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이번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을 겪으면서 새삼 되새기는 말들 중 하나가 제행무상(諸行無常)일세. 이 세상, 아니 이 우주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다시 확인하고 있지. “영원하다는 것 모두 다 사라지고/ 높다는 것은 반드시 낮아지며/ 모인 것은 뿔뿔히 흩어지고/ 한번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느니라.”는 <법구비유경> 구절을 반복해서 읽고 있네. 누구나 직접 경험하면서도 일상에서 잊고 사는 가르침이지.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없다.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도 그렇고.

코로나사태로 지금까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되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네.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을 새삼 깨우쳤다고나 할까. 뒤돌아보면, 우리는 너무 ‘당연의 세계’에 빠져 의심하지 않고 살았던 게 사실일세. 예를 들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네. 그러면서 가난한 사람들은 게으르거나 개인적인 문제가 많아서 비참하게 살 수밖에 없다고 비난하거나 무시하고 배제하지. 반면에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부자들을 존경하고 스스로 그런 부자가 되려고 발버둥 치면서 살고 있는 게 우리 보통 사람들의 삶이야.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누구나 열심히 일한다고 다 부자가 될 수 있을까? 그런 환상은 부자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일종의 이데올로기일 뿐이야.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자본과 권력은 학교, 언론, 교회, 감옥, 군대 같은 이른바 ‘이데올로기 기구’들을 통해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치네.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이런 식으로 길들여져 ‘당연의 세계’를 만들고 스스로 믿고 따르지. 이게 사회학에서 말하는 ‘사회화(socialization)’방식이야.

우리가 얼마나 ‘당연의 세계’에 살고 있는지는 어린애들을 가르쳐보면 알 수 있네. 어린이들은 궁금한 게 있으면 ‘이건 왜 이래?’라고 계속 묻지. 아이가 계속 물으면 대학을 나온 엄마나 아빠도 자세한 설명을 못하고, ‘그게 당연한 거야. 너도 그렇게 알아 둬’라고 말하고 마네. 어떤 때는 ‘야! 너무 꼬치꼬치 따지마. 골치 아파!’라고 도리어 짜증을 내기도 하지.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맨날, 당연히, 거기에 있다’고 믿는 것들을 의심하고 따져야 정상이야. 왜냐고? 그들은 아직 세상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영혼을 갖고 있다는 뜻이거든. 아직 사회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순수한 보석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문명으로 오염된 어른들의‘당연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거야. 하지만 그런 애들도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 다녀오고, 직장에 다니면 다른 어른들과 비슷해져. 어른들은 그런 걸 흔히 ‘철이 든다’고 좋아하지.

‘당연의 세계’는 오랜 시간 학습과 관습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견고한 성곽과 같지. 그래서 쉽게 허물어지지 않아.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그런 당연의 세계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네. 지금까지 우리가 아무런 의심 없이 그냥 믿고 따랐던 생활방식으로는 더 이상 안정된 일상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기후 위기로 코로나19 같은 세계적 대유행이 주기적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았고, 지금까지 당연하게 생각했던 반생태적인 미국식 생활양식으로는 인류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깨우친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네. 코로나19 대유행의 서글픈 역설이지.

불행 중 다행이라고나 할까. 우리보다 훨씬 잘 산다고 믿었던 이른바 선진국들에 대한 환상도 하나 둘 깨지고 있네. 지난해 12월 31일, 세계보건기구(WHO)에 정체불명의 폐렴이 보고된 지 136일째인 5월 16일 9시 현재, 전 세계 코로나 확진자가 450만 명을 넘었네. 그 중 4분의 3이 미국과 유럽의 국민이야. 사망자도 미국이 8만 7,493명으로 가장 많고, 영국과 이탈리아는 3만명, 프랑스와 스페인은 2만 7000명을 넘겼어. 잘 산다는 나라들에서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지금까지 선망의 대상이었던 미국과 유럽의 민낯이 처참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 같네. 아마 미국을 무조건 좋아했던 사람들이 가장 큰 충격을 받았을 걸세. 뭐든 세계 최고라는 미국(美國)의 신화, ‘당연의 세계’에 큰 금이 가기 시작한 거지.

김승희 시인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2>에서 말했던 것처럼, ‘당연의 세계’는 아침에 눈뜨면 바로 옆에 있는 우리들의 일상 세계네. 오랫동안 길들여져서 변화시키거나 버리기 쉽지 않지. 하지만 이제 우리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바꾸어야 할 세계야. 그러니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무거운 싸움이 될 수밖에. 게다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어.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세계야. 7연으로 이루어진 그 시의 마지막 두 연일세.

“당연의 세계는 물론의 세계를 길들이고/ 물론의 세계는 우리의 세계를 길들이고 있다,/ 당연의 세계에 소송을 걸어라/ 물론의 세계에 소송을 걸어라/ 나날이 다가오는 모래의 점령군,/ 하루종일 발이 푹푹 빠지는 당연의 세계를/ 생사불명, 힘들여 걸어오면서,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은// 그와의 싸움임을 알았다,/ 물론의 모래가 콘크리트로 굳기 전에/ 당연의 감옥이 온 세상 끝까지 먹어치우기 전에/ 당연과 물론을 양손을 들고/ 아삭아삭 내가 먼저 뜯어먹었으면”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