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중국 우한에서 들어온 바이러스 덕분에 ‘국가공인 삼식이’가 된 여러분들 어떻게 지내십니까? 나는 꼬박꼬박 세 끼 밥 잘 얻어먹고 삽니다. 전에는 안 그랬어요. 나이 들면 남자는 들어앉고, 여자는 나다닌다고 하잖아요. 우리가 꼭 그랬어요. 나는 나갈 일이 갈수록 줄었는데, 아내는 모임이 부쩍 늘어났지요. 동창회와 교회 모임들인데, 그게 점점 많아져서 어떤 날은 점심 한 끼, 어떤 날은 점심 저녁 두 끼를 내가 챙겨 먹었습니다. 그런데 바이러스 때문에 이제는 나갈 데가 없으니 세 끼 모두 꼬박꼬박 ‘따뜻한 밥’을 얻어먹는 ‘삼식’이가 된 거지요. 나 같은 삼식이는 나라가 바이러스를 잘 막지 못한 결과라, ‘국가공인 삼식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사이좋은 부부도 오래 얼굴 맞대고 있으면 싸우고, 하루 두 끼만 집에서 얻어먹는 ‘이식’이도 환영받지 못한다는데, 바이러스 때문에 국가공인 삼식이가 된 후엔 아직까지 그런 적이 없는 것도 다행이네요. 사소한 일로 언성이 잠깐 높아진 적이 있긴 하지만 서로 “내가 잘했네”라며 큰소리로 전면전을 벌인 적은 없습니다. 전에는 별 것 아닌 것을 놓고 서로 소리를 지르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랬다가는 손해라는 걸 알게 됐나봅니다. 싸움 끝에 성질을 못 참아 뛰쳐나간들 요즘 같은 때 기꺼이 만나줄 친구가 있겠어요, 친척이 있겠어요. 교회가 문을 열어주겠습니까. 극장엘 가겠습니까. ‘혼술’로 터진 속을 달래련만 원래 술을 안 좋아하니 그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여튼 그냥 그렇게 집에 처박혀 삼시세끼 끓여 먹으며, TV만 봅니다. 그러다가 정 답답해지면 동네 뒷산에 오르거나 개천가를 걷다가 들어옵니다. 야외에선 마스크를 안 해도 괜찮다고 하지만 나가보면 거의가 마스크를 끼고 있습니다. 나도 안 할 수가 없지요. 한 며칠 마스크 안 하고 나다닌 적도 있는데, 쳐다보는 사람들 눈길이 안 좋았어요. 경멸 같은 거.

감염자 숫자가 막 늘어나고, 우리 동네 바로 옆 동네(신천지 교회당이 있는 곳)에서도 마침내 확진자가 나온 며칠 전부터는 “내가 감염된다면? 내가 자가격리 대상이 된다면?”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늘 막막해지더라고요. 아내 친구들이 오늘 또 보내온 카톡을 보니 병실과 의료진 부족으로 자가격리해야 할 수밖에 없을지 모르니 비상식량은 물론 무슨 약, 무슨 약 등 약품도 여러 종 갖춰야 한다는데 아무것도 없어요. 설마 내가 감염되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에 아직도 뭘 많이 사다놓지는 않고 있습니다. 다행히 쌀은 농지가 좀 있는 사돈네에서 보내준 게 포대째로 남아 있다는군요.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내가 외손녀들을 참 예뻐해요. 제일 큰 놈은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되고, 둘째는 1년 8개월 됐는데, 제 일하랴, 두 아이 키우랴, 힘들어 하는 딸 도와줄 겸 큰 놈을 집에 데려다 놓고 싶은데 마음뿐입니다. 혹시라도 잘못되면 큰일 난다 싶어져서요.

애들 생각하면 또 나라 생각이 납니다. 도대체 이 나라가 어떻게 되려나, 이 아이들이 다 자랐을 때 밥이나 먹을 수 있으려나, 남한테 기안죽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는 있으려나, 걱정되는 겁니다. 한국 사람을 안 받아들이겠다는 나라가 80개국이 넘고 베트남의 정신 나간 자가 태극기를 코로나 바이러스 모양으로 변형하고 그 위에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가 아니라 ‘리퍼블릭 오브 코로나(Republic of Korona)’라고 써둔 사진을 보니 그런 생각이 더 듭니다. “한강의 기적, 88올림픽, 2002년 월드컵, 세계 10대 무역국, 세계 11위의 경제 규모 …. 이런 것들이 단숨에 무너지고 있구나” 이런 거지요. 아 정말 이 나라 어떻게 되려나.

여기까지 생각하니 “우리 세대가 제일 행복한 세대인 것 같아요. 우리 때는 내일은 잘 될 거라는 희망이 있었잖아요.” 작년 12월 마지막 날에 안부를 물어온 지인이 전화를 끊으면서 남긴 이 말이 요 며칠 새 귀에서 더 선명하게 울립니다.

윤석열 검찰에 청와대가 재갈을 물리려고 온갖 수단을 다 쓰던 무렵, 촛불 이후 더 쪼개진 나라는 누가 나서도 봉합이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고, 경제는 점차 내려앉아 정권 담당자들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2% 성장률에 목을 매고 있을 때 말입니다. 그는 나라가 이 꼴로 계속되면, 즉 조국 사태로 드러난 “전혀 평등하지 않은 기회, 전혀 공정하지 않은 과정, 전혀 정의롭지 않은 결과”가 횡행하는 이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자랐을 때 우리가 누려온 것의 반, 반의반이라도 누릴 수 있을까 걱정했던 건데, 이놈의 우한 바이러스 때문에 그의 걱정이 더 실감나게 됐다는 겁니다.

그러니, ‘국가공인 삼식이’ 여러분들, 못 나돌아 다니고 아내 분들 눈치만 보게 된 걸 두고 성질만 내지 마십시오. 우리가 제일 행복했던 세대라고 생각하세요. 내 말이 틀렸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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