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가 코로나19 직격탄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 /CGV
한국 영화계가 코로나19 직격탄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 /CGV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최대 위기다. 코로나19 사태로 신작 개봉이 줄줄이 연기되고, 촬영이 중단되는 등 영화 제작까지 차질을 빚고 있다. 영화관을 찾는 일일 관객수가 2만 명대로 급감하면서 극장업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 공개를 택한 영화 ‘사냥의 시간’. /넷플릭스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 공개를 택한 영화 ‘사냥의 시간’. /넷플릭스

◇ 코로나19 직격탄 맞은 영화계

관객도, 신작도 없다. 국내 극장가가 두 달째 이어지고 있는 ‘기근 현상’에 몸살을 앓고 있다.

영화 ‘결백’(감독 박상현), ‘침입자’(감독 손원평), ‘콜’(감독 이충현), ‘기생충: 흑백판’(감독 봉준호) 등 상반기 기대작부터 ‘밥정’(감독 박혜령), ‘나는 보리’(감독 김진유), ‘후쿠오카’(감독 장률), ‘알피니스트- 어느 카메라맨의 고백’(감독 김민철 임일진) 등 저예산 독립영화까지, 크고 작은 영화들이 개봉을 미뤘다. ‘사냥의 시간’(감독 윤성현)은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글로벌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 넷플릭스 공개를 택하기도 했다.  

영화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감독 댄 스캔론), ‘뮬란’(감독 니키 카로), ‘007 노 타임 투 다이’(감독 캐리 후쿠나가), ‘블랙 위도우’(감독 케이트 쇼트랜드), ‘콰이어트 플레이스 2’(감독 존 크래신스키) 등 할리우드 대작부터 애니메이션 등 외화들도 개봉 연기를 피하지 못했다. 

영화 제작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특히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계획했던 영화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송중기의 컴백작으로 기대를 모았던 영화 ‘보고타’(감독 김성제) 팀은 최근 콜롬비아 촬영을 중단하고 귀국했다. 요르단에서 촬영 예정이었던 황정민‧현빈 주연의 영화 ‘교섭’(감독 임순례)은 국내 촬영을 먼저 진행하기로 했다. 하정우‧주지훈 주연의 ‘피랍’(감독 김성훈)도 모로코 촬영을 잠정 연기한 상태다.

관객수도 연일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극장을 찾은 총 관객수는 총737만명에 그쳤다. 지난해 2월 2,227만을 동원한 것과 비교해 66.9%(1,490만명) 감소한 수치다. 또 지난 23일에는 일일 관객수가 2만2,873명에 머물렀는데, 이는 2004년 1월 영진위가 통합전산망 집계를 시작한 이래 역대 최저치에 해당한다. 

코로나19 여파로 개봉을 연기한 (왼쪽부터) 영화 ‘결백’(감독 박상현), ‘침입자’(감독 손원평), ‘콜’(감독 이충현) 포스터. /네이버 영화
코로나19 여파로 개봉을 연기한 (왼쪽부터) 영화 ‘결백’(감독 박상현), ‘침입자’(감독 손원평), ‘콜’(감독 이충현) 포스터. /네이버 영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문을 닫는 영화관들까지 등장했다. 먼저 국내 최대멀티플렉스인 CGV가 오는 28일부터 전국 35개 지점의 운영을 중단한다. 전체 직영점(116개)의 30%에 이른다. 정상 영업을 하는 극장도 전 상영관이 아닌 일부 상영관만 운영하는 스크린 컷 오프를 실시한다. 또 하루 3회차(9시간)만 상영하는 등 축소 운영하기로 했고, 이에 따라 모든 임직원이 주 3일 근무 체제로 전환될 예정이다. 

CGV 관계자는 27일 <시사위크>에 “사실 현 상황은 모든 극장의 운영을 완전히 중단하는 게 맞다”면서 “하지만 영화관의 매출은 영화 투자, 제작, 배급 등 전 분야와 연관이 돼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소상공인들과도 묶여있을 수밖에 없다”며 “영화인이든 상인이든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부 극장만 휴업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메가박스도 44개 직영점 가운데 대구 2개 지점이 임시 휴업 중이고, 일산 킨텍스·울산·평택·남포항 등 10개 지점이 4월 한 달간 영업을 중단한다. 반면 롯데시네마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고용안정성과 영화산업 보호 측면에서 아직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다만 “추후 상황에 따라 고려할 가능성은 있다”고 덧붙였다.

극장을 찾는 관객 수가 연일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뉴시스
극장을 찾는 관객 수가 연일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뉴시스

◇ 영화계 “한국 영화산업 붕괴 위기… 정부 지원 절실”

영화계는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요구했다. 지난 25일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한국영화감독조합‧한국영화마케팅사협회‧여성영화인모임 등 11개 영화단체와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4개 극장들은 ‘코로나 대책 영화인연대회의’를 결성, 한국 영화산업의 위기를 호소하고 정부의 긴급 지원을 요청하는 공동 성명을 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한국 영화산업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며 “한국 영화산업 전체 매출 중 영화관 매출이 약 8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영화관의 매출 감소는 곧 영화산업 전체의 붕괴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또 “영화산업의 위기는 결국 대량 실업사태를 초래하고, 이는 한국영화의 급격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 영화산업은 정부의 지원에서 완전히 외면당하고 있다”며 “영화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가 영화산업의 시급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영화산업의 특별고용지원업종 선정 △정부의 금융지원 정책 시행 △정부 지원 예산 편성 및 영화발전기금의 지원 비용 긴급 투입 등을 요구했다.

한국상영발전협회도 지난 26일 성명을 통해 “우리나라의 영화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는 현실을 외면한 채 상영업계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각 상영관은 코로나19 상황을 극복하고자 좌석 간 거리두기 캠페인, 방역 실시 등의 국민의 안전한 관람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자체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이러한 적극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영관이 기피 시설로 인식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정부는 지난 16일 여행업·관광숙박업·관광운송업·공연업 등 4개 업종을 ‘특별고용지원 업종’으로 지정했다. 특별고용지원 업종이란 고용 사정이 급격히 악화될 우려가 있는 업종에 정부가 각종 지원을 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그러나 영화산업은 빠져있다.

이에 대해 협회 측은 “정부는 국민의 요구와 우리 상영업계의 노력을 외면하고 있다”며 “최근 코로나19 정부 지원 분야에 영화산업이 제외된 것은 영화상영업계의 심각한 위기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또 극장 개봉 대신 넷플릭스 공개를 선택한 ‘사냥의 시간’을 언급하며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국 영화의 세계화는 차치하고 한국의 영상콘텐츠를 이끌고 있는 영화산업 자체가 붕괴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문화체육관광부의 국가 영화산업 발전을 위한 책임 있는 실질적 지원 정책 추진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코로나대응TF를 설치했다. /영화진흥위원회 홈페이지
영화진흥위원회가 코로나대응TF를 설치했다. /영화진흥위원회 홈페이지

◇ 영화진흥위원회, 코로나19 전담 대응 TF팀 가동 

영진위도 대책을 내놨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영화업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전담 대응 창구를 마련한 것. 영진위는 “지난 24일 사무국 공정환경조성센터에 ‘영화진흥위원회 코로나19 전담대응TF’(이하 코로나대응TF)를 설치해 활동을 시작했다”고  25일 밝혔다.  

코로나대응TF는 직원 4명(단장 1인, 팀원 3인)을 배치해 영화계의 코로나19 관련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지원 방안을 안내하는 소통 창구 역할을 수행한다. 영화업계 피해 현황 접수 및 취합, 영화계 지원방안 검토 및 수립, 관련 지원 제도 안내 등 피해 관련 상담과 이에 따르는 지원 업무를 담당한다. 그동안 실무팀에서 현장과 직접 대응해 수행해왔던 상영관 방역지원, 분야별 피해상황 조사 등의 업무도 총괄한다.

영진위는 “지금까지 코로나19 피해 지원 방안으로 △영화발전기금 부과금 납부 기한 연장 △연체 가산금 면제 △영화관 소독제 및 방역 지원 등을 긴급 시행해왔으나, 영진위의 사무 행정 체계가 한국영화 제작‧배급‧상영 지원 사업 실행 위주로 편제돼 있어서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초유의 위기 상황에 기만하게 대응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이런 시행착오를 신속하게 극복하기 위해 전담 조직을 구성하고, 대응 창구를 일원화해 효율적인 지원이 가능하도록 체계를 갖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실효성을 발휘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영화계 관계자들은 영진위의 늦장 대응을 꼬집으며 “구체적이지 않은 방안이 나온 것 같아서 유효할지 잘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도 “아직까지 평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며 “일단 팀이 꾸려진 만큼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활동 방안들이 나와야 하고, 동시에 어느 정도 실행이 될지 두고 봐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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