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니스트
하도겸 칼럼니스트

우리나라로부터 유럽으로 향하는 서역까지 연결하던 길이 있었다. 독일의 지리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이 주요 교역품인 비단을 강조하여 이름붙여진 ‘자이덴슈트라쎄(Seiden Straße)’, 즉 ‘비단길’은 언젠가부터 단순한 길이 아니라 ‘초원길’과 ‘바닷길’ 뿐만 아니라 사막과 오아시스 일대의 도시들 전체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사주지로(絲綢之路)라고 부르는 이 길 위에는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으로부터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그리고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사마르칸트 등이 위치해 있다. 동서문명 교류의 통로인 이 길은 상인들과 국가에게는 부와 국력의 원천이 된 경제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가졌다.

이런 실크로드의 시작과 끝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바로 돈황이다. 중앙아시아의 상인들에게서 돈황은 비단길의 시발지이자 마지막 기착지였다. 서유기에 등장하는 현장스님은 물론 왕오천축국전의 주인공인 우리의 혜초스님이 인도로 구법 여행을 떠날 때는 물론 고구려 유민 고선지 장군이 티베트 정벌을 나설 때 지나갔던 첫 관문은 언제나 돈황이었다.

중국 감숙성 돈황현 동남쪽에 위치한 명사산(鳴沙山) 즉 ‘모래가 우는 산’ 중턱에는 약 1.8km에 걸쳐 석굴들이 떼 지어 있다. 5호 16국 시기인 366년, 전진의 승려 낙준이 처음으로 석굴을 판 이래로 11세기 북송 시기에 이르기까지, 천여 개가 넘는 석굴군이 조성되었다. 현재 발굴을 마치고 일반에 공개되는 400여개의 굴 안에는 사방 벽면은 물론 천장에까지 수많은 불교회화와 불상이 있다. 우리가 ‘천불동(千佛洞)’이라고 부르는 이른바 ‘돈황 막고굴(莫高窟)’이 이것이다. 아울러, 1900년경 제17굴 가운데 후에 ‘장경동(藏經洞)’이라고 불린 조그만 밀실에는 기원전 4세기에서 11세기에 걸친 5만여점의 고문서와 불경, 불화 등이 나오기도 했다.

1907년 비단길 탐험을 하던 오렐 스타인은 두 차례에 걸쳐 겨우 700냥을 주고 보물들을 대영박물관으로 가져가 돈황학의 아버지라 불리게 되었다. 다음 해에는 프랑스의 펠리오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포함한 문서 1만 점을 프랑스국립도서관으로 가져갔다. 이와 같이, 실크로드를 지나간 동서양의 수많은 사람들과 종교문화등이 함께 하는 이곳에 대한 매력은 학자들의 주목을 받아 돈황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연구분야까지 만들어졌다. 하지만 일반인들에 대한 접근은 쉽지 않다.

불교미술강좌 전문인 무우수 아카데미에서는 불교미술사학자주수완 우석대학교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를 강사로 오는 3월 4일부터 25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6시에 ‘불교동점과 실크로드’ 강좌를 개설한다. / 하도겸 제공
불교미술강좌 전문인 무우수 아카데미에서는 불교미술사학자주수완 우석대학교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를 강사로 오는 3월 4일부터 25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6시에 ‘불교동점과 실크로드’ 강좌를 개설한다. / 하도겸 제공

불교미술강좌 전문인 무우수 아카데미에서는 불교미술사학자주수완 우석대학교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를 강사로 오는 3월 4일부터 25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6시에 ‘불교동점과 실크로드’ 강좌를 개설한다. 서역남북로의 불교문화, 실크로드의 꽃 돈황막고굴 Ⅰ/Ⅱ, 실크로드의 고승들 등으로 구성된 이 강좌로 돈황학이나 실크로드학에 대한 견문을 넓히고자 한다면 꼭 가봐야 할 것이다.

※ 주수완은 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 동국대학교에서 석사, 고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불교조각사 및 불교도상학의 문제를 인도·중국과 우리나라 불교미술과의 교류관계를 통해 규명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대승설법도상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사)한국미술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이면서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으로 서울대·고려대·동국대학교 등에 출강했다. <솔도파의 작은 거인들>(2012), <Stepping into the Buddha’s Land>(2019)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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