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에서 또 다시 잇단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오너일가 및 권오갑 회장의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에서 또 다시 잇단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오너일가 및 권오갑 회장의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최근 연이은 산재 사망사고로 도마 위에 오른 현대중공업이 조선사업부문 수장을 전격 교체했다. 잇단 사망사고에 대한 책임이 수장 교체의 배경이다. 하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안전문제의 책임을 부사장선에서 매듭짓는 것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산재 사망사고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오너일가 및 권오갑 회장이 책임론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 잇단 사망사고에 하수 부사장 물러나

현대중공업에선 올해 들어 벌써 5명의 근로자가 사망했다. 지난 2월 추락사고에 이어 4월에는 2건의 끼임사고가 발생했고, 지난 21일엔 가스질식 사망사고로 또 한 명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나머지 1명은 지난 3월 당직 중 익사한 채 발견된 근로자다.

이처럼 잇따른 사망사고는 앞선 사고로 경각심이 높아진 가운데 거듭됐다는 점에서 더욱 빈축을 샀다. 4월엔 앞선 끼임사고로 안전점검을 진행하던 중 또 다시 사망사고가 발생했고, 21일 사망사고는 고용노동부의 특별감독이 진행된 직후였다.

한 달에 1명꼴로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현대중공업은 거센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앞서도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대대적인 대책을 마련한 바 있다는 점에서 현대중공업을 향한 시선은 더욱 싸늘했다.

이에 현대중공업은 지난 25일 안전대책 강화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인사조치를 단행했다. 조선사업부문 대표를 맡고 있던 하수 부사장이 연이은 사망사고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그 자리에 이상균 현대삼호중공업 사장이 선임됐다. 아울러 조선사업부문 대표를 사장급으로 격상시켜 생산 및 안전을 총괄하도록 했고, ‘생산본부’를 ‘안전생산본부’로 확대 개편했다.

◇ 침묵하는 오너일가-영전한 권오갑 회장

현대중공업이 연이은 사망사고로 즉각 인사조치를 단행한 것은 무척 이례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이 나온다. 잇단 사망사고의 책임을 부사장급에서 매듭짓는 ‘꼬리 자르기’이자, 알맹이 없는 대책이란 지적이다.

현대중공업의 산재 사망사고 논란은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14년엔 무려 13명이 목숨을 잃었고, 2015년에도 7명이 사망했다. 2016년엔 일주일 새 3명이 사망하는 등 11명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에도 현대중공업은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사망 재해·산재 은폐 등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기업’ 명단에서 가장 많은 산재 사망자를 발생시킨 기업으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이번에도 그렇듯, 현대중공업은 사망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대대적인 점검을 실시하고 대책을 마련해왔다. 하지만 올해도 반복되고 있는 산재 사망사고는 그간의 대책이 근본적인 해결책과 거리가 멀었음을 보여준다.

이에 기업에 대한 강력한 처벌은 물론 오너일가 및 권오갑 회장의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대중공업 노조 등 노동계는 최근 잇단 사망사고와 관련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사업주에 대한 구속수사 등 엄중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며 지난 25일부터 국회 정문 앞에서 긴급 농성투쟁에 돌입한 상태다. 실질적인 주체에게 제대로 된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거듭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 잔혹사를 끊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조경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지부장은 지난 20일 청와대 앞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정몽준은 현대중공업에서 벌어들인 자금으로 인수한 현대오일뱅크를 토대로 2년간 1,767억원이라는 배당금을 챙겨갔다. 정몽준이 선임한 현대중공업 사장은 대주주의 이윤을 늘리기 위해 생산제일주의 경영행위를 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의 죽음을 막기 위해선 대주주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법과 제도, 엄격한 행정집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최근 수년간 산재 사망사고가 이어지는 동안 현대중공업그룹 최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그의 장남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은 단 한 번도 공식사과 등의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후계자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정기선 부사장의 경우, 주요 성과나 업적과 관련해서는 전면에 대두되지만 산재 사망사고에 대해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오너일가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회장 역시 수십 명의 안타까운 목숨에 걸맞은 책임을 진적은 없다.

2014년 9월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취임한 바 있는 권오갑 회장은 11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며 노동계로부터 ‘최악의 살인기업’에 선정된 2016년 당시에도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하지만 산재 사망사고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는커녕 꿋꿋이 자리를 지켰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부회장에 이어 회장으로 승진하며 승승장구했다.

최근 산재 사망사고와 관련해 안전대책 강화방안과 인사조치가 발표된 지난 25일, 권오갑 회장은 “잇따른 중대재해로 지역사회는 물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진심으로 송구스럽다”며 “한동안 거의 발생하지 않았던 안전사고가 금년 들어 갑작스럽게 늘어난데 대해 기존의 안전대책이 실효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재점검이 필요하다. 안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인 만큼, 앞으로 모든 계열사가 안전을 최우선가치로 삼는 경영을 펼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권오갑 회장은 5년 전인 2015년 신년사를 통해서도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이라고 강조하는 등 비슷한 언급을 꾸준히 반복해온 바 있다. 하지만 권오갑 회장의 안전에 대한 강조는 결과적으로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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