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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자의 줌인
[인터뷰] ‘기생충’ 번역가 달시파켓의 유별난 한국영화 사랑
2019. 10. 31 by 이민지 기자 alswl4308@sisaweek.com
영화 ‘플란다스의 개’(2000)를 시작으로,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설국열차’(2013) 그리고 ‘기생충’(2019)까지. 봉준호 감독이 선택한 번역가 달시파켓 / 사진=김경희 기자
영화 ‘플란다스의 개’(2000)를 시작으로,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설국열차’(2013) 그리고 ‘기생충’(2019)까지. 봉준호 감독이 선택한 번역가 달시파켓 / 사진=김경희 기자

시사위크=이민지 기자 영화 ‘플란다스의 개’(2000)를 시작으로,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설국열차’(2013) 그리고 ‘기생충’(2019)까지. 굵직한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을 번역한 지 10년 차다. 특히 ‘기생충’을 통해선 맛깔스러움을 더한 번역으로 극찬을 얻은 바. 한국인 보다 더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번역가 달시파켓의 이야기다.

한 나라의 문화와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것을 다시금 다른 나라의 언어로 풀어낸다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작업임이 틀림없다. 더욱이 영화 번역의 경우 자막이 뜨는 짧은 시간동안 관객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어야하기에 많은 수고로움이 따르는 작업이다.

한국에 거주한 지 23년 차의 경험을 바탕으로 달시파켓이 번역해낸 작품의 수는 약 150편에 달한다. 여기엔 ‘옥자’를 제외한 봉준호 감독의 대다수 작품들과 나홍진 감독의 ‘곡성’,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등 굵직한 작품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한국 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 / '기생충' 포스터
한국 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 / '기생충' 포스터

특히 그의 번역 실력은 ‘기생충’에서 빛을 발휘하며 세간의 이목을 한 몸에 받았다. “한국 관객들이 봐야만 뼛속까지 100% 이해할 디테일이 곳곳에 포진돼 있어서 (외국에선) 100% 이해하지 못 할거다”라고 말한 봉준호 감독의 우려와는 달리, 달시파켓은 ‘서울대’를 ‘옥스퍼드대’로 ‘짜파구리’를 라면과 우동의 합성어인 ‘RamDong'(Ramen+Udong)으로 재탄생시키며 전 세계가 ’기생충‘에 매료될 수 있게 만든 일등 공신이다.

이쯤되니 달시파켓에겐 ‘봉준호 감독의 숨은 조력자’라는 타이틀까지 생겼을 정도다. 30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한 카페에서 만난 달시파켓은 “봉준호 감독님은 너무 영화를 잘 만드신다. 해외에서도 인지도가 높다. 다른 사람이 (번역을) 했어도 성공 했을거다”라고 겸손하게 말하며 해맑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기생충’ 개봉 이후 큰 주목을 받아서 바쁜 일상을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기생충’ 이후로 높아진 관심도를 실감하고 계신가.
“(예상대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 지금까지는 매년 10편 정도 작품을 번역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좀더 바빠진 것 같다.  현재는 내년 개봉 예정인 영화 ‘킹메이커: 선거판의 여우’ 번역 중에 있다.”

-‘기생충’이 전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이같은 결과를 예상했나.
“봉준호 감독 작품 중에서도 잘 될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일단 영화를 보기 전에 시나리오를 봤었다. 완전 스토리를 다 알고 영화를 봤다. 내용을 알지만 신기하게 봤다. 너무 잘 만들었더라. 사실 해외에서 ‘기생충’ 작품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기생충’ 번역 과정에서 봉준호 감독이 특별히 요구한 것이 있나.
“번역을 시작하기도 전에, 번역하면서 신경 썼으면 하는 부분들을 봉준호 감독님이 먼저 쭉 이야기를 해주셨다. ‘기생충’을 보면 ‘짜파구리’ 같은 어려운 단어도 나오고, 반복적으로 나오는 표현들도 있다. 반복적으로 나오는 표현은 꼭 나올 때마다 똑같이 써달라고 요구하셨다. 또 캐릭터 관계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시면서 ‘이련 관계니까 대사를 통해 이런 느낌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식의 부탁도 하셨던 기억이 난다.”

'봉준호 감독의 숨은 조력자'란 평을 얻고 있는 달시파켓 / 사진=김경희 기자
'봉준호 감독의 숨은 조력자'란 평을 얻고 있는 달시파켓 / 사진=김경희 기자

-‘RamDong’이 ‘기생충’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생각하게 됐나.
“‘짜파구리’란 단어를 들어보기만 했고 먹어보진 않았다. 외국 관객들은 ‘짜파구리’를 모르니 그냥 라면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었지만, 핵심은 저렴한 음식에다 비싼 고기도 섞어 고급스럽게 나오는 음식이지 않나. 영화 속에서 그렇게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또 장면 중에 패키지 장면(특정 라면봉지를 줌인한 장면)이 나와서 라면과 우동을 합친 ‘RamDong’이라고 표현했다. 처음엔 외국 관객들이 몰랐다가 나중에 패키지 장면을 보고 많이 공감했던 것 같다. 요즘엔 ‘RamDong’이라고 유튜브에 치면 레시피 설명 영상도 많이 나와있더라.(웃음)”

-‘기생충’ 속에는 한국 사회적 문제가 곳곳 스며들어가 있다. 해외에선 공감이 어려울 수도 있는데, 통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제 생각엔… 아주 한국적인 작품이지만, 영화에서 나오는 감정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든 부분인 것 같다. ‘돈 없으면 불안한 마음’이 전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었던 것 같다.”

- 번역가로 활약하신 지 20년 차다. 한국영화 번역의 시작이 궁금하다.
“맨 처음엔 한국에서 기자로 일을 했었다. (기자일을 하면서) 한국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90년대 후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인터넷에  (영어로 된) 한국영화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작은 웹사이트를 만들어 한국영화 리뷰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찾았고, 메일도 많이 받으면서 조금씩 커졌다.

그러다 우연히 ‘플란다스의 개’ 검수를 맡게 되며 봉준호 감독님을 처음 만나게 됐다. 그 이후부터는 봉 감독님께 직접 연락이 왔다. 번역을 시작한 것은 ‘살인의 추억’부터인 것 같다. 당시 아내와 같이 시작했다. ‘살인의 추억’은 아직까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영화다.“

'옥자'를 제외한 봉준호 감독 대다수 작품을 번역한 달시파켓 / 사진=김경희 기자
'옥자'를 제외한 봉준호 감독 대다수 작품을 번역한 달시파켓 / 사진=김경희 기자

-여럿 감독들과 작업을 함께 했지만 그중에서도 봉준호 감독 작품을 많이 번역했다. 달시파켓이 본 봉준호 감독은 어떤 사람인가.
“봉준호 감독님은 영화를 만들기도 전에 어떻게 나올지 다 알고 있는 것 같다. 예컨대, ‘기생충’의 경우 2월에 번역을 했다. 5월에 개봉했으니 (보통) 2월엔 후반 작업을 하거나 CG도 완성되지 않을 때다. 다른 감독님들 같은 경우엔 계속 조금씩 수정한다. 대사도 바꾸고 편집도 바꾸고 지속적으로 수정하는 반면, 봉준호 감독은 2월에 바뀌는 것 없이 모든 게 끝나 있었다. 똑똑하신 분인 것 같다.”

-디테일한 번역으로 호평이 많다. 번역을 하면서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
“번역을 하면서 고민해야할 것은 여러가지다. 짧은 문장 안에 많이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자막은 순간적으로 보여졌다 없어지는거라 바로 이해가 가능해야한다.

번역은 항상 괜찮게 나왔다고 생각해도 여러 번 수정 작업을 거쳐야한다. 2~3번 수정하면 확실히 좋아진다. 모국어로 해도 짧은 문장 안에 많이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 않나.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한국영화를 번역하면서 어려운 부분은 무엇인가.
“가장 어려운 것은 사투리다. 한국 관객은 딱 들으면 전라도인지 경상도인지 알지 않나. 하지만 그 정도까지 번역을 할 순 없다. 표준어인지 아닌지 정도만 보여줄 수 있다. 더 많이 하려고 하면 결국 어색하게 나오더라. 영화 ‘비밀은 없다’(2016) 번역을 했었다. ‘비밀은 없다’에서 손예진이 평소 표준어를 쓰다가 스트레스 많이 받으면 사투리 쓰는 장면이 나온다. 이경미 감독님은 그 느낌을 살리기 원하셨다. 번역하기가 어려웠다. 글씨로 표현해야 하다 보니 한국어처럼 찰지게 표현은 안된다. 갑자기 높은말 쓰다가 반말 쓰는 부분도 번역하기 어렵다.”

-보통 한 작품 번역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소요되나.
“요즘엔 한국영화가 대사량이 많아지는 것 같다(웃음). 재밌는 것은 상업영화와 독립영화가 큰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약 2배 정도 차이가 난다. 대사를 통해 정보가 전달되는 트렌드가 있는 것 같다. 주된 상업영화는 일단 1주일~1주일 반 정도 걸린다. 이후 수정도 한다. 저예산독립영화는 6일정도 소요된다. 수정은 감독님들 스타일에 따라 다르게 진행된다. 영어를 좀 잘하시는 감독님 같은 경우엔 자막 안에 많은 걸 넣고 싶어 하신다.”

-한국영화의 매력이 무엇이라 생각되나.
“일단 한국 관객은 영화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편이다. 한국 관객들은 못 만들면 못 만들었다고 표현을 하지 않나. 다른 나라 감독들과 이야기하면 한국 관객의 반응이 부럽다고 말한다. 세대마다 다르긴 하지만 (관객이) 영화에 대한 열정이 있다는 것은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또 한국영화엔 감정이 강한 느낌이 든다. 전달하는 방식이 직설적이기 때문인 것 같다. 슬프면 울고 소리치고 하지 않나. 직접적으로 표현함에 있어 느껴지는 에너지가 있는 것 같다. 이게 약점이 될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한국영화엔 특별한 느낌이 있는 것 같다.”

유창한 한국어 실력으로 인터뷰를 하는 달시파켓 / 사진=김경희 기자
유창한 한국어 실력으로 인터뷰를 하는 달시파켓 / 사진=김경희 기자

-한국영화가 개선해야할 부분은 뭘까.
“한국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비슷한 영화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스토리텔링방식이 비슷하다. 만드는 시스템이 비슷하기 때문인 것 같다. 소재는 다양해도 느낌이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시스템을 바꿔야 다양한 영화들이 나올 수 있는 것 같다.”

-국내 독립‧저예산 영화를 위한 시상식인 ‘들꽃영화상’도 운영할 정도로 독립 영화를 특별히 애정 하는 이유가 있나.
“물론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모두 좋다. 다만 독립영화가 한국 문화에 대해 좀 더 솔직하게 보여주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상업영화에 나오는 한국은 화려하고 예쁘지만 100% 믿을 수 없는 모습이 있지 않나. 독립영화를 보면서 한국 문화를 다양하게 알게 되는 것 같다. 또 독립영화에 좋은 작품이 많은데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 봤으면 하는 마음을 절로 가지게 되더라. 어느 정도 홍보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가장 성취감이 드는 순간이 언제인가.
“항상 그런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작업한 영화를) 관객들 속에서 보면 기분이 좋다. 내가 작업한 글들이 나오는 걸 보면 신기하면서도 계속 수정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웃음) ‘기생충’ 개봉했을 때도 외국 교수들과 함께 자막 상영으로 봤었다. ‘기생충’ 같은 경우는 열심히 작업해서 아쉬운 점은 많이 없었다. 편하게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다.”

-번역가를 비롯 한국영화소개 홈페이지 운영, 들꽃영화상 주최, 부산아시아영화학교 교수까지. 한국영화를 알리기 위해 다양하게 활동 중이다. 달시파켓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미래를 생각하면, 하고 있는 것 중 하나를 포기하고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데 쉽지 않은 것 같다. 기회가 생기면 영화 만드는 것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큰 영화 말고 저예산 영화나 독립영화를 제작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