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 대신 ‘경험’ 중시 추세 반영

김현석 삼성전자 대표이사(사장)이 6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CES 2020 기조연설자로 나서 케어 로봇 '볼리'를 소개하고 있다. /삼성전자
김현석 삼성전자 대표이사(사장)이 6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CES 2020 기조연설자로 나서 케어 로봇 '볼리'를 소개하고 있다. /삼성전자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삼성전자가 향후 10년을 ‘경험의 시대’로 정의하고 인간 중심 혁신으로 미래를 선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인공지능(AI), 5세대 이동통신(5G),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 혁신 기술을 융·복합해 개인 맞춤형 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이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을 통해 개인에게 최적화한 경험과 환경을 제공할 제품을 대거 선보였다.

삼성전자 김현석 대표이사(사장·CE부문장)은 6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라스베이거스 베네치안호텔에서 ‘CES 2020’ 기조연설을 통해 미래 기술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삼성 경영진이 기조연설에 나선 것은 지난 2016년 삼성SDS 홍원표 사장 이후 4년 만이다. 

김 사장은 “사람들은 제품을 구매할 때 제품 소유 자체가 아니라 그 제품이 가져다주는 편리함, 안정, 즐거움 등 삶의 긍정적 경험을 기대한다”며 “이 같은 요구가 모여 기술 혁신을 이끌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최근 불고 있는 ‘렌탈 서비스’ 열풍과 맞닿아 있다. 제품을 구매하지 않고 일정액을 내면 상품이나 서비스를 주기적으로 제공받는 ‘구독소비’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이는 제품 자체의 ‘소유’보다는 ‘제품 이용 경험’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실용적 소비 패턴인 것이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 출간한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는 이를 ‘Here and Now : 스트리밍 라이프’라고 정의했다. 

김 사장은 “경험의 시대에는 다양한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공간을 변화시키고 도시를 재구성해야 한다”면서 “삼성의 인간 중심 혁신이 이 같은 과제를 해결하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첨단 하드웨어와 AI 기술을 결합한 개인 맞춤형 케어를 강조하며 지능형 컴퍼니언(Companion·동반자) 로봇 ‘볼리’(Ballie)를 최초로 공개했다. 그가 무대에서 “볼리와 인사해주세요”라고 외치자 볼리가 무대 위에 나타났다. 

김 사장은 “개인 삶의 동반자 역할을 하는 볼리는 인간 중심 혁신을 추구하는 삼성전자의 로봇 연구 방향을 잘 나타내 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볼리는 공 모양으로 이동이 자유로워 사용자를 인식해 따라다닌다. 실제로 김 사장이 움직일 때마다 볼리는 그 뒤를 따라 무대를 누볐다. 김 사장은 “볼리가 날 좋아하는 것 같다”, “더 빨리 가볼까”하면서 걷다가 멈추거나, 뛰기도 하면서 볼리를 시연했다.

볼리는 사용자 명령에 따라 집안 곳곳을 모니터링하고 스마트폰, TV 등 주요 스마트기기와 연동해 다양한 홈 케어를 수행한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부재 중에 집안이 지저분해지면 볼리가 로봇 청소기를 작동시켜 청소를 해놓는다.

또 ‘온 디바이스 AI’를 탑재해 보안과 프라이버시 보호를 강화한 시큐리티 로봇이나 피트니스 도우미 역할을 하는 등 필요에 따라 기능을 확장할 수 있다. 기존 AI는 클라우드 서버와 데이터를 주고받았다. 방대한 빅데이터의 용량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방식은 사용자의 개인 정보와 프라이버시가 보호되지 않는다는 우려도 존재했다. 

삼성전자는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온 디바이스 AI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왔다. 온 디바이스 AI는 기존 방식과 달리 기기 자체에서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이다. 향후 스마트폰이나 자율주행 자동차 등에 자체적인 AI가 구현될 것을 예상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볼리’는 그 연구의 결과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찬드니 카브라 디자이너와 페데리코 카살레뇨 삼성 북미 디자인혁신센터장이 6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 기조연설에서 젬스를 시연하고 있다. /뉴시스
찬드니 카브라 디자이너와 페데리코 카살레뇨 삼성 북미 디자인혁신센터장이 6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 기조연설에서 젬스를 시연하고 있다. /뉴시스

김 사장에 이어 무대에 오른 세바스찬 승 삼성리서치 부사장은 개인 맞춤형 케어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 AI 리더십과 업계 파트너십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카이저 퍼머넌트’와 협업으로 개발한 심장 질환 재활 프로그램 ‘하트와이즈’(HeartWise)를 소개했다.

하트와이즈는 모바일 기기를 활용해 만성 심장 질환 환자의 심장 상태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이상 징후 발생 시 전문 의료진 진료를 연결해준다. 이를 통해 환자의 재입원율을 낮출 수 있다.

이어 삼성전자는 AI, 5G, AR(증강현실) 등 첨단 혁신 기술 등장이 개인을 둘러싼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 지 소개했다. 페데리코 카살례뇨 삼성 북미 디자인혁신센터장은 “집은 사용자 요구에 반응하고 응답하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며 “개인이 모두 집에 대한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집에도 개인 맞춤형 기술을 적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은 집을 피트니스 센터나 요리 스튜디오, 갤러리 등 자신만의 맞춤형 공간으로 재창조하기를 원하는 추세다. 이는 천편일률적인 주방이 아닌 ‘카페’처럼 예쁜 공간을 만들거나, 집 근처 피트니스 센터에 가는 것이 아니라 ‘홈트’(홈트레이닝)가 대세가 된 것과 무관치 않다.

삼성전자는 웨어러블 보행보조 로봇 ‘젬스’(GEMS)를 입은 사용자가 ‘AR 글래스’를 쓰고 가상의 개인 트레이너에게 맞춤형 피트니스를 받는 것을 시연했다. 사용자는 가상 트레이너와 함께 런지와 니업 등의 동작을 하고 자세 교정을 받으며, 운동 결과는 모바일 기기를 통해 피드백 받는다.

또 미래 주방공간에서 소비자들이 누릴 수 있는 경험의 진화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IoT 냉장고인 ‘패밀리허브’가 가족을 위한 맞춤형 식단을 짜서 레시피를 추천해주고, 가정용 식물재배기가 키운 허브로 음식의 맛을 더한다. AI 보조 셰프인 ‘삼성봇 셰프’는 요리과정을 도와준다.

이어 삼성전자는 세계적 ‘도시화’ 추세에 대해 언급하며 ‘스마트시티’ 비전을 공유했다. 에밀리 베커 삼성 넥스트 전무는 “2050년까지 인구의 70%가 도시에서 거주하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며 “이런 폭발적인 성장은 수많은 도전 과제를 수반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AI, 5G, IoT, 에지 컴퓨팅(Edge Computing) 등을 기반으로 한 기술 혁신이 도시 생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해 빌딩, 교통, 커뮤니티 세 가지 분야로 구분해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김 사장은 “삼성 기술은 모두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서 “개인이 더 안전하게 첨단 기술을 누릴 수 있도록 데이터 보안과 프라이버시를 최우선 순위에 둘 것이며 ‘착한 기술’을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보안 플랫폼 ‘삼성 녹스’를 모바일, TV, 가전제품, IoT 기기 등에 확대하고 있고, 온 디바이스 AI, 에지 컴퓨팅, 블록 체인 기술 등 데이터 보안을 강화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을 지속 연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기술의 첨단화가 진행되면서 프라이버시와 데이터 보안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다. AI 스피커가 인기를 끌면서 AI 스피커의 자연어 인식률을 높이기 위해 사용자의 음성 데이터를 수집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문제의식이 공유된 사안이다. 클라우드 사용 빈도가 높아지며 데이터의 손실과 해킹 등을 우려하는 이들도 많다. 삼성전자는 이런 소비자들의 우려를 읽고 데이터 보안과 프라이버시 침해가 없는 미래 기술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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