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2 19:58
영면에 든 신격호 명예회장, 롯데에 남긴 숙제
영면에 든 신격호 명예회장, 롯데에 남긴 숙제
  • 권정두 기자
  • 승인 2020.01.20 16: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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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향년 99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롯데그룹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향년 99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롯데그룹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한국 재벌 창업 1세대의 마지막 산증인이었던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19일 영면에 들었다. 향년 99세, 결코 짧지 않았던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일생은 말 그대로 ‘영욕의 세월’이었다. 그의 삶을 돌아보며 그가 롯데에 남긴 숙제들을 조명해본다.

◇ 일본에서 자수성가 신화 쓴 청년 신격호

신격호 명예회장은 1921년 울산광역시 울주군에서 태어났다. 엄혹했던 일제강점기, 비교적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그는 안주하지 않았다. 1942년, 21살의 젊은 나이에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다. 당시 그가 수중에 가진 돈은 83엔뿐이었다.

일본에서 신격호 명예회장이 처음 한 일은 신문 및 우유를 배달하며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특유의 성실함을 앞세워 남다른 수완을 발휘했고, 이를 주목한 한 사업가가 그에게 거액의 사업자금을 빌려주면서 ‘신격호 신화’는 시작됐다.

처음부터 성공가도를 달렸던 것은 아니다. 1944년, 신격호 명예회장은 빌린 자금으로 윤활유 공장을 차렸지만 미군의 폭격을 받아 가동도 하지 못한 채 빚만 떠안게 됐다. 하지만 신격호 명예회장은 거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우유배달 등을 하며 다시 사업밑천을 마련했고, 1946년 비누 등을 만들어 파는 화학공장을 설립했다. 이번엔 성공이었다. 금세 많은 돈을 번 신격호 명예회장은 거액의 빚을 갚고 사업가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이후 신격호 명예회장은 껌 개발에 착수했고, 1948년 종업원 10명으로 롯데를 설립했다. 롯데는 껌에 이어 각종 제과류를 선보이며 빠르게 존재감을 키워갔다. 1950~60년대에 이르러서는 롯데상사, 롯데부동산, 롯데아도, 롯데물산, 훼밀리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며 일본 10대 기업으로 우뚝 섰다.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둔 그가 조국으로 발을 넓힌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다. 한일수교로 양국의 관계가 개선되자 1996년 한국에서의 사업을 시작했다. 1966년 설립한 롯데알미늄이 그 시작이었고, 이듬해 설립한 롯데제과도 성장궤도에 빠르게 안착했다. 롯데는 이후 국내에서 음료, 빙과, 관광(호텔), 유통, 건설, 석유화학 등으로 거침없이 보폭을 넓혔고, 1980년대 한국 경제 발전과 함께 가파른 성장세를 구현할 수 있었다.

특히 일본이 경제 호황기를 맞고, 한국 역시 경제 성장이 가파르던 1980~90년대에는 세계 4번째 부호로 꼽히기도 했던 신격호 명예회장이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젊은 시절 모습. /롯데그룹
신격호 명예회장의 젊은 시절 모습. /롯데그룹

◇ 형제 갈등, 일본 꼬리표… 롯데가 넘어야할 숙제

이처럼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굴지의 대기업을 키워낸 신격호 명예회장은 재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말년엔 씁쓸한 모습도 남겼다. 롯데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두 자녀가 갈등을 빚었고, 이 과정에서 젊은 시절 총기를 잃은 신격호 명예회장의 모습이 언론에 비춰진 것이다. 특히 롯데그룹의 형제간 갈등은 ‘일본기업’ 논란은 물론 오너일가 비리 사건으로 번지며 사회적으로 큰 지탄을 받았다. 여기엔 신격호 명예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배우 출신 세 번째 부인과 그 자녀의 부당한 사익추구도 포함됐다.

이는 신격호 명예회장이 롯데에 남기고 떠난 숙제와도 연결된다. 현재는 다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으나, 롯데그룹은 여전히 형제간의 갈등에 마침표를 찍지 못한 상태다. 일본에 정점을 두고 있는 지배구조상 언제 어떤 반전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

갈등을 이어가고 있는 장남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아버지의 별세를 계기로 장례식장에서 모처럼 조우했다. 이들의 관계가 향후 어떤 국면을 맞게 될지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성공신화가 남긴 롯데그룹의 태생적 배경 역시 넘어야할 산으로 작용하고 있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일본에서 자수성가에 성공한 것은 반박의 여지없이 ‘신화’로 추앙받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롯데그룹에 ‘일본 꼬리표’가 붙게 만들었다.

이와 관련해 홍역을 치른 신동빈 회장은 롯데그룹이 한국기업임을 강조하며 대대적인 혁신에 나섰으나, 지난해 불거진 한일갈등 국면에서도 롯데그룹이 출자한 유니클로가 거센 논란에 휩싸이는 등 ‘일본 꼬리표’는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백수를 누리며 시대에 한 획을 긋고 떠난 신격호 명예회장. 그가 남긴 롯데그룹이 어떤 미래를 만들어나가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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