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트로트에 빠져 지낸다. 조명섭이라는 청년 덕분이다. 그는 올해 스물하나로 얼마 전 KBS의 특집 프로그램 ‘트로트가 좋아’에서 우승했다. 트로트를 좋아하는 사람, 트로트 좀 부르고 들을 줄 안다는 사람들은 그가 ‘신라의 달밤’과 ‘애수의 소야곡’을 부르는 모습에 한결같이 “현인이 환생했다”, “남인수가 환생했다”고 소름끼쳐 했다. 하춘화 설운도 박현빈 등 심사를 맡은 트로트 가수들은 그의 목소리와 표정, 제스처를 보면서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 트로트 가수로 이 프로그램 MC를 맡았던 장윤정도 벌린 입을 오랫동안 다물지 못했다.

그가 노래하는 장면을 편집한 유튜브 영상도 수십 개나 돌아다닌다. 어떤 사람은 “스물한 살밖에 안 된 젊은이가 저렇게 노숙하게 잘 부를 수 있다니!”라며 놀라워하고, 트로트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문화연구가는 “조명섭의 노래에는 역사성이 있다”라고 분석했다. 현인과 남인수의 노래에 일제시대와 6.25를 체험한 비극이 녹아들어 있는 것처럼 조명섭의 노래도 그렇다는 것을 ‘역사성이 있다’고 평한 것이다. (남인수는 1918년 생으로 1936년 가수생활을 시작했으며, 그가 1938년에 취입한 ‘애수의 소야곡’은 남인수보다 한 해 늦게 태어난 현인이 1947년 부른 ‘신라의 달밤’과 함께 트로트의 고전으로 꼽힌다.)

나는 처음엔 조명섭도 기획사가 만들어낸 스타인 줄 알았다. 앳된 얼굴에 높이 빗어 올린 올백 머리, 몸에 붙는 슈트 차림에 단정한 넥타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노숙한 말투와 웃음이 떠나지 않는 표정, 세련된 제스처…, 트로트에 최적화된 이 모든 것으로 미뤄 발빠른 연예기획사가 얼마 전부터 다시 유행하는 트로트 바람을 타고 시장에 내놓은 ‘트로트 아이돌’인 줄 알았다.

가수이건 배우이건 연예계 스타는 전부 그렇게 만들어지는 걸로만 알았던 나는 조명섭이 홀로 자신의 창법을 만들어내고 발성을 공부해왔으며, 그건 집안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를 보는 눈도 달라졌다. 유망 트로트 가수로서만이 아니라, 역경과 고난을 견뎌낸 상징으로서 그를 보게 되었다.

올해 21세로 얼마 전 KBS의 특집 프로그램 ‘트로트가 좋아’에서 우승한 조명섭(좌)과, 올해 수능 만점을 받으며 화제가 된 경남 김해외국어고등학교 3학년 송영준 군. / 사진=KBS 방송화면 갈무리, 뉴시스
올해 21세로 얼마 전 KBS의 특집 프로그램 ‘트로트가 좋아’에서 우승한 조명섭(좌)과, 올해 수능 만점을 받으며 화제가 된 경남 김해외국어고등학교 3학년 송영준 군. / 사진=KBS 방송화면 갈무리, 뉴시스

그는 집안 형편이 어떻게 어려운 건지에 대해서는 자세히는 말하지 않았지만 돌아다니는 유튜브 영상을 보면 지방의 고등학교 3학년 졸업 파티, 시골 마을 향우회 같은 곳에서 노래를 불렀다. 어디서나 잘 부르고 최선을 다하며 웃고 있었지만, 훨씬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더 큰 ‘행사’를 뛰고도 남을 재능이 있는 그가 작은 무대만 돌아다녔다는 게 안타까웠다. 그는 우승자가 된 소감에서 한때 포기할까 생각도 했던 노래를 다시 부르게 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도 했다.

KBS에는 외할머니와 함께 출연했다. 하체 건강이 안 좋아 두 살 때부터 아홉 살 때까지 네 번이나 큰 수술을 받았는데 그때마다 외할머니가 옆에서 지켜주었다고도 말했다. 그런 이야기들로 그의 어려운 처지가 어떤 것인지를 짐작할 뿐이다.

올 수능만점자 송영준도 역경과 고난을 이겨낸 젊은 상징이다. 어떤 교육 관계자는 수능만점자를 높이 띄워주는 것은 성적 지상주의를 부추기는 등 비교육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지만 송영준 같은 젊은이는, 일부러 찾아 나서지는 못했을망정, 알게 된 이상은 더 많은 사람이 알도록 하는 것이 내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송영준의 어머니는 식당에서 힘든 일을 하고 있다. 송영준은 어쩌다가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이 모이는 김해외고에 들어갔지만 첫 시험에서 127명 중 126등을 했다. “괜히 외고에 왔나보다. 이럴 바에는 공고로 전학해 일찍 돈을 벌어 어머니를 도와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좌절했지만 담임선생이 달래고 장학금을 받게 해줘 다시 공부에 몰두했다.

사교육이니 스펙 쌓기니 따위는 애초부터 그와는 관계없는 것들이었다. “한 시간 먼저 일어나고 한 시간 늦게 잠자리에 들면서 열심히 했을 뿐”이라는 송영준 인터뷰 기사에는 “장학금은 이런 학생에게 줘야 하는 것”이라는 댓글이 수두룩하다. 실제로 장학금을 주겠다는 곳도 줄줄이 나오고 있다.

조명섭과 송영준, 이 두 청년을 더 자랑하고 싶다. 바르게, 열심히 사는 게 여전히 가치가 있는 삶임을 이들이 나에게 가르쳐줬으니까 하는 말이다.

참, 송영준은 “정의로운 검사가 되어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잡거나 의사가 되어 어머니를 편히 모시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가 보고 느낀 우리 사회의 부조리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또 송영준처럼 재능은 있으나 집안 형편이 따르지 못해 공고에서 직업기술을 배우는 학생들이 실제로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들에게도 송영준처럼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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