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저계급론’은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상징하는 신조어다.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정해져있다는 슬픈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헌법엔 계급을 부정하는 내용이 담겨있지만, 현실에선 모두가 수저계급론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중에서도 ‘주식금수저’는 꼼수 승계와 같은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세상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주식금수저’ 실태를 <시사위크>가 낱낱이 파헤친다.

최근 오너일가가 구속된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주식금수저 리스트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재벌가다.
최근 오너일가가 구속된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주식금수저 리스트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재벌가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지난 21일, 조현범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및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이 전격 구속됐다. 하청업체로부터 납품을 대가로 뒷돈을 받고, 계열사 자금을 빼돌려 개인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다.

검찰은 한국테크놀로지그룹(구 한국타이어그룹)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 중 범죄 혐의를 포착한 국세청의 고발로 수사에 착수했으며, 수사과정에서 조현범 사장의 비리를 확인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로써 후계자로 입지를 구축해온 조현범 사장은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오너일가 사상 최초로 구속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

이런 가운데, 조현범 사장 자녀들의 주식보유 실태도 눈길을 끈다. 오너일가 3세인 조현범 사장이 전형적인 재벌가 금수저 행보를 이어왔듯, 그의 자녀들도 태생부터 주식금수저 대열에 이름을 올려오고 있다.

조현범 사장의 딸 A양은 2003년생이다. A양은 현재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주식 1만5,351주와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주식 3,508주를 갖고 있다. A양의 남동생이자 조현범 사장의 장남인 2006년생 B군도 비슷한 규모의 주식을 보유 중이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주식 1만5,294주와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주식 3,495주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가진 주식의 가치는 현재 시가로 약 6억원에 달한다. 중·고등학생의 나이에 이미 억대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마저도 최근 국내 주식시장 전반의 하락세와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주가 약세가 이어지면서 크게 줄어든 수치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주가가 6만원 안팎에 이르렀던 지난해 3월엔 주식가치가 10억원을 훌쩍 뛰어넘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조현범 사장과 함께 3세 승계의 한 축을 맡고 있는 형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의 두 자녀 역시 이들과 똑같은 행보를 걸어왔다. 조현식 부회장의 두 자녀도 각각 2003년생과 2006년생으로 나이가 같고, 보유 중인 주식규모도 거의 같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이들이 처음 주식을 취득한 시점과 그 이후 행보다. 4명 모두 2007년 처음으로 당시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주식을 취득했다. 첫째 자녀들은 한국나이로 4살, 둘째 자녀들은 2살에 불과하던 시점이다.

이들은 처음 주식을 취득할 당시 같은 날짜에 장내매수를 이용했고, 같은 규모의 주식을 사들였다. 투입된 자금은 각각 5,000만원가량이다. 이후에도 이들은 2010년까지 늘 같은 날 주식을 매입했고, 비슷한 규모를 유지했다. 투입된 자금은 총 3억원 수준으로 파악된다.

이들이 보유한 주식이 중대 변곡점을 맞은 것은 2012년이다. 당시 한국타이어그룹(현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지주사 체제 전환을 추진하면서 분할이 이뤄졌다. 이에 따라 이들 역시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와 한국타이어 두 곳의 주식을 모두 보유하게 됐다. 이 두 회사는 최근 사명을 각각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와 한국테크놀로지그룹으로 변경한 상태다.

물론 이들의 주식보유 자체가 법적으로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정과 정의가 화두로 떠오른 시대에 재벌의 씁쓸한 민낯을 드러낸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또한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 고군분투하고 있는 서민 및 청년들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아울러 각종 편법적 활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적잖은 재벌가 및 중견기업 오너일가들이 주식을 증여 및 승계에 활용한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논란에서 조현범 사장 역시 자유롭지 않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오너일가 3세들이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준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계열사가 거둔 수익이 배당 등을 통해 고스란히 그들에게 돌아갔고, 핵심 상장 계열사 지분 취득에 투입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오너일가 4세 미성년자들도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긴 마찬가지다. 이들 역시 이미 적잖은 자산증대 효과를 보고 있고, 지주사 체제 전환 과정에서 그룹 핵심 상장사 두 곳의 주식을 모두 보유하게 됐다.

사상 초유의 오너일가 구속으로 중대기로를 맞은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하지만 그들의 대를 이어나갈 아이들의 손엔 여전히 금수저가 반짝이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