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권센터 ‘피의사실공표와 언론의 역할’ 토론회
“피의사실공표죄는 검찰 견제 수단으로 필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학교 교수가 지난 10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자본시장법 위반(허위신고 및 미공개정보이용) 등 혐의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학교 교수가 지난 10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자본시장법 위반(허위신고 및 미공개정보이용) 등 혐의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서초=서예진 기자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일가 의혹’ 검찰 수사를 계기로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 문제가 다시 쟁점이 됐다. 

형법 126조에 규정된 피의사실공표죄는 수사기관이 공판을 청구하기 전에 피의사실을 공표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하는 법이다. 그러나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분석한 결과 지난 11년간 피의사실공표 사건이 347건 접수됐으나 기소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이처럼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는 오랜 논란거리다. 이 논란은 2009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사망한 것을 계기로 사회적 논란이 커졌으며, 검찰 수사 뿐 아니라 경찰 수사 과정에서도 피의사실공표는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일어났던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 당시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언론에 피의자의 이름과 국적 등을 알려준 것도 피의사실공표 논란의 사례로 들 수 있다. 

◇ “언론이 사건보도 취지 점검해야”… “피의사실공표죄, 검찰견제 수단으로 필요”

언론인권센터는 18일 ‘피의사실공표와 언론의 역할’을 주제로 제59차 언론인권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언론인권센터 김하정 사무차장이 ‘피의사실공표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주제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언론위원장 출신 김준현 변호사가 ‘피의사실공표죄의 법리적 검토’를 주제로 발제를 맡았다.

김하정 사무차장은 발제를 통해 피의사실에 대한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수사기관 측 관점 위주 보도 △피해사실 규정 증거·근거 불충분 △사건과 무관한 사적영역 보도 △판결에 비해 수사단계에 보도 집중 등 4가지로 정리했다. 

김 사무차장은 “범죄사건의 보도는 사회에서 발생한 범죄사실을 구성원들에게 알리고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하며 범죄를 둘러싼 사회 규범에 대한 비판적 토론을 가능하게 하는 ‘공익적 목적’을 수행한다”며 “본질적으로 (언론이) 사건보도의 취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수사기관의 무죄추정의 원칙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언론이라는 권력의 무죄추정의 원칙도 작용해야 한다”며 “(피의사실공표의) 피해자를 이미 범죄자로 예단하고 보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피해자의 인격권·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사생활 침해 부분에서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이라는 문제제기에 대해 언론은 ‘국민의 알권리’를 주장한다면서 “국민의 알권리라고 하면 보도할 것과 보도하지 않을 것에 대한 결정을 국민이 한다는 의미인데, 현재 상황에서는 언론이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있으니 그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준현 변호사는 “피의사실공표죄는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반영해 검찰견제를 위한 수단으로 피의자의 방어권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존치 입장을 밝혔다. 

김 변호사는 “피의사실공표는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와 참고인 진술을 공판 전 대중에게 노출시켜 사실상 공판중심주의를 형해화시키며 법관의 판단에 영향을 주고, 국민참여재판의 경우 배심원에도 영향을 준다”면서 “무죄추정원칙, 재판을 공정하게 받을 권리 등이 침해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또한 이달부터 피의사실공표를 금지한 법무부 훈령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에 대해서도 “형법상 정당행위의 근거를 훈령으로 정비한 것은 법체계상 문제가 있다. 피의사실공표와 관련해 별도 법안으로 정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훈령 규정에 명시된) 예외적 공개사유가 위법성 조각사유인 정당행위의 요건에 근접해 있다, (피의사실 공개 근거가 되는) ‘국민의 알권리’나 ‘중요사건’이라는 규정은 포괄적이며 자의적”이라며 훈령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예진 기자
언론인권센터는 18일 '피의사실공표와 언론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서예진 기자

◇ “수사보다는 재판 중심 뉴스 늘어야”… 다양한 의견 개진

발제 이후 토론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피의사실공표죄를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권력감시의 어려움을 불러올 수 있다’, ‘언론이 검찰의 이야기를 검증 없이 그대로 받아쓰는 것이 문제’, ‘수사 중심이 아니라 재판 중심 뉴스가 늘어야 한다’는 등의 의견도 있었다.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은 “피의사실공표가 그 자체로 모두 죄가 될 수는 없다”면서 “과거 군 검찰이 (외부압력 없이) 수사하기 위해 시민단체에 피의사실을 제보하거나, 영화 ‘1987’에서 검사(하정우)가 잃어버린 것처럼 하고 문건을 기자에게 넘기는 것처럼 ‘피의사실공표냐, 권력 감시냐’를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전 소장은 “권력자들이 피의사실공표 금지를 이용해 수사를 못 하게 방해할 수도 있는 것”이라며 “피의사실공표죄는 권력자가 아니라 일반인이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피의사실공표 주체는 검찰이 아니라 언론이어야 한다. 검찰의 시각에 매몰돼 보도하는 것이 문제”라며 “균형잡힌 양쪽 시각을 보도하는 것이 중요하고, 어떤 과정으로 취재했는지 적극 밝혀야한다”고 역설했다.

정철운 미디어오늘 기자는 “2009년 ‘축산업을 하던 A씨가 미국산 소고기를 호주산으로 둔갑해 유통했다’, ‘아레사 반슨의 사인이 인간광우병이 아니므로 2008년 PD수첩 ‘광우병’편은 허위’라는 보도의 경우 언론이 검찰의 이야기를 검증 없이 그대로 받아쓰기를 했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정 기자는 “피의사실 보도 자체를 문제삼기보다는 피의사실 보도의 동기, 피의사실 보도의 크로스체크 여부가 중요하다고 본다. 언론의 책임이 더 크다”며 “요즘 ‘전지적 검찰시점’이라는 말이 있는데 전지적 검찰시점보다 더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또 ‘검찰 수사 생중계 보도’에 대해서도 “방송법조뉴스 품질연구 결과 검찰뉴스의 86.1%는 보도 시점이 기소 이전이다. 기소 이후는 10.4%에 불과했다”며 “이렇게되면 재판에서 무죄를 받아도 결백을 믿어주지 않는다. 이는 굉장한 인격권·인권침해에 해당된다”고도 했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국정농단’ 특검 때는 피의사실을 제외하고 수사과정을 브리핑 할 수 있도록 한 것처럼 피의사실공표의 예외를 고치는 방법은 여러 가지”라고 설명했다. 토론 과정에서 당시 특검법이 예시로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정농단 사건 당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브리핑을 통해 수사 상황을 알린 바 있다.

이 교수는 “반론권 강화가 중요하다. 반론을 기사 끄트머리에 붙이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며 “질적으로 반론이 담긴 기사를 쓰는 (언론사 내부) 규범이 확산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언론이 강조할 국민의 알권리는 수사 중 범죄정보 중계가 아니라 수사기관의 수사절차가 제대로 진행됐는지, 수사시관이 권력남용하거나 직무유기는 없었는지 여부”라며 “언론이 강조하는 국민의 알권리는 수시기관이 알려주는 정보를 중계하는 것이 아니고, 수시기관이 흘려주는 정보를 못 받게 하는 것이 알권리 침해라고 주장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됐다”고 일침했다.

이어 “언론 보도가 수사 중심 보도가 아니라 재판 중심 보도로 옮겨가야 한다”며 “조금 늦더라도 균형 있게 전달하는 것이 진정한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길이고, 국민도 느린 뉴스를 수용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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