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성찰배경: 시절이 어수한 때일수록 종교계에서는 고통 받고 있는 대중들을 일깨우는 방편으로 시대상이 반영된 시공을 초월한 설화들을 종종 활용해 왔다고 사료됩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무인 정권이 세력을 떨치며 양민을 수탈하던 고려 시대를 살았던 일연(一然, 1206-1289) 선사께서 1281년에 지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담긴 신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선율환생(善律還生)’ 설화와 망하기 직전인 남송南宋의 가장 무능했던 이종황제 시대를 살았던 무문혜개(無門慧開, 1183-1260) 선사께서 1228년에 지은 <무문관(無門關)>에 쓰인 당나라 시대가 배경인 ‘천녀이혼(倩女離魂)’ 설화에 대해 성찰하고자 합니다.

◇ 선율 이야기

먼저 한국의 대표적인 환생설화인 ‘선율환생(善律還生)’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망덕사의 선율 스님께서 보시 받은 돈으로 불교경전인 <대품경(大品經)>을 간행하고자 하였으나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저승사자에게 끌려 염라대왕 앞에 이르렀다. 선율 스님이 그 앞에서 “소승은 말년에 경전을 간행하고자 하였으나 아직 다 마치지 못했는데 저승에 끌려왔습니다”라고 고하였다. 그러자 염라대왕께서 “비록 그대의 수명은 다 했으나 아직 훌륭한 염원을 성취하지 못했으니 마땅히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 ‘값진 불교경전’을 완성하여라”하며 곧 방면해 돌려보냈다.

그런데 환생하던 도중에 한 여인이 선율 스님 앞에 서서 울며 절을 하고는 “저 또한 신라 사람인데 사량부(沙梁部) 구원사 서남쪽 마을에 사시는 부모님께서 금강사의 논 ‘한 이랑’을 몰래 부쳐 먹은 죄 때문에 저승에 대신 붙잡혀 와서 오랫동안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스님께서 환생하시면 부디 부모님께 이런 사실을 알려 그 밭을 속히 돌려드리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선율 스님께서 이 말을 듣자마자 곧 소생하였다. 그 후 선율 스님께서 여인의 고향 집을 찾아가니 저승에서 만난 여인은 죽은 지 이미 15년이 지났다는 것을 알았고, 그녀가 부탁한 대로 부모님께 딸의 소식을 전하고 명복을 빌었다. 그러자 여인의 혼백이 나타나 “스님의 은혜에 힘입어 저는 이미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解脫)하였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놀라고 감동하지 않은 이가 없었으며 선율 스님을 도와 불교경전의 간행을 마쳤다. 이 경전은 지금 경주에 위치한 ‘승사(僧司)의 서고(書庫)’ 안에 비치되어 있으며 매년 봄가을에 이를 ‘돌려 읽으며’ 재앙을 물리치기를 간절히 염원하였다.

◇ 환생 유포의 의도

필자의 견해로는 일연 스님께서 외적(外的)인 인간세상에 초점을 맞추어 이 일화를 유포하고자 한 의도에 대해 두 가지 점을 쉽게 성찰해 볼 수 있는 것 같네요. 하나는 죄업(罪業)을 지은 당사자들 자신들에게 설사 직접 재앙(災殃)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반드시 후손 가운데 누군가가 그 업보(業報)를 받는다는 점입니다. 물론 죄를 깊이 뉘우치고 다시 원상복구할 경우 받은 업보에서 벗어날 수 있음도 함께 일깨우고자 하신 것 같네요. 다른 하나는 선율 스님처럼 선업(善業)을 쌓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의 경우 수명이 늘어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는데, 이는 요즈음 의과학에 따르면 이웃을 돕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경우 대체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행복한 삶을 누리는 동시에 실제 나이보다도 생체연령이 젊다는 연구결과를 통해 잘 입증되고 있는 것 같네요.

한편 일연 선사가 살던 고려시대 당시 사찰들이 기증받으며 점점 땅 부자가 되자 관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노는 논밭이 도처에 널렸는데, 이를 몰래 경작하는 서민들도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사회적 상황에 맞추어 일연 선사께서 절 땅에 몰래 농사지으며 죄업을 쌓는 서민들에게 경종을 울리고자 이 설화를 언급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본인이 아닌 자손에게까지 미칠 수도 있다는 이런 확장된 인과응보(因果應報) 개념은 비록 중생들에게 아무리 형편이 어렵더라도 결코 죄를 지으면 안된다는 도덕관을 더욱 강하게 심어주면서 고통을 좀 더 인내하게 할 수는 있겠으나, 굶어 죽게 될 지경에 이르러서는 살기위해 필연적으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실 이런 설화도 무용지물(無用之物)이라 판단됩니다.

따라서 이의 보완책으로 노는 논밭을 경작할 수 있도록 허락하거나 또는 불사를 하기 위해 모아둔 자금을 포함해 당장 시급하게 쓰지 않아도 되는 여유자금을 풀어, 살기 어려운 지역 서민들에게 도량 정비 등과 같은 일을 하게하며 일삯을 받게 해 죄를 짓지 않고도 어려운 시기를 넘길 수 있도록 해주거나 하는 등의 적극적인 배려(配慮)도 당시 출가수행자의 본분사(本分事)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덧붙여 고려 말기로 갈수록 사찰이 더욱 비대해지면서 국가경영에 필요한 통치자금이 부족해진 것도 고려가 망한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사료됩니다. 더 나아가 조선 개국 초기에 적극적으로 배불(排佛) 정책을 실시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 천녀 이야기

한편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천녀유혼(倩女幽魂)’이란 영화의 소재이기도 했던, 진현우(陳玄祐)가 지은 당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전기(傳奇) 소설인 <이혼기(離魂記)>에 나오는 천녀 이야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형주(衡州)에 사는 장감(張鑑)이란 사람의 장녀에 천녀(倩女)라는 미녀가 있었고 장감의 외조카인 왕주(王宙)란 미남이 있어서 서로 간에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 그런데 장감은 후에 천녀를 부잣집 아들인 빈료(賓僚)에게 출가시키기로 했다. 천녀는 한사코 이를 거절했으나 엄한 아버지의 명령이라 어찌할 도리가 없어 고민하다가 그만 상사병이 걸려 병석에 눕게 되었다. 왕주도 화가 나서 고향을 떠나 멀리 타향에 가서 살기로 작정하고 배를 탔다. 강 언덕에 배가 닿으려고 할 무렵 어떤 여자가 “여보!”하고 불렸다. 왕주가 돌아보니 천녀였다. 이게 웬일이냐고 하며 두 남녀는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 후 촉(蜀)으로 가서 두 사람은 오년 동안 같이 살면서 아들을 하나 낳아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던 중 천녀가 고향 부모님이 그리워 왕주에게 “우리가 아들까지 낳았기 때문에 이제 와서 부모님도 어쩌지는 못하실 것이니 고향에 돌아가서 부모님께 과거를 사죄하고 정식으로 부부가 되기를 간청합시다”라고 말하기에 왕주도 이에 동의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왕주가 배에서 내려 장인을 찾아뵙고 지난 일을 낱낱이 이야기했다. 그러자 장인은 깜짝 놀라며 하는 말이 “천녀는 자네가 떠난 이후 병석에 계속 누워있었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고 반문을 했다. 왕주는 그럴 리가 없다고 하며 문밖에 있던 천녀를 데려오자 병중의 천녀가 이를 맞아 두 천녀가 한 몸이 되었다.

◇ 설화가 화두로 멋지게 쓰이다

무문 선사가 인간의 내적(內的) 체험에 초점을 맞춘 <무문관>에 ‘천녀이혼’ 화두를 포함시킨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먼저 간화선(看話禪)의 원조인 오조법연(五祖法演, 1024-1104) 선사께서 설화를 활용해 새롭게 제창한 화두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때 오조 선사께서 한 승려에게 “천녀이혼(倩女離魂)인데 어느 쪽이 진짜인고?”라고 물었다.’

무문 선사는 이 화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친절하게 평(評)하고 있습니다. ‘만약 진짜 천녀를 가려낼 수 있다면, 곧 껍질에서 나오고 껍질로 들어감이 여관에서 유숙하는 것과 같음을 알리라. 그러나 그러한 이치를 혹시 아직 모른다면 함부로 어지러이 날뛰지 말라. 문득 죽을 때, 끓는 물속에 떨어진 대게가 손과 발을 허우적대는 것과 같으니, 그때 내가 일러주지 않았다고 원망하지 말라.’

이제 이를 바탕으로 화두를 좀 더 쉽게 풀어 써보겠습니다. ‘오조 선사께서 어느 때 제자에게 “집에서 병석에 누워있는 천녀와 애인 왕주를 따라 촉나라에 가서 동거생활을 하면서 아이까지 낳은 천녀 가운데 어느 쪽이 진짜인가?”하고 물었습니다.’ 필자의 견해로는 오조 선사께서 천녀에 관한 설화를 빌어다가 제창한 이 화두의 목적이 제자들의 시공관(時空觀) 점검에 있다고 사료됩니다. 즉, 병석에 누워있는 천녀와 왕주를 따라간 천녀가 공간적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또한 시간적으로 오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 다시 결합하였습니다. 자!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이들 두 천녀 가운데에서 진짜를 골라 오조 선사 앞에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바른 시공관을 가진 제자라면 즉시 내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 화두에서 천녀가 주인공인 것 같으나 오조 선사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제자 자신, 아니 우리들 자신이 문제인 것입니다. 즉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 대부분은 살아가는 순간순간, 분리되었던 두 천녀처럼 늘 이원적(二元的)인 분별심을 일으키고 온갖 번뇌 망상 속에서 참나[眞我]를 놓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 어떻게 하면 참나에서 분리되어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중독된 ‘가짜 나[假我]’에 끄달리지 않고 참나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만일 ‘천녀이혼’의 경계가 뚜렷이 서게 된다면 마치 사람들이 분비는 명동 한복판에서 친부모를 만난 것과 같아서 옆 사람에게 저 분이 내 부모님인가 하고 일부러 물어볼 필요도 없이 스스로 자명할 것입니다.

덧붙여 종교를 초월해 지혜로운 영적 스승이라면 <잡아함경(雜阿含經)>에 담겨 있는, 사람에 빗댄 ‘양마(良馬)’에 관한 다음과 같은 멋진 비유를 새기며, 네 가지 부류에 속한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좀 더 세밀하게 설화들을 잘 활용할 수 있겠지요.

‘세상에는 네 종류의 말이 있다. 첫째는 채찍의 그림자만 봐도 곧장 달리며 그 주인의 뜻에 따른다./ 둘째는 채찍이 털끝에 스치면 곧장 달리며 그 주인의 뜻에 따른다./ 셋째는 채찍이 몸을 때리면 곧장 달리며 그 주인의 뜻에 따른다./ 넷째는 채찍을 뼈에 사무치도록 때려야 겨우 간다.”

한편 석가세존께서는 비록 채찍을 뼈에 사무치도록 때려야 겨우 가는 사람까지도 눈높이에 맞추어 빠짐없이 참나를 찾을 수 있도록 교화하려 애쓰셨던 반면에, 세속적으로 성공한 영화배우 리처드 버튼(1925-1984)의 전기에서는 사람을 역시 네 가지 부류로 나누고 있으나 한 부류는 세속적 잣대로는 구제불능이라고 판단해서인지 포기하라고 다음과 같이 권하고 있네요.

‘무식하면서 자신이 무식하다는 것을 모르는 자는 바보이니 그는 피하라./ 무식하면서 자신이 무식하다는 것을 아는 자는 단순하니 그는 가르쳐라./ 유식하면서 자신이 유식하다는 것을 모르는 자는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니 그는 깨워라./ 유식하면서 자신이 유식하다는 것을 아는 자는 현명하니 그를 따르라.’

끝으로 비록 설화가 주는 교훈이나 영적 스승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 일상 속에서 날마다 ‘아! 나는 어느 부류에 속한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틈날 때마다 던지며 내적 성찰을 꾸준히 이어간다면, 어느 때인가 문득 참나를 드러내며 통찰과 나눔이 둘이 아닌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자신을 인득(認得)하는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또한 이런 우리들이 늘어날수록 외적으로는 각계각층을 불문하고 초법적인 갑질이 기승을 부리는 ‘헬조선’이 아닌, 정말 살맛나는 대한민국을 후손들에게 길이 물려줄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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