법원이 추가로 인정한 뇌물의 유·무죄를 가리는데 시간을 쏟는 대신, 형량을 줄이는 데 집중해 집행유예 판결을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또 이 부회장의 변호인은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과 관련해 청탁의 대상이 되는 ‘승계 작업’ 개념의 정확성이 필요하다고 요청했고, 특검은 승계 작업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 기록을 증거자료로 내겠다고 밝혔다.

이에 이 부회장 측은 “대법원은 승계 작업을 매우 포괄적으로 인정했고, 부정한 청탁도 포괄적으로 인정해 구체적으로 심리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며 “양형이 핵심이고, 가장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이 역시 승계 작업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기 보다는 형량을 줄이는 데 집중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향후 공판을 11월 22일과 12월 6일 두 차례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첫 번째 기일은 유·무죄 판단에 대한 심리를 하고, 두 번째 기일은 양형 판단에 관한 양측의 주장을 듣기로 했다.

양형 심리가 몇 번에 걸쳐 이뤄질지는 알 수 없으나, 양형 심리가 12월 6일에 끝난다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선고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25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첫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고 있다. /서예진 기자

이 부회장은 재판이 끝난 후 심경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수고하셨다”며 자리를 떴다.

한편 이날 재판부는 이 부회장을 향해 “이 사건은 삼성그룹 총수와 최고위직 임원들이 계획하고 가담한 횡령 및 뇌물범죄”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기업내부 준법감시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어떠한 재판결과에도 책임을 통감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로 심리에 임하고, 심리 중에도 당당히 기업총수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 주시기 바란다”며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을 언급하고, 이 부회장의 ‘총수로서의 선언’을 물어 눈길을 끌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