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사태로 원격의료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의료계는 정확성, 안전성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으나 편리한 접근성, 감염 방지, 신속한 진단 등을 이유로 찬성하는 의견도 만만찮다./ Shutterstock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확산 사태의 최전방에 서 있는 의료진들은 늘 감염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극심한 피해를 보고 있는 이탈리아는 지난달 31일 기준 총 8,538명의 의료진이 감염됐으며 사망자는 63명으로 집계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가격리된 환자를 신속히 진료할 수 있고 의료진의 감염도 방지할 수 있는 ‘원격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원격의료는 전화, 실시간 영상시스템 등을 이용해 의사가 환자를 직접 만나지 않는 비대면 의료 서비스를 말한다. 

정부는 현재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위해 전화 진료 등 원격의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원격의료 시스템의 전면 도입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료계 반발이 심해 도입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 원격의료 기술 보유했지만… 의료법 개정안, 20년째 국회 문턱 못 넘어

사실 우리나라는 원격의료 시스템 도입을 위한 인프라 확충이 충분한 상태다. 통신사들은 지난해 4월, 5세대 이동통신 5G의 도입과 함께 인공지능(AI)·빅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 의료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원격 진료를 위한 실시간 영상 송출 기술도 세계 최정상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의료법’에 막혀 원격의료를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번 코로나19조차 전화상담 등 한시적 조치 정도만 시행할 뿐이다. 이제라도 의료법을 개정해 원격의료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역대 정부들은 그간 20년 넘게 원격의료 시스템의 실제 현장 도입을 위한 의료법 개정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번번이 의료계와 정치권의 반대로 인해 개정이 무산됐다.

지난 2000년 김대중 정부는 ‘지식정보화 사회 구현을 위한 규제 개혁’ 과제 중 하나로 원격진료 도입을 추진했고 노무현 정부도 ‘고령화 사회 대비 및 신 소프트웨어(SW)시장 육성 방안’으로 원격진료를 추진했으나 의료계와 당시 야당 측 반발로 무산됐다.

원격의료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 의료계의 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이명박 정부 때다. 이명박 정부는 도서지역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 의료법 개정안이 18대 국회에 제출됐으나 의료계와 야당의 반대로 인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도 원격의료 허용을 주요 골자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이 역시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2014년 3월 당시 대한의사협회가 정부의 원격의료 및 의료투자 활성화 대책에 반발해 집단휴진에 돌입한 바 있다. 결국 관련법 개정안은 국회 상임위에서 상정하지 못하고 국회 회기 종료로 자동 폐기됐다. 

이후 2016년 20대 국회에 또 다시 의료법 개정안이 제출됐으나 지금까지 국회 복지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계류 중인 상태다.

서울대병원 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에서 중앙모니터링본부 간호사가 환자와 영상통화를 통해 증상을 체크하는 모습./ 서울대병원

◇ 원격의료 찬성 측 “접근성 높일 수 있어”… 해외 시장경쟁력 강화도 필요

원격의료 시스템 도입을 찬성하는 측은 편리한 접근성을 이유로 찬성하고 있다. 원격의료가 시행될 시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나 접근이 어려운 산간 지방 등의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이번 코로나19 사태처럼 의료진 감염 우려가 큰 상황이 발생할 경우 비대면 진료를 통해 방역망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또한 원격의료 금지가 ICT 업계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으며 글로벌 원격의료시장에서 우리나라가 도태될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실제로 미국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990년대 원격의료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미국 내 전체 진료의 약 17%가 원격진료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진료  6건 중 1건이 원격진료인 셈이다. 일본도 2015년부터 원격의료를 전면 도입했으며 2018년에는 원격의료에 대한 건강보험 지원까지 이뤄지고 있다. 

중국 역시 2016년부터 원격진료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으며 지난 2018년 3월 기준 스마트폰으로 원격진료를 받은 환자는 약 1억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중국 내 원격의료시장 성장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중국 시장조사기관 첸잔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중국 내 원격의료시장은 234억 위안, 한화 약 3조9,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으며 오는 2022년에는 358억 위안(약 6조원)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관련 기술을 보유한 SK텔레콤이나 네이버 등 기업들이 국내의 엄격한 의료법을 피해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는 추세다.

SK텔레콤은 뉴레이크얼라이언스와 공동으로 디지털 건강관리 전문회사 ‘인바이츠 헬스케어’를 설립해 중국 시장으로 진출했다. 인바이츠 헬스케어는 약 1억7,000만명의 회원을 보유한 중국 의료플랫폼 사업자 ‘지엔캉160’과 협력해 올 3분기 중 현지에서 만성질환 관리 서비스를 출시한다는 목표다. 네이버의 자회사 라인헬스케어도 지난해 12월부터 일본에서 플랫폼을 활용한 원격 의료를 시행 중이다.

IT업계 관계자들은 “미국, 유럽, 중국 등 글로벌 IT강국들은 예전부터 원격 의료 시스템을 도입해 활용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규제에 막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며 “훌륭한 IT인프라를 갖춘 우리나라에서 원격 의료 시스템이 도입되지 않고 있는 것은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 대한개원의협의회 등 의료계는 정확성, 안전성 등을 이유로 원격의료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실제로 질병의 증세는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화면이나 전화 통화상으로 진료할 경우 정확한 진료가 어려울 수 있다./ 뉴시스

◇ 원격의료 반대 측, 정확성·안전성 등 우려… “직접 진료하는 것과 달라”

반면 의료계는 원격의료 시스템 도입을 정확성·안전성·책임소재 모호·대형병원 쏠림현상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의료계는 원격의료 도입에 대한 취지는 이해하지만 전문가로써 많은 문제 발생이 우려되기 때문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 김대하 홍보이사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화면 상이나 전화로 진료할 경우 환자의 상태 파악에 심각한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며 “직접 진료를 할 때 확인할 수 있는 증상들을 놓치게 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예를 들어 단순한 속쓰림 증세의 경우 위염이나 소화불량 등 가벼운 질병으로 판단될 수도 있지만 실제 진단할 경우 위암 등 큰 병으로 판단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대한의사협회는 원격의료 시스템이 도입될 시 대형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려 동네 소규모 병원 인프라가 축소될 수 있고, 이로 인해 국가의 전반적인 의료체계가 붕괴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대한개원의협의회 역시 지난해 8월 성명을 통해 “환자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원격 의료지원 시범사업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청한 바 있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공중보건의사들에 의하면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시행할 때 적절한 문진 및 이학 검사 부족, 처방 후 증상 악화·합병증 관리 문제, 적절한 검사 없이 처방만 요구받는 등 의료 행위에서 가장 기본적인 문제들이 지적되고 있다”며 “급격한 원격의료 사업 추진은 더 큰 문제로 다가올 수 있어 반드시 재고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편리성을 앞세워 가장 필수적인 진료의 안전성을 무시한 채 매우 위험한 진료가 이뤄질 수 있다”며 “진료를 받기 어려운 취약지구에 편리함을 위해 위험성을 내재한 진료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면 이 사업의 존재가치조차 의심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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