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조국사태’에 휩쓸리는 바람에 새롭게 알게 된 게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무려 15개국의 지도자가 30~40대일 정도로 정치 지도자들이 젊어지는 게 세계적 추세라는 것도 그중 하나다. 60대 이상이 지도자인 나라는 한국, 미국 등 몇 나라뿐이며 한국은 국회의원 연령도 국제의원연맹(IPU) 가입 국가 중 가장 높은 편이라는 것도 새롭게 알았다. 한국의 20~30대 의원은 겨우 3명으로 300명인 국회의원 중 단 1%가 전체 유권자의 35.7%를 대변하는 셈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조국사태’를 지켜봐온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이제는 한국에서도 젊은 사람들이 정치의 주류가 되고, 그들 중에서 다음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젊은 정치인’들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다가 조선일보 올 1월 1일자에서 이런 통계를 찾아냈다.

그런데, 검색을 하면서 젊은 지도자는 선진국이나 그 언저리에 있는 나라에서만 등장한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물론 김정은처럼 세습했거나 군대를 동원해 정권을 찬탈한 사람은 제외다. 다음달 10일 스웨덴에서 열릴 올해 노벨상 시상식에서 100번째 노벨평화상을 받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에티오피아 총리 아비 아머드 알리가 대표적이다. 업적으로 따지면 세계의 젊은 지도자 가운데 올해 마흔세 살인 그가 가장 두드러져 보인다.

그는 작년 4월에 총리가 된 즉시 ‘국가비상사태’를 해제하고, 테러리스트로 지목돼 해외로 도피한 반대자들의 귀국을 허용했으며 정치범 수천 명을 석방했다. 여성을 각료 절반(10명)에 임명해 남녀 동수 내각을 구성했고, 누구나 인터넷과 방송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정보 유통을 자유화했다. 자신의 집무실은 물론 정부 청사에서 정보요원과 현역 군인들을 철수시켜 정부를 문민화했다. 한국판 위키피디아인 ‘나무위키’에 따르면 에티오피아는 성장률이 아프가니스탄보다 낮았으나 최근에는 추월했다고 한다.

외교·안보에서도 탁월한 업적을 쌓았다. 에티오피아에서 분리·독립했으나 국경분쟁으로 유혈사태가 그치지 않았던 에리트레아와 과감한 협상을 통해 평화를 구축했다. 양국에서 무려 7만 명이 목숨을 잃은 양국 간 국경분쟁은 에리트레아가 요구해온 지역을 에티오피아가 양보함에 따라 종식됐다. 이 양보안은 그가 앞장서서 만들었고, 반대자들도 그가 앞장서서 설득했다. 그는 또 작년 6월에는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를 방문해 모하메드 압둘라히 모하메드 소말리아 대통령과 양국 관계 개선에 합의했다. 소말리아가 1977년 에티오피아를 침공하는 바람에 두 나라는 수십 년째 껄끄러운 관계였다.

이밖에 올해 3월에는 에리트레아 대통령과 함께 내전의 상처가 깊은 남수단을 찾아 이 나라에 평화를 구축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또 지난 4월 독재자 오마르 알-바시르 전 대통령의 축출 이후 혼란이 이어지던 수단에서 권력이양 협상을 중재했다. 결국 수단 군부와 야권은 올해 8월 아비 총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권력이양 협상에 최종 서명했다. 유혈과 혼란의 동북 아프리카에 평화가 정착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업적과 공헌 때문에 그는 집권 9개월째였던 올 1월에 이미 아프리카와 아랍국가 지도자들에 의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됐으며, 노벨위원회는 301명의 평화상 후보 추천자(국제기구 등 단체 78개 포함) 중에서 그를 골라냈다.

사실,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가장 유력했던 사람은 열여섯 살의 어린 나이로 세계 정치지도자들에게 환경보호를 역설했던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였다. 런던의 도박사들도 수상 확률을 툰베리 75%, 아비 총리 25%로 예측했었다. 노벨위원회가 툰베리 대신 아비 총리를 고른 이유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과감하면서도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정치·경제·사회 개혁으로 높은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평화정착에 앞장선 점을 높이 샀을 것이라는 게 나의 ‘합리적인 추정’이다.

아비 총리는 하늘이 어느 날 갑자기 내려준 지도자는 아니다. 그는 10대일 때부터 정당에 가입, 타협과 양보가 정치의 기본 기술임을 배웠다. 집권 초기 무장군인들이 그의 정치에 불만을 갖고 관저를 포위하자 그들과 함께 팔굽혀펴기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었고, 별 탈 없이 그들을 돌려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군인들과의 팔굽혀펴기도 그가 젊었기에 가능했던 것인가?)

그런데, 나는 왜 “한국에는 반드시 젊은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는 말을 이리 힘들게 하고 있나? 그냥, “젊은 정치가 나라를 바꾼다”고 말하면 될 것을.

한국의 젊은이들은 경험이 없다고? 천만의 말씀. 그들에게 부족한 경험은 부동산 투기 경험, 자녀 스펙 날조·위조 경험, 논문 허위 작성 경험, 뇌물수수 경험 같은 것들일 것이다. 그런 경험은 없을수록 좋은 것이고, 정말 부족한 경험은 그들에게 당신들의 자리를 내주기만 해봐라. 필요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심지어는 당신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배우려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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