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유리천장(glass ceiling).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코 깨뜨릴 수 없는 장벽’을 뜻하는 경제용어다. 주로 ‘여성이 고위직 승진을 막는 조직 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하는 말로 사용된다. 1979년 미국의 경제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여성 승진의 어려움을 다룬 기사에서 이 용어가 첫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계적으로 ‘유리천장 깨기’는 화두로 떠오른 지 오래다. 미국 정부는 1991년 유리천장위원회(The Federal Glass Ceiling Commission)를 설립해 여성의 사회 진출과 승진 과정에서 차별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 영국, 독일 등 다른 주요 선진국들도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아예 여성 임원 할당제를 도입한 국가도 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한국도 유리천장에 대한 사회적 문제 인식은 날로 커지고 있다. 다만 실질적인 성과에 있어선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면 낙제점 수준에 머물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3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집계해 발표한 ‘2019년 유리천장 지수’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 중 꼴찌를 기록했다. 남녀 임금격차가 크고, 관리 관리자와 여성임원 비율이 낮은 것이 주요한 영향을 끼쳤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났지만 한국 내에서 여성의 ‘유리천장 뚫기’는 힘겹다. 당시 유리천장지수 평가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 관리자 비율은 12.5%, 여성 임원은 2.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OECD 평균(여성 관리자 비율 31.9%, 임원 비율 22.9%)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노력을 전혀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2022년까지 여성 고위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원 비율을 각각 10%, 20%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민간 기업에도 여성 관리자 확대를 독려해왔다. 이에 보조를 맞춰 여성 리더 육성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임원 등용 확대 계획을 밝히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다만 많은 직장인들이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최근 잡코리아과 알바몬과 함께 직장인 남녀 773명을 대상으로 ‘유리천장’을 주제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직장인 72.3%가 ‘회사에 유리천장이 존재한다’고 답변했다. 성별에 따라 느끼는 유리천장 유형은 조금 달랐다. 남성의 경우, ‘학벌의 벽’이 높다고 가장 많이 응답한 반면, 여성은 ‘성별의 벽’에 대한 응답이 높았다.  

바야흐로 인사 시즌이다. 연말을 맞아 기업들이 줄줄이 정기 인사를 단행하고 있다. 주요 대기업들이 여성 임원 등용한 사례도 포착되고 있지만, 그 비율이 여전히 낮은 게 현실이다. 최고경영진까지 오르는 사례는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수준이다. 최근 발표된 대기업 인사에서도 여성 임원 임명 사례는 일부 있었지만 CEO 등용 사례는 찾기 어려웠다. 여전히 높은 ‘유리천장의 벽’이 실감된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유리천장지수가 7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 중이다. 말로만 양성 평등을 외칠 것이 아니라, 충분한 제도적 보완책과 의지를 갖고 있는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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