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가 있다. 마찬가지로 VR의 상상도 현실이 될 수 있다./ shutterstock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가 있다. 마찬가지로 VR의 상상도 현실이 될 수 있다./ shutterstock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사람들은 가끔씩 먼 우주의 행성에 가는 상상, 영화 속 주인공이 되는 상상, 다른 사람의 인생으로 살아가는 상상, 혹은 고인과의 조우에 대한 상상 등을 해보곤 한다. 이 같은 상상이 ‘가상현실(VR)’ 기술을 통해 좀 더 현실적으로 구현될 전망이다.

◇ “레디 플레이어 원처럼”… VR을 통한 ‘가상세계’의 등장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주인공은 빈민촌에서 살아가는 힘든 현실을 떠나 현실과 거의 유사한 VR세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영화 속 이 장면은 머지않아 현실화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국내외 기업들은 VR을 통해 접속할 수 있는 ‘가상현실 사회’를 제작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글로벌 SNS(사회 연결망 서비스)기업 페이스북은 VR기술을 접목한 가상현실 세상 ‘페이스북 호라이즌’을 선보였다. VR기기를 착용한 사용자는 페이스북 호라이즌 안에서 자신의 아바타로 변신해 지인들과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게임, 영화 등 문화콘텐츠를 함께 즐길 수 있다. 

국내에서는 SK텔레콤이 지난해 11월 가상현실 세계 ‘버추얼 소셜 월드’를 공개했다. 버추얼 소셜월드 내부에서 이용자들은 새로운 직업을 갖거나 클럽, 카페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또한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다른 이용자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등 현실과 유사한 가상의 사회 생활을 즐길 수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버추얼 소셜 월드의 궁극적인 목적은 SF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과 같이 현실의 모든 활동을 가상 세계로 확장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MBC의 VR 휴먼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제작진은 VR을 통해 4년 전 세상을 떠난 강나연 양을 구현해 어머니 장지성 씨와 다시 만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MBC

◇ “사랑하는 이를 다시 만나다”… ‘너를 만났다’ VR 프로젝트

VR을 통해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을 다시 만나보는 시도도 있다. 지난 6일 지상파 방송사 MBC의 VR 휴먼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가 그 주인공이다. 해당 다큐멘터리는 4년 전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강나연 양과 어머니 장지성 씨가 VR을 통해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담아 큰 화제를 모았다.

나연이를 VR로 구현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VR·VFX(특수영상)기술 전문회사 비브스튜디오와 협업했다. 가족들의 인터뷰, 휴대폰 속 영상과 사진 등을 이용해 나연이의 목소리, 말투, 몸짓 등을 분석했다. 

이를 토대로 모션캡쳐 기술과 CG를 이용해 현실과 흡사하게 나연 양을 구현했고 AI(인공지능)을 이용해서 어머니 장지성 씨와 짧은 대화가 가능하도록 했다. 또한 VR의 배경을 장지성 씨와 나연이의 추억이 남아있는 장소로 설정해 사실감을 더했다.

이렇게 구현된 나연이를 다시 만난 장지성 씨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장지성 씨는 “웃으면서 나를 불러주는 나연이를 만나 잠시였지만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며 “늘 꾸고 싶었던 꿈을 꾼 느낌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VR프로젝트를 진행한 김종우 PD는 “세상에 없는 아이를 끝까지 기억하고 싶다는 가족에게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고자 진행된 프로젝트”라며 “먼저 떠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실제와 환상의 경계를 구현하는 VR기술을 합쳐보자는 의도로 기획했다”고 전했다.

VR기술로 구현된 나연이의 모습./ MBC다큐멘터리 유튜브 채널 캡처

◇ 방송 후 대중들 뜨거운 반응 보여… 상용화는 ‘아직’

방송 이후 대중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닐슨코리아의 통계에 다르면 ‘너를 만났다’는 방영 당시 전국 기준 시청률 2.7%를 기록했다. 또한 MBC 다큐멘터리 유튜브 채널에 부분 클립으로 업로드된 영상의 경우 14일 기준 조회수 1,300만 뷰를 돌파했다. 해외 각국에서 온 시청자들 역시 수많은 댓글을 작성하는 등 VR기술의 새로운 도전에 세계적인 관심이 모였다.

대중들은 이번 사례가 VR기술의 대표적인 ‘순기능’을 보여준 경우라고 평가하고 있다. 한 누리꾼은 댓글을 통해 “장지성 씨가 VR기술을 통해 가상의 나연이를 만나 허공에 손으로 쓰다듬는 모습이 너무나 슬펐다”며 “앞으로 VR기술이 더 발전하게 된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상용화를 위해선 시간이 좀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번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한 비브스튜디오의 이헌석 감독은 “개인의 상황에 맞는 스토리텔링을 준비하고 현실적인 모습을 만들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상용화가 될 경우에도 의학, 심리학적 견해도 포함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부작용 vs 순기능, 논쟁도 여전  

다만 이 같은 VR의 기능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VR기술이 점차 발달함에 따라 현실의 모습에 점점 근접하고 있다. 때문에 미래엔 VR을 과도하게 사용할 경우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를 구분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 전문가들은 “과도한 VR사용은 현실에 대한 도피 수단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며 “성인보다 자극에 민감한 청소년, 현실 도피경향이 강한 사람 등에게 중독성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너를 만났다’ 프로젝트처럼 VR을 통해 고인을 만날 경우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바닷물을 처음에 마시면 갈증이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더 큰 갈증을 불러오는 것과 유사한 이치다. 사랑하는 이를 가상으로 만났을 때는 행복감을 느끼겠지만 더 큰 상실감과 채울 수 없는 갈망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VR을 통해 고인을 만날 시 사전에 충분한 심리 교육과 훈련이 필요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선 자신의 소망을 보여주는 '소망의 거울'이 등장한다. 이 거울은 처음에 행복을 주는 듯 하지만 현실을 잊게 만들고 끝없는 갈망을 불러일으킨다. 과도한 VR 사용 역시 현실도피와 중독성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유튜브 캡처

반면, 오히려 VR기술을 심리 치료에 이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컴퓨터공학과 및 심리학 공동 연구팀은 23세부터 61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우울증 환자 15명을 대상으로 VR을 이용한 새로운 치료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실험 결과 9명의 환자들에게서 긍정적 변화가 관찰됐다”며 “특히 4명은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의 차도를 보였다”고 밝혔다. 

이어 “치료법의 효과가 확실히 확인할 수만 있다면 앞으로 VR기술을 이용한 우울증 치료의 잠재적 가능성은 매우 높다”며 “상용화가 될 경우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VR기기를 통해 환자들이 가정에서 치료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앞으로 VR기술의 발전 속도는 급격히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VR기술이 앞서 지적되는 부작용들을 이겨내고 순기능만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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