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의 익명성 악용… 거래 흔적남아 검거 가능

일명 '박사방'사건의 용의자 조주빈(24)이 ‘암호화폐’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암호화폐의 범죄 악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다시금 커지고 있다./ 픽사베이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암호화폐의 범죄 악용 가능성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전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4)이 텔레그램으로 여성들의 성 착취 동영상 등의 불법 음란물 거래에 ‘암호화폐’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조씨는 지난 2018년 12월부터 박사방을 운영하면서 가입자들에게 20~150만원 상당을 ‘입장료’ 명분으로 요구했다. 조씨는 이 과정에서 경찰의 추적을 피할 목적으로 비트코인, 이더리움, 모네로 등의 암호화폐로 입장료를 지급받았다. 이처럼 범죄에  암호화폐가 사용되는 사례가 등장하자 이에 대한 규제 및 보안 강화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 암호화폐를 범죄에 악용하게 만드는 ‘익명성’의 그림자 

온라인에서 거래되는 디지털 자산의 일종인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분산형 시스템 방식으로 처리된다. 기존 화폐인 지폐·동전 등과 다르게 실물이 존재하지 않으며 별도의 본인 인증절차가 없어도 파일처럼 보내 거래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금융기관이나 회사로부터 별도의 거래 인증을 받을 필요가 없어 익명성을 활용한 거래가 가능하다. 이것이 암호화폐시장이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암호화폐의 장점들이 범죄 수단에 악용되기 쉽다고 지적한다.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는 ‘P2P(인터넷 상 개인 대 개인 거래)’ 네트워크 이용자에게 익명 또는 가명을 제공한다. 이러한 익명성은 법정 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관리감독이 쉽지 않다.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는 ‘P2P(인터넷 상 개인 대 개인 거래)’네트워크 이용자에게 익명 또는 가명을 제공한다. 이러한 익명성은 법정 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관리감독 되기 쉽지 않아 범죄에 이용되기 쉽다./ 픽사베이

이번에 박사방을 운영한 조씨도 암호화폐의 익명성을 악용해 거래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모네로 세종류의 화폐로 입장료를 받은 조씨는 이 중 익명성이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모네로를 선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라이버스 코인으로 알려진 모네로는 비트코인, 이더리움과 달리 외부에서 암호화폐 지갑주소의 전송내역을 볼 수 없다.

이처럼 익명성을 가지고 있는 암호화폐는 암호화된 온라인 콘텐츠를 담고 있는 ‘다크웹’과 연계돼 마약거래, 자금세탁 등의 범죄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아동 음란물, 성 착취 음란물 시장 등을 빠르게 성장시키고 있는 원인 중 하나로 손꼽힌다.

실제로 암호화폐를 악용해 불법 음란물을 거래한 것은 조씨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검거된 아동음란물 다크웹 ‘웰컴투비디오(Welcome to Video)’의 한국인 운영자 한 명과 38개국 이용자 337명 역시 암호화폐를 거래 수단으로 이용했다. 

미 법무부에 따르면 웰컴투비디오는 암호화폐를 이용해 아동음란물을 수익화한 첫 번째 사례다. 이용자들은 암호화폐를 포인트로 전환해 동영상을 내려받거나 6개월 간 동영상을 무제한으로 볼 수 있는 VIP 계정을 구매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성을 가지고 있는 암호화폐는 마약거래, 자금세탁 등의 범죄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특히 아동 음란물, 성 착취 음란물 시장 등을 빠르게 성장시키고 있는 원인 중 하나로 손꼽힌다./ shutterstock

◇ 익명성 뒤에 숨어도 잡힌다… “거래 흔적 남아”

다만 경찰과 사이버 보안 전문가들은 암호화폐를 이용한 범죄를 추적할 수 있는 기술이 있어 완전범죄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번 박사방 사건의 조씨 역시 경찰과 암호화폐 전문 기업들의 협조로 범죄행위가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경찰은 현재 조씨가 사용한 암호화폐 지갑주소를 확보한 상태다. 이를 이용해 해당 주소로 암호화폐를 송금한 내역이 있는 주소를 역추적해 박사방 이용자들을 검거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조씨가 주로 이용했던 모네로 역시 추적하는데 시간은 걸리겠지만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비트코인 등 다른 암호화폐에 비해 모네로는 구입 경로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추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조씨의 텔레그램방 회원들은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4곳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거래소에 모네로 거래 관련 흔적이 남아있는 상태로 추적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암호화폐 업계도 수사 협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23일 경찰청 등 수사 당국의 협조요청을 받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원 역시 수사에 최선을 다해 협조한다는 입장이다.

코인원 차명훈 대표는 본인의 SNS를 통해 “텔레그램 성 착취방 사건 수사 협조 요청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가상 자산을 가지고 그 어떤 자금도 익명으로 거래되지 않도록 하는 게 현재 암호화폐 거래소의 의무이기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내년 3월 시행이 예정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특금법)’ 역시 개정안이 통과된 상태다. 특금법은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를 금융회사의 하나로 보고 암호화폐를 이용한 자금세탁, 불법거래, 테러 자금조달 등을 규제할 수 있는 법안이다.

한국블록체인협회는 “특금법에 따라 실명확인이 가능한 입출금 계정을 통한 금융거래가 가상자산 사업자의 신고 수리에 필수적인 요건이 됐다”며 “감독 당국 및 은행 등 금융기관과 활발히 소통해 실질적인 시행령 마련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고객확인제도(KYC)를 확실히 시행한다면 이번 n번방 사건처럼 암호화폐가 범죄나 불법활동자금에 활용되는 일은 감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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