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민생경제연구소 공동기획

소처럼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는 듯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민생 경제’ 위기는 단 한 가지 원인으로 귀결될 수 없다.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 중에는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각종 불공정한 시스템도 중심축 역할을 한다. <본지>는 시민활동가인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주요 민생 이슈를 살펴보고,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말이다. [편집자주]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착한 임대인 운동이 잇따르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상가임대차 갈등. 우리 사회의 ‘갑을 이슈’를 거론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주제다. 각종 상가임대차 갈등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면서 임대인과 임차인 관계는 ‘갑을’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부정적 이미지로 비쳐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에 작은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임대인들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소상공인들에게 월세를 인하하는 방식으로 응원에 나서면서 ‘상생’이라는 화두가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최근 ‘착한 임대인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며 “어려운 상황을 계기로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에 상생 문화를 다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기대를 보냈다.  

◇ “힘들 때 함께 고통분담” 건물주 ‘착한 임대료 인하’ 동참 

부산의 한 건물주가 임차인에게 임대료 인하를 전하며 보낸 메시지. /제보자 제공

“안녕하세요. 사장님. 코로나19 때문에 영업에 지장이 많으시지요. 작은 힘이나 도움을 드리고자 2~3월 두 달 임대료를 20% 감액하겠습니다. 많이 (지원)해드려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어려운 시기에 힘내시고 코로나 잘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부산에서 프랜차이즈 빵집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지난달 28일 건물주인 B씨로부터 이 같은 내용을 받고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A씨는 <시사위크>와의 전화통화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 깜짝 놀랐다”며 “코로나19로 지역 경기가 침체되면서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인데, 힘과 용기를 얻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해당 임대인 B씨는 자신의 4층 건물 임차인 모두에게 두 달 임대료 20% 감액을 동일하게 전달했다. 이 같은 임대료 인하 결정에 대해 B씨는 “어려운 상황을 함께 이겨내야 하지 않겠냐”면서 “임대인이나 임차인 양쪽 모두 같은 상황이다. 임차인이 있어야 임대인도 수익을 낼 수 있다. 그 분들이 힘들면 같이 힘들어지는 거다. 어려울 때 함께 견뎌내자는 의미로 조금이나마 인하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더 많이 인하를 못해줘서 미안할 따름”이라며 “조금씩만 고통 분담하면 이겨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소비 심리가 급격하게 위축되면서 소상공인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는 상황이다. 수익 감소로 인건비는 물론 한 달 임대료를 내기도 빠듯해진 소상공인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런 어려움을 직면한 소상공인들에게 한시적으로 임대료를 경감하거나 동결하는 ‘착한 임대인 운동’은 지난달부터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전주한옥마을 건물주 14명이 임대료를 한시적으로 인하한 것으로 시작으로 임대인들의 자발적인 동참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확진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대구와 경북 지역에서 ‘착한 임대인 운동’에 동참하는 건물주들이 늘고 있다고 알려진다. 최근 대구 원고개시장에서는 35명의 건물주가 착한 임대인 운동에 참여하기로 했다.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에 따르면 지난 9일 기준으로 ‘착한 임대인운동’에 동참한 전통시장 및 상점가는 210곳이며, 임대인은 1,576명으로 나타났다. 임대료 인하 대상 점포는 1만5,605개로 집계됐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최근 참여 임대인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며 “어제 당일만 해도 임대인 114명이 참여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중기부는 관할 상점가와 전통시장에 대해서만 ‘착한 임대료 운동’ 현황을 파악 중이다. 

이외에 소상공인이 입점한 부동산 건물을 보유한 공공기관, 학교법인, 은행, 대기업 등도 ‘착한 임대인 운동’ 동참에 나서고 있다. 신한·우리·국민·하나·기업·농협·부산·경남·대구·전북·광주은행과 수협·신협·새마을금고 등 지역 신용협동조합도 임대료 인하 방침을 밝혔다. 부산도시공사는 임대공장과 임대단지 임대료도 6개월간 50% 감면하기로 했다. 롯데, 신세계, 하이트진로, 한샘, 메가박스 등 대기업 및 중견기업들도 착한 임대료 운동 동참 뜻을 밝혔다. 여기에 건물을 소유한 유명 연예인도 임대료 인하 방침을 밝혔다. 

정부는 지난달 임대료를 인하하는 건물주에 대해 법인세·소득세를 임대료 인하금액의 50% 만큼 감면하는 방침을 밝히며 ‘착한 임대인 운동’을 독려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도 추가적인 혜택을 발표하고 있다.

◇ “대립 넘어 상생으로, 협력 문화 구축하는 계기되길”

다만 전체 소상공인 규모를 고려하면 ‘착한 임대인 운동’ 수혜를 누리지 못하는 상인들이 훨씬 더 많은 상황이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상인 C씨는 “임대료 인하는 딴 나라 얘기”라며 “건물주한테 어떤 얘기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재광 전국가맹점주협의회 공동의장은 “착한 임대인 운동 확산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다만 아직까지 이 같은 혜택을 본 점주나 상인들을 주변에서 직접 많이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착한 임대인 운동’은 임대인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기댈 수밖에 없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임대인들의 인식 제고와 함께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착한 임대인 운동’을 계기로 장기적으로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에 상생 협력 문화를 정착시키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 시사위크 DB

안 소장은 “지금처럼 어려울 때, 임대인들도 특단의 상생대책과 고통분담을 해줘야 한다”며 “임대인과 임차인의 상생은 비단 임차인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다. 임차인이 건물을 나가 공실이 발생하는 것보다는 장사를 이어가 꾸준히 수익이 나는 게 훨씬 좋다. 또 공실이 늘어나면 임대료도 떨어지거나 임차인을 계속 구해야 하는 리스크도 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선 지금은 특단의 상생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어 “아직 홍보가 안돼서 참여를 못하고 있는 건물주도 적지 않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착한 임대인 운동’을 홍보하고 유인책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착한 임대인 운동’에서 소외된 임차인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안 소장은 “건물주가 인하에 나서지 않아 대책이 없는 세입자들에겐 정부가 별도로 긴급 자금을 지원을 해주는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안 소장은 이번 ‘착한 임대인 운동’을 계기로 장기적으로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에 상생 협력 문화를 정착시키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안 소장은 “임차인과 임대인의 상생 협력으로 젠트리피케이션(상권 내몰림) 현상을 억제시키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며 “대립적인 관계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착한 임대인 운동’을 계기로 상생 문화를 정착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는 젠트리피케이션 폐해를 막기 위해 조례를 제정하고 임대인과 임차인의 상생 협력을 유도했다. 그 결과, 젠트리피케이션 우려가 컸던 ‘성수동 지속가능발전구역’ 임대료 인하 추세가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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