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조가 새 집행부로 실리파를 선택했다. 사진은 2017년 당시 파업출정식 모습. /뉴시스
현대자동차 노조가 새 집행부로 실리파를 선택했다. 사진은 2017년 당시 파업출정식 모습.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국내를 대표하는 ‘귀족노조’이자 ‘강성노조’로 불리며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현대자동차 노조에서 변화의 기류가 포착되고 있다. 올 여름 무분규로 임단협을 매듭지은데 이어 최근 치러진 새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실리’를 앞세운 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현대차 노조에서 나타난 변화의 바람이 국내 노동계 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주목된다.

◇ 6년 만에 실리파 집행부 선택

현대차 노조는 지난 3일 8대 집행부 결선 투표를 마무리 지었다. 그 결과 새롭게 노조를 이끌게 된 주인공은 이상수 후보다. 총 4명의 후보 중 ‘실리파’로 분류된 이상수 당선자는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데 이어 2차 결선투표에서 49.91%의 표를 얻어 최종 당선됐다. 결선투표에서 2위와의 차이는 405표(전체 투표 참가자 4만3,755명)에 불과했다.

이로써 현대차 노조는 2013년 당선된 이경훈 전 노조위원장 이후 6년 만에 실리 성향의 후보를 수장으로 뽑게 됐다. 이상수 당선자는 이경훈 위원장 시절 수석부지부장을 맡은 인물이기도 하다.

이상수 당선자는 선거 과정에서 ‘이제는 실리다’, ‘투쟁을 넘어 실리’와 같은 구호를 전면에 내세운 바 있다. 특히 무분별한 파업을 지양하고, 단체교섭 노사 공동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2개월 내 교섭타결을 원칙으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초심으로 돌아가도록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고, 성희롱·성차별 고발센터를 설치해 여성 조합원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공약도 제시했다.

이는 그동안 현대차 노조를 향했던 곱지 않은 시선을 일정 부분 불식시킬 수 있는 내용이다.

현대차 노조 조합원들이 새 집행부 투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현대차 노조
현대차 노조 조합원들이 새 집행부 투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현대차 노조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해온 현대차 노조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귀족노조’·‘강성노조’라는 이미지가 굳어져왔다.

물론 더 나은 노동여건을 쟁취해나가고 이를 위해 파업 등의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였다. 현대차 노조가 열악하기 짝이 없었던 국내 노동여건을 끌어올리는데 있어 선봉장 역할을 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수천만원대 연봉과 각종 복지혜택을 누리며 관성적으로 파업에 나서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에만 몰두하는 모습은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일자리를 세습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엔 관심을 두지 않던 모습이나 지역 경제 활성화 및 청년 일자리 확충을 위해 추진된 ‘광주형 일자리’에 반대한 것 등은 현대차 노조를 향한 여론을 더욱 싸늘하게 만들었다.

이는 최근 화제를 모은 하부영 현대차 노조 현 지부장의 발언에도 반영된 바 있다. 하부영 지부장은 지난달 ‘노동조합의 사회연대전략’ 토론회에서 “현대차 노조는 32년 이상 투쟁해 연봉 9,000만원에 무상의료·교육을 쟁취하고, 노조가 오를 수 있는 최정점에 올랐다. 세금으로 보면 대한민국 3% 이내, 임금으로 보면 10% 안에 들어간다”고 언급하며 “우리만 잘 먹고 잘사는 임금 인상 중심의 투쟁은 옳지 않다. 우리가 사회적 고립을 극복하지 못한 채 세상을 바꾸자고 하는 것은 사기에 가까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하부영 지부장의 이러한 발언은 사회적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통렬한 반성문’으로 받아들여지며 적잖은 화제를 모았다.

현대차 노조는 앞서 올 여름에도 달라진 행보로 눈길을 끈 바 있다. 현대차 노조는 매년 그렇듯 올해도 임단협을 두고 사측과 대립했고, 파업 수순을 밟았다. 그런데 한일관계 악화로 산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드리우자 사측과의 집중교섭 끝에 무분규로 임단협을 매듭지었다. 현대차 노사가 무분규로 임단협 타결에 성공한 것은 8년 만의 일이었다.

이상수 당선자의 당선엔 자동차산업 전반에 닥친 대대적인 변화에 대한 걱정도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4차산업혁명과 맞물려 자동차산업에 큰 변화가 몰려오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며, 인력 감축은 그 중 빼놓을 수 없는 중대 사안으로 꼽힌다. 실제 전 세계 주요 자동차 제조사들이 인력 감축 계획을 발표하고 있고, 현대차 역시 외부 자문위원들로부터 2025년까지 제조인력을 40%까지 줄여야 한다는 ‘경고’를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경일변도의 투쟁보다는 실리적 대책 마련의 필요성이 더 힘을 얻은 것을 보인다.

◇ 여전히 남아있는 갈등요인

물론 ‘실리파’가 전면에 서게 됐다고 해서 갈등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상수 당선자가 ‘실리’를 강조하고 다른 후보들에 비해 ‘실리파’로 분류된 것은 사실이지만, 노사 사이에 민감한 공약도 적지 않았다. 조합원 일자리 안정 및 신규 일자리 창출을 위한 30만대 규모의 국내 신공장 증설, 해외공장 물량의 국내 유턴, 정년 최장 65세 연장 등은 노사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릴 수 있는 사안이다.

새 노조 집행부의 득표율이 과반수를 넘지 못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현대차 노조 역사상 처음으로 과반수를 득표를 넘지 못한 집행부다. 과거엔 2차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최다득표자를 두고 3차투표까지 치른 바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규정이 2016년 개정되면서 이상수 당선자는 과반수가 넘지 않는 득표에도 노조를 이끌게 됐다. 새 집행부의 향후 활동에 있어 진통의 여지가 남아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한편, 이상수 신임 현대차 노조지부장은 내년 1월 1일부터 취임하게 되며, 임기는 2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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