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반정부 시위대가 경찰의 물대포를 막고 있다. /AP-뉴시스
칠레 반정부 시위대가 경찰의 물대포를 막고 있다. /AP-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칠레가 내달 16일부터 산타아고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던 APEC 정상회의를 취소했다. 열흘 넘게 이어진 반정부 시위로 인해 대규모 국제회의 개최가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APEC 정상회의 참석 예정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불가피하게 일정을 수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각)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11월 APEC 정상회의와 12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개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이 결정이 APEC과 기후변화 당사국총회에 끼칠 불편에 깊은 유감을 전한다”고 밝혔다. 이어 “매우 어렵고 고통스러운 결정”이라면서도 “그 어떤 것보다 자국민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APEC 정상회의 취소는 날로 격화되는 칠레 반정부 시위가 원인이다. 칠레 정부는 지난 6일 유가상승을 이유로 지하철 요금을 30칠레페소 인상하는 조정안을 발표했다. 우리 돈으로 불과 50원 수준의 인상이었지만 그동안 누적돼온 잦은 공공요금 인상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지하철 요금 인상은 그 계기가 됐을 뿐이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사상사도 속출했다.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100만 명 가까운 인파가 거리로 쏟아졌으며 당국과 충돌해 20여 명이 숨지고 약 7,000명이 연행됐다. 칠레에서 일어난 역대 최대 규모의 시위다. 피녜라 대통령이 급히 인상안을 철회하고 양극화 해소 방안을 내놨지만 시민들의 분노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APEC 정상회의가 취소되면서 각국의 국제외교 일정도 유동적인 상태가 됐다. APEC을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만나 미중 무역협상 1단계 합의에 서명할 것이란 관측이 있었지만, 불투명해졌다. 13일 멕시코를 방문해 정상회담을 한 뒤 칠레로 이동할 예정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계획도 일부분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APEC 일정과 장소 변경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출입기자단 문자메시지를 통해 “칠레, 11월 APEC 정상회의 개최취소와 관련해 소식은 들었다”며 “앞으로의 상황을 지켜봐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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