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그린뉴딜’ 정책을 한국판 뉴딜의 중심 사업 중 하나로 추진할 것을 발표하면서 국내 수소경제도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주민 반대로 인한 수소충전소 건설 지연 문제는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정부가 지난 20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그린뉴딜’ 정책을 한국판 뉴딜의 중심 사업 중 하나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린뉴딜이란 저탄소 경제구조로 전환하는 ‘녹색산업’ 분야를 지원해 환경문제에 대응하면서 해당 분야의 새로운 고용과 투자를 늘리는 사업이다. 특히 지난해 1월부터 정부가 핵심사업으로 진행 중인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과 더불어 국내 수소산업 전반에 큰 힘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다만 수소업계에서는 우리나라의 수소경제 활성화가 예상보다 늦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내 수소경제를 이끌어나갈 양대 축으로 손꼽히는 수소자동차 사업의 핵심인 수소충전소 건설이 ‘주민 반대’라는 난관에 부딪히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다수 지역에서 수소충전소는 건설부지 근처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로 지연·취소되는 상황이다. 수소업계와 수소분야 전문가들은 수소충전소에 대한 주민 수용성 확보를 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의 수소경제의 미래도 없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 부산 동구 수소충전소 건설, 주민 반대 극심… 주민설명회는 ‘전쟁터’ 

부산시는 최근 동구 좌천동에 지상 1층 3개동 규모의 위험물 저장 및 수소충전소를 올해 하반기 안으로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는 해당 충전소가 건설되면 부산시 내 수소차 보급 확산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부산 동구 주민들은 도심에 수소충전소를 건설하는 것은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며 거세게 반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수소충전소 건설을 추진 중인 산업통상자원부 소속 수소경제홍보TF는 지난 15일 수소에너지의 필요성과 안전성 등을 알리기 위해 범일5동 주민센터에서 주민설명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당시 참석자의 말에 따르면 주민 반대는 설명회의 유무와 관계없이 매우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5일 실시된 부산 동구 수소충전소 주민 설명회 모습. 당시 주민설명회에 참석했던 수소차 카페 회원의 설명에 의하면 전문가들이 설명을 할 때마다 건설을 반대하는 측에서 거센 항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수소전기차 넥쏘카페

주민설명회에 참석했던 수소차 카페 회원은 당시 상황을 ‘전쟁터’와 유사했다고 묘사했다. 그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전문가와 관계자분들이 발표를 하려고 하면 반대 측에서 거세게 항의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토론이나 설명이 거의 불가능했다”며 “몇몇 발표자분들은 가져온 자료를 요약해서 짧게 발표하고 나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수소차 카페 운영자가 촬영한 주민설명회 영상에서는 수소경제홍보TF 관계자가 설명을 시작하는 순간 주민 고성과 욕설이 오갔다. 수소충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한 주민은 “정부에서 수소충전소는 안전하니 걱정 말라고 하지만 당장 집 앞에 설치되는 것을 반길 사람이 누가 있냐”고 반대의견을 내비쳤다.

부산 동구 수소충전소 반대 의견을 주장하는 이들은 인터넷상에도 활동하고 있다. 자신을 ‘현대수소차보다 북항 재개발을 더 사랑하는 부산시민 모임’이라고 밝힌 누리꾼들은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 등지에 ‘북항 재개발 2단계사업 대신 현대 수소차 충전소?’라는 제목의 글들을 올리고 있다.

게시글을 올린 누리꾼은 부산 동구 수소충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이유로 △현대자동차만을 위한 수소충전소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에너지 △2년 후 재개발 예정인 곳에 입지 선정 △주민들에게 쉬쉬한 부산시의 불통행정 △2030엑스포 유치 사업 악영향 등으로 꼽았다.

특히 노르웨이 수소충전소 폭발사고, 강릉 과학단지 수소탱크 폭발사고 등을 이유로 수소에너지의 위험성 우려가 큰 상황이다. 건설 예정 부지 근처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수소탱크 폭발사고는 매우 위험하고, LNG보다 10배에 해당하는 폭발력을 가지고 있어 걱정된다”며 “전문가들이 안전하다, 안전하다 했지만 강릉 수소탱크도 폭발하지 않았냐”고 우려를 표했다.

부산 동구 수소충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현대수소차보다 북항 재개발을 더 사랑하는 부산시민 모임’에서 온라인 카페, 블로그 등에 배포 중인 자료. △현대자동차만을 위한 수소충전소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에너지 △2년 후 재개발 예정인 곳에 입지 선정 △주민들에게 쉬쉬한 부산시의 불통행정 △2030엑스포 유치 사업 악영향 등을 이유로 수소충전소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 주민 반대로 인한 수소충전소 건설 지연… 불편은 운전자의 ‘몫’

이 같은 수소충전소 건설 반대는 부산 동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는 6월 아산시 초사동 복합공영차고지 조성안에 건설 예정인 수소충전소도 주민 반대로 인해 건설이 취소될 뻔 했다. 총 사업비 약 150억원이 들어갈 예정인 해당 사업은 다행히 주민 설득을 통해 건설이 진행될 수 있었다.

가장 많은 수소차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지역 수소경제 활성화에 애쓰고 있는 강원도 역시 수소충전소 건설 문제로 난감한 상황이다. 강원도는 올해 수소차 1대당 총 4,25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발표했으나 여전히 수소충전소는 단 한 곳도 없다. 

이에 강원도는 지난해 말까지 삼척을 시작으로 춘천, 원주, 속초 등 5곳에 수소충전소를 건설할 계획이었으나 주민반대로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었다. 삼척과 춘천, 원주는 건설을 시작한 상태이나 수소탱크 폭발사고가 일어난 강릉은 완공 시점조차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세종특별시도 대평동에 수소충전소 부지가 지정됐으나 주변 아파트 단지가 다수 분포하기 때문에 주민 반대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재 건설됐거나 착공 중인 수소충전소는 정부가 목표했던 수준에 턱없이 못 미치는 실정이다. 지난해 10월 산업부와 환경부 등 관계부처들이 계획한 ‘수소 인프라 및 충전소 구축 방안’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설치됐어야할 수소충전소 수는 86기다. 또한 오는 2022년까지 설치돼야할 수소충전소는 310곳이다. 

그러나 산업부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실제 운영 중인 수소충전소는 34곳이다. 현재 건설 중인 20기를 포함하더라도 54곳에 불과하다. 환경부는 수소충전소 27개소 확대를 위해 405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주민들의 반대가 지속될 시 이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

이 같은 수소충전소 건설 지연은 수소차 이용자들에게도 큰 불편으로 다가오고 있다. 수소차를 구매했지만 거주지 근처에 수소충전소가 없는 운전자는 먼 지역까지 연료 충전을 위해 방문해야 하므로 시간낭비와 연료낭비 모두를 겪어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수소충전소가 적어 한 번 충전하는데 시간이 1시간 넘게 걸리는 불편까지 발생하고 있다.

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한 수소차 이용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서울에 업무를 보러갈 때 상암, 양재 충전소에서 보통 충전을 했었는데 지금 양재 충전소가 설비 노후화로 문을 닫은 상태라 불편이 크다”며 “하루 빨리 수소충전소 숫자가 늘어나길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운영 중인 수소 충전소는 34곳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양재 수소 충전소, 상암 수소 충전소는 유지 보수 및 고장 수리 등으로 문을 닫은 상태다. 사진은 시설 노후화 점검으로 문을 닫은 양재 수소 충전소 / 박설민 기자 

◇ 전문가들, “기술적 안전성은 확보했으니 이젠 ‘사회적 안전성’ 차례”

전문가들은 수소충전소 건립에 주민 반대가 발생하는 이유를 ‘사회적 안전성’ 확보가 미흡한 탓이라고 지적한다. 수소충전소, 수소연료전지 등 수소경제 인프라에 대한 ‘기술적 안전성’은 확보했으나, 정작 이를 이용할 소비자에 대한 안전성 설명 및 수용성 확보에 대한 정책이 함께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속적인 주민설명회 개최와 설득으로 주민 반대 문제를 해결한 ‘인천연료전지 발전소’ 건설 사업은 사회적 안전성 확보에 따른 주민 설득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인천연료전지 발전소는 한국수력원자력, 두산건설, 삼천리 등이 참여해 착공하는 39.6MW규모의 수소연료전지 발전소다. 지난 2018년 12월 착공을 시작했으나 인천 동구 주민들이 발전소의 위험성, 환경 문제 등을 이유로 반발하며 전면 백지화를 주장했다. 

당시 단식투쟁, 주민 시위 등으로 주민 반대가 거세지자 수소업계에서는 사업이 중단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하지만 지속적인 전문가들의 설명과 안전성 담보방안 등을 마련해 주민들을 설득한 결과 수소연료전지 발전소 건설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이홍기 우석대학교 수소연료전지 지역혁신센터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수소경제의 한 축인 소비자에 대해 안전성 설명과 수용성을 확보할 수 이는 정책이 선행되지 못한 것이 문제”라며 “기술적인 안전성은 확보했으나 사회적 안전성에 대해 관계 전문가들이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다”고 밝혔다.

이어 “수소경제의 성공여부는 최종 소비자인 국민들에게 달렸다”며 “소비자의 마음을 잡는 홍보 전략과 지역주민들이 안전관리 시스템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수소산업에 대한 신뢰를 구축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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