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14일 94세의 일기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1925년생인 구 명예회장은 고 구인회 창업회장의 첫째 아들로, 1970년부터 25년간 그룹의 2대 회장을 지냈다. 사진은 당시 럭키 청주공장(현 LG화학) 방문 모습. /LG그룹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14일 94세의 일기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1925년생인 구 명예회장은 고 구인회 창업회장의 첫째 아들로, 1970년부터 25년간 그룹의 2대 회장을 지냈다. 사진은 당시 럭키 청주공장(현 LG화학) 방문 모습. /LG그룹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지난 14일 별세한 고(故)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빈소에 각계의 추모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장례 사흘째인 16일까지 서울 시내 모 병원에는 구 명예회장을 기억하는 조문객들의 발걸음이 계속됐다.

94세의 일기로 별세한 구 명예회장의 장례는 가족장 형식으로 4일장이 진행된다. 발인은 오는 17일 오전이며 화장 뒤 안장된다. 비공개 가족장 방침에 따라 장지는 공개하지 않을 예정이며, 조문·조화를 사양하고 있지만 범LG가(家)나 고인과 인연이 깊은 조문객의 방문은 수용했다.

빈소 앞에는 커다란 가림막을 설치해 내부를 볼 수 없게 막았다. 가림막에는 ‘차분하게 고인을 애도하려는 유족의 뜻에 따라 조문과 조화를 정중히 사양하오니 너른 양해를 바랍니다’ 문구가 쓰여있다.

빈소 내에는 문재인 대통령, 문희상 국회의장, 이낙연 국무총리, LG 임직원 일동, GS 임직원 일동, 구자두 LB인베스트먼트 회장, 구자원 LIG 명예회장, 구자열 LS 회장 등의 조화만 들어갔다.

장례 사흘째인 이날 장례식장에는 권봉석 LG전자 대표이사, 정호영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 등 LG사장단 30여명이 방문해 고인을 기렸다. 또 박일평 LG전자 최고기술책임자(CTO), 송대현 LG전자 사장, 박형세 LG전자 부사장 등도 함께 빈소를 찾았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등도 조문했다.

이들은 50여분간 장례식장에 머물며 유족들을 위로하고 낮12시5분께 장례식장 밖에 준비된 28석 규모의 리무진 두 대에 나눠타고 빈소를 떠났다.

이날 장례식장을 찾은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조문을 마친 뒤 “매우 신중하시고 침착하신 분”이라고 고인을 회상했다. 이외에도 범LG가인 구자열 LS회장과 정몽규 HDC그룹 회장도 장례식장을 방문해 고인을 애도했다. 권영수 ㈜LG 부회장은 이날도 빈소를 지켰으며, 손 회장을 직접 배웅했다.

전날인 15일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회장,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아들 정용진 부회장, 황각규 롯데그룹 부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이 빈소를 찾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조화를 보낸 데 이어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을 보내 재차 조의를 표했다. 김 정책실장은 장례식장이 진행된 병원 앞에서 권 부회장과 약 10여분간 환담을 나누고 돌아갔다. 권 부회장은 기자와 만나 "평소 고인이 저도 많이 아껴주셨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서울 시내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빈소. /LG그룹
서울 시내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빈소. /LG그룹

1925년생인 구 명예회장은 구인회 창업회장의 장남으로 1970년부터 25년간 그룹의 2대 회장을 지냈다. 구 명예회장은 창업 초기부터 회사운영에 합류해 부친을 도와 ‘글로벌 LG’를 일궈온 1.5세대 경영인으로 평가받는다.

구 명예회장이 2대 회장에 오른 이후 LG는 주력사업인 화학과 전자 부문을 부품소재 사업까지 영역을 넓히며 원천 기술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수직계열화를 이뤘다. 구 명예회장 재임 기간 동안 LG의 매출은 260억원에서 30조원대로 성장했고, 종업원도 2만명에서 10만명으로 증가했다.

구 명예회장이 강력하게 추진한 기술 연구개발의 결과로는 금성사(LG전자 전신)의 19인치 컬러TV, 공냉식 중앙집중 에어컨, 슬림형 냉장고 등이다. 특히 당시 컬러TV는 국내 컬러 방송 시기가 미정이라 국내 시판이 어려웠지만, 글로벌 기술 흐름에 뒤쳐지지 않고 해외 시장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라 전량을 미국 수출용으로 먼저 생산하며 가전 회사로서의 입지를 굳혀나갔다.

화학분야로는 1970년대 울산에 하이타이(가루비누), 화장비누, PVC(폴리염화비닐)파이프, DOP(프탈산디옥틸), 솔비톨 등 8개 공장을 연이어 건설하면서부터 종합 화학회사로 발전했다.

또한 부친인 구인회 창업회장이 1954년 완전히 철수했던 화장품 사업으로의 재진출을 결정, 청주공장에 국내 최대 규모의 화장품 공장을 건설해 창업 당시 사업영역이던 화장품 사업을 이어가기도 했다. 이때의 결정이 없었으면 지금의 LG생활건강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구 명예회장은 1995년 1월 그룹 명칭을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꾼 후 같은해 2월 장남인 구본무 회장에게 회장직을 넘겨줬다. 재계에서는 이를 LG그룹 전통인 장자승계 원칙을 한층 굳건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유족으로는 장녀 구훤미씨, 차남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삼남 구본준 전 LG그룹 부회장, 차녀 구미정씨, 사남 구본식 LT그룹 회장 등이 있다. 장남인 구본무 회장은 지난해 5월, 부인 하정임 여사는 2008년 1월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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