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정계성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제시한 협상 시한이 끝나가는 가운데, 스티브 비건 대북특별대표가 한국을 방문했다. 이례적으로 약식 기자회견을 연 비건 특별대표는 “미국과 북한은 더 나은 길로 나아갈 능력이 있다”며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음을 분명히 밝혔다.
16일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도 ‘대화’를 강조했다. 한정우 청와대 부대변인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진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고 비건 특별대표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구축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나가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화답했다.
◇ 대화·협상 강조한 비건
북한을 자극할만한 언사는 피했다. ‘군사적 움직임에 대비한 한미일 공조 강화’ 등을 피한 것이 대표적이다. 대화 의지를 적극 강조함으로써 북한이 협상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비건 특별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북미협상을) 완수하자”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협상이 재개되면 북한의 모든 관심사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말까지 북미협상이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하는 북한과, 기존의 ‘포괄적 합의’를 고수하는 미국의 간극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양측 고위 인사들의 긍정적인 발언에서 연말 극적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희망섞인 관측도 있었으나, 지난달 스톡홀름 실무협상 결렬 이후 양측은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미 북한이 협상 결렬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길’에 접어들었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에서 두 차례의 “중대한 실험”을 하고, 연말 5차 당 전원회의 개최를 예고했다는 게 근거다. 북한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중대한 실험’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관련일 가능성이 크며 당 전원회의는 주요 정책방향을 결정하는 자리다. 이는 기존 ‘경제집중’ 노선을 폐기하고 핵과 ICBM 등 전략무기 생산으로 선회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북한이 협상결렬을 선언하고 ICBM 시험발사 등 강도 높은 군사적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는 6.13 싱가포르 북미합의를 완전히 깨는 것으로, 협상 이전보다 관계가 더욱 악화될 공산이 크다. 북한의 핵실험 및 ICBM 발사 중단을 최대 치적으로 내세웠던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극단적인 카드를 고민할 수 있는 지점이다.
◇ 군사도발 중단 여지 남긴 북한
다행스러운 것은 북한도 이를 감안한 듯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는 대목이다. 박정천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은 담화에서 “새로운 기술들은 미국의 핵 위협을 확고하고도 믿음직하게 견제, 제압하기 위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또 다른 전략무기 개발에 그대로 적용되게 될 것”이라면서 “우리를 자극하는 그 어떤 언행도 삼가야 연말을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자극하지 않는다면 ICBM 발사 등 군사도발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북한식 화법으로 해석된다.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크리스마스를 조용히 지낼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이야기고 또 ‘아직 우리 최고령도자 동지께서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고 했다). 그러니까 트럼프는 아무 소리 하지 말라는 이야기”라며 “그들로서도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당 전원회의를 소집해 놓고 그야말로 막 가는 결정을 하기가 참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미 당국도 출구전략을 고민하는 분위기다. 대화와 협상의 의지를 지속적으로 북측에 전달하는 한편, 한미연합훈련의 연기 등 김 위원장으로 하여금 시한을 연장할 수 있는 명분을 주는 방안이 현실적으로 거론된다.
이와 관련해 16일 취재진과 만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비건 대표가 대화를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한 발표내용의 연장선상에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대화가 이뤄졌다”며 “대화의 노력이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기회라는 대화협상 유지 기조를 다시 확인했고, 동시에 엄중한 상황에서도 한미 간 소통과 협의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자는 취지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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