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형 전 대법관 기자간담회 “부패행위부터 경영승계까지 조사”
7개 계열사 우선 협약… 삼성중공업은 빠져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내정된 법무법인 지평의 김지형 대ㅏ고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내정된 법무법인 지평의 김지형 대표 변호사가 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위원장 수락 배경 및 위원회 구성 운영방향에 대한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서대문=서예진 기자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의 윤곽이 9일 드러났다. 김지형 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이 위원장을 맡았으며 각계 전문가를 구성원으로 삼았다. 각계와 시민사회에서 우려하던 ‘독립성’ 문제는 일단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약속했다고 전했다.

◇ 김지형 전 대법관 “삼성이 먼저 벽문 열어”

김 전 대법관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준법감시위원회 명단을 발표했다. 

김 전 대법관이 위원장, 이인용 삼성전자 사회공헌업무 총괄 고문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외부위원 5인은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을 맡은 고계현 위원, 대검찰청 차장검사 출신 봉욱 변호사, 권태선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 심인숙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김 전 대법관은 위원장 제안을 받고 처음에는 거절했다고 한다. 거절의 이유는 세 가지였다. 

그는 “(삼성의) 진정한 의지에 대한 의심이 있었고, 양형 면피 사유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며 “삼성의 진의여부와 관계없이 위원회가 혁신적인 개선을 이루지 못하면 이용만 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평가를 받을 것이 두려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저의 역량부족도 이유다. 이토록 큰일을 제가 감당할만한 자신이 있느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김 전 대법관이 위원장직을 수락한 이유는 삼성이 먼저 ‘변화의 문’을 열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무엇이 계기가 됐든 삼성이 먼저 ‘벽문(壁門)’을 열었다는 것이 변화를 향한 긍정적인 신호”라며 “삼성의 진의에 의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며, 이런 불신은 삼성과 (준법감시)위원회가 풀어야 하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김 전 대법관은 위원장직 수락 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을 직접 만나 위원회의 완전한 독립과 자율성 보장을 다짐받았다”며 “삼성이 정말 진정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 그룹 총수의 확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본인(이 부회장)이 흔쾌히 수락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외부위원을 압도적으로 많이 선정하려 했고, 영역별 전문성을 고려해 우리사회 대표성을 확보하려 했다”며 “이인용 고문도 삼성 관여 없이 독자적으로 판단해 참여를 권유했다”고 했다.

위원회는 설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주요 계열사 7개사와 협약을 체결하고 계열사의 이사회 결의를 거쳐 오는 2월부터 활동을 시작한다. 주요 계열사는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화재다. 미국 기업에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벌금을 낸 삼성중공업은 빠졌다. 김 전 대법관은 삼성중공업이 빠진 것에 대해 “7개 계열사가 선정된 경위는 저도 잘 모른다”며 “기회가 될 때 설명하겠다”고 했다.

김 전 대법관은 “삼성의 개입을 완전히 배제하고 철저히 독립적으로 운영해 나갈 것”이라며 “삼성의 준법·윤리경영에 대한 파수꾼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내정된 법무법인 지평의 김지형 대표 변호사가 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위원장 수락 배경 및 위원회 구성 운영방향에 대한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내정된 법무법인 지평의 김지형 대표 변호사가 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위원장 수락 배경 및 위원회 구성 운영방향에 대한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삼성그룹 측은 이날 기자간담회가 끝난 후 준법감시위의 구성에 대해 “준법감시위원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존중한다”면서 “글로벌 수준의 준법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도록 이사회 의결 등 필요한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성역’ 없다… “노조 문제·경영 승계까지 다룬다”

삼성 준법감시위는 이사회나 경영위원회 의결·심의사항 감시, 법 위반 리스크 인지에 대한 조사 및 시정·제재 요구 등을 할 예정이다. 김 전 대법관은 향후 ‘예방-대응-회복’ 등 각 단계 전반에 걸친 구체적 실행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준법감시 프로그램과 시스템이 실효적으로 작동하도록 실행방안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필요한 범위 내에서 준법지원인의 지원을 받고 자료 제출도 요구할 것”이라며 “시스템 개선에 관해 이사회에 직접 권고하고 의견 제시하고 이행 점검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또 “계열사 이사회가 위원회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하고, 수용하지 않는 경우 이를 적시해서 위원회에 통보한 뒤,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위원회 홈페이지에 공표할 예정”이라고 했다.

법 위반 위험이 있는 대외 후원이나, 계열사나 특수관계인 사이의 내부거래, 협력업체와의 하도급 거래, 일감 몰아주기 등의 공정거래 분야, 뇌물수수나 부정청탁 등 부패행위 분야는 물론이고, 노조 문제나 승계 문제 등에서 법 위반 리스크도 준법 감시 대상이라고 적시했다,

김 전 대법관은 “때에 따라서는 법 위반 사안을 직접 조사할 것”이라며 “특히 최고경영진의 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위원회가 곧바로 신고를 받는 체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삼성 준법감시위 구성의 직접적인 원인은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재판’이다.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준법감시제도를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재판부는 3차 공판에서 오는 17일 4차 공판기일까지 주문사항에 대한 답을 제출하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그룹 자체는 사회적 이슈에 늘 휘말려왔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경영권 확보 과정에서 편법 승계란 비판을 받았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불법 행위를 주장하고 있다. 이에 국정농단 사건과 함께 삼성 바이오로직스 회계조작 혐의도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연결시켜 수사 중이다. 이외에도 삼성은 반도체공장 노동자 피해 문제, 노조 와해 등으로 사회적 질타를 받기도 했다.

삼성이 준법감시기구를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6년에도 ‘안기부 X파일’ 사태로 인해 대국민사과와 함께 준법감시기구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을 만든 바 있다. 하지만 사회의 쓴소리를 듣겠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여론 무마용”이라는 지적을 듣다 조용히 사라졌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번에 구성되는 삼성의 준법감시위도 ‘일회성 이벤트’에 그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 때문에 기자간담회에서는 ‘위원들은 무보수로 일하는가’, ‘운영 경비는 어떻게 부담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감시 대상의 지원을 받게되면 객관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법관은 “최소한의 수당은 대우를 해야겠지만 운영규정이 만들어져야 (정확하게) 할 수 있다”면서 “운영에 필요한 경비는 7개 계열사들이 분담해서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실무를 지원하는 사무기구도 독립성을 갖고 운영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위원회의 지시에 의해 임명되도록 할 계획이다. 다만 사무기구에서 근무할 직원들은 각 계열사에서 파견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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