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정상회의에 참석해 각국 정상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정상회의에 참석해 각국 정상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 호주, 뉴질랜드 등 15개국이 참여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협정문(RCEP)이 타결됐다. 전세계 인구의 절반, GDP의 3분의 1이 참여하는 메가 FTA로 규모로만 따졌을 때 유로존 보다도 크다. 한반도 주변 4강에서 벗어나 신남방정책을 추진하며 아세안 지역으로 활로를 찾았던 문재인 정부는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라며 크게 환영하는 입장이다.

지난 4일 아세안+3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태국을 방문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협정이 타결되자 “서로의 경제발전 수준, 문화와 시스템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하나의 경제협력지대를 만들게 됐다”며 “이제 무역장벽은 낮아지고, 규범은 조화를 이루고, 교류와 협력은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 중국의 대아세안 영향력 확대 전망

15개국 정상들이 서명한 협정문에는 특히 전자상거래, 지식재산권 부문이 포함되는 등 무역환경 변화를 반영한 최신규범이 들어있어 기존 한-아세안 FTA를 보완할 것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물론 협상이 완전히 타결된 것은 아니다. 참여국들은 이번 협정문에 대한 법률검토 후 시장개방 협상을 마무리해 2020년 최종 서명할 예정이다. 중국 인민일보는 “15개국이 전체적으로 협상을 마무리한다고 공식 선언했다”며 “내년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협정이 체결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보도했다.

당초 RCEP은 아세안 시장을 석권하고 있던 일본에 의해 2011년 시작됐다. 중국의 아세안 및 파푸아뉴기니 등 태평양 섬 국가 진출을 견제하기 위한 차원에서다. 중국은 이를 역으로 이용해 동아시아 지역 내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강하게 추진했고, 미국이 주도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충돌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수립 후 미국이 TPP 탈퇴를 선언하면서 급속도로 RCEP 쪽으로 무게추가 옮겨갔다.

중국이 주도한 측면은 있지만, 한국도 적극적인 입장이었다. 신남방정책을 표방한 문 대통령은 2017년 11월 한-인도네시아 정상회담, 2017년 12월 한중 산업협력 충칭포럼, 2018년 5월 한일중 비즈니스 포럼, 2018년 11월 아세안 정상회의 등에서 RCEP의 조속한 타결을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신남방정책에 있어 RCEP은 매우 중요하다”고 했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RCEP 논의에 탄력을 붙였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각국이 미국이 없는 아세안 질서를 고민하기 시작했으며, 이를 대신해 ‘자유무역 수호자’를 자처한 중국에 의존도가 커졌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보호무역주의의 바람이 거세다”고 지적했는데, 그 진원지는 다름 아닌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세안 경시 논란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2년 연속 아세안 정상회의에 불참하는 대신 로버트 오브라이언 국가안보보좌관을 보냈는데, 2011년 미국이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가입한 후 보낸 인사 중 서열이 가장 낮다. 2013년을 제외하고 임기 내내 참석했던 오바마 전 대통령과는 다른 행보다.

◇ 한미동맹 강조하는 미국의 속내

강경화 장관을 만나기 위해 외교부를 방문한 크라크 차관(우)과 스틸웰 차관보(좌). /뉴시스
강경화 장관을 만나기 위해 외교부를 방문한 크라크 차관(우)과 스틸웰 차관보(좌). /뉴시스

상황이 이렇게 흐르자 미국이 조급해졌다. 특히 ‘한국’의 의중에 관심이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미 국무부는 RCEP 협정문 타결과 같은 날인 4일(현지시각)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를 발표하고 한국을 호주 일본에 이어 세 번째 중요 협력국가로 명시했다. 한국을 배제하고 일본을 중심으로 호주·인도와 연계해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이라는 한국 측의 의심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간접적으로는 ‘지소미아 연장’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 앞서 청와대는 일본이 수출규제에 나서자 ‘지소미아 연장종료’ 카드를 내밀었다. 미국의 중재를 이끌어내기 위함이었다. 이면에는 한·미·일 공조와 인도태평양 전략 중 미국이 어느 것을 더 우선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보려는 속셈도 있었다.

김현종 안보실 2차장은 당시 한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에서 “한미일 공조를 중시하는 것인지, 재무장한 일본 위주로 외교정책을 운영하려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며 “한·미·일 공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관여를 할 거고, 무장한 일본 위주로 나머지 아시아 국가를 종속변수로 대아시아 정책을 한다면 (관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이와 관련해 현재 미국 측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크라크 미 국무부차관이 6일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면담하고 스틸웰 차관보가 김현종 안보실 2차장과 만난 것이 대표적이다. 뿐만 아니라 드하트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 수석대표는 비공식 방한해 국회 및 언론 관계자들과 만나 한국의 여론분위기를 살펴볼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이날 만남에 대해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간 연계 협력을 구체화 해나가는 것을 포함해 양국 간 협력을 내실있게 확대해 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다”고 밝혔으며, 청와대는 “한미 양국 간 동맹 현안에 대해 구체적이고, 건설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협의를 가졌다”며 “김현종 차장은 (방위비분담, 지소미아) 현안에 대한 우리 입장을 상세히 설명했으며, 스틸웰 차관보와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한미 동맹이 동북아 안보에 있어 핵심축임을 누차 강조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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