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7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서울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태년 원내대표가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뉴시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7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서울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태년 원내대표가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뉴시스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을 지낸 윤미향 당선인 사수 의지를 천명하면서 정치권 안팎에서는 민주당이 민심 흐름을 역행하다 제2의 조국 사태를 초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정의연과 윤미향 당선인의 회계부정 의혹 등을 촉발시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지난 25일 2차 기자회견 이후 여론이 크게 악화됐고 검찰 수사도 본격화됐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최근 대검찰청 간부들에게 정의연 회계 부정 및 안성쉼터 의혹에 대해 “정부 보조금이 투입된 사건인 만큼 신속히 수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당선자의 기부금 유용 의혹도 제기된 상황이기 때문에 윤 당선자에 대한 자택 압수수색과 계좌 추적, 소환 조사 등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민주당은 “사실 관계 확인이 먼저”라는 신중론에서 지난 26일 윤 당선인의 적극적인 소명을 요구하는 쪽으로 기류 변화를 보였다. 민주당이 출구 전략 모색에 들어가면서 당원 제명 또는 자진 사퇴 유도까지 열어놓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이해찬 대표는 27일 윤미향 당선인 사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대표는 정의연과 윤 당선자의 그간 활동에 잘못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며 관계 당국의 신속한 사실 확인을 촉구하면서도 최근 제기되는 각종 의혹을 ‘신상 털기’나 ‘사사로운 일을 과장한 것’으로 치부하며 윤 당선자를 옹호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 양재동 더K호텔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30년 운동을 하면서 잘못도 있고 부족함도 있을 수 있다. 또 허술한 점도 있을지도 모른다”면서도 “그렇다고 해도 30여 년 활동이 정쟁의 구실이 되거나 악의적 폄훼와 극우파들의 악용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특히 일본 언론에서 대단히 왜곡된 보도를 많이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잘못이 있으면 고치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 한다”며 “그러나 이는 사실에 기반해야지, 신상털기식 의혹 제기에 굴복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관계 당국은 최대한 신속하게 사실을 확인해주고 국민 여러분께서도 신중하게 시시비비를 지켜보고 판단해주시길 당부드린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또 윤 당선자와 정의연 관련 의혹 보도에 대해 “최근에 빚어지고 있는 일련의 현상을 보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들이 매우 많다”며 “특히 본질하고 관계 없는 사사로운 일을 가지고 대부분의 과장된 보도가 많이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여권 내에서는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에 대한 배후설을 제기하거나 윤 당선인을 지나치게 옹호하는 목소리가 나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방송인 김어준 씨는 지난 26일 자신이 진행하는 TBS라디오에서 가자평화인권당 최용상 대표를 배후로 지목하며 “누군가가 자신의 입장을 반영한 왜곡된 정보를 이 할머니에게 줬다고 개인적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최민희 전 민주당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윤 당선인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에 대한 할머니의 거부감이 솔직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밝혔고, 이 할머니가 ‘모금 뒤 배가 고파서 윤 당선인에게 밥을 사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 말에 대해서는 “(밥 값에) 기부금을 쓰면 안 된다”며 윤 당선인을 적극 옹호했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서는 ‘윤미향 옹호론’ 못지않게 ‘불가론’도 분출되고 있다. 김해영 최고위원은 2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표 면전에서 “윤 당선인에게 제기된 여러 의혹에 대해 신속하게 입장 표명을 요청한다”며 “당에서도 마냥 검찰수사 결과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당 차원의 신속한 진상조사가 필요할 것이다. 당에서도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용진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에 출연해 “본인이 해명해야 될 책임이 있고 그래야 본인도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그것를 벗을 수가 있다”며 “침묵 모드로만 있는 것도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현재 여론 흐름은 민주당 지도부와 윤미향 옹호론자들의 뜻과는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리얼미터가 지난 26일 오마이뉴스 의뢰로 전국 18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0.4%는 윤 당선인이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답했다. ‘사퇴할 필요가 없다’는 응답은 20.4%로 집계됐으며 ‘잘 모른다’는 9.2%였다.

보수층(84.4%), 미래통합당 지지층(95.4%)에서 ‘사퇴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층(57.1%)과 민주당 지지층(51.2%)에서도 50% 이상이 ‘사퇴해야 한다’고 답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때문에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의 윤미향 당선인 ‘사수’ 방침은 결국 악화된 여론만 더욱 자극해 제2의 조국 사태를 초래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지난해 ‘조국 사태’에서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비판 목소리를 ‘검찰 개혁’ 반대론자로 규정하며 조 전 장관을 적극 엄호했다.

당 안팎에서 여론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지도부는 조 전 장관이 법무부 장관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악화된 민심도 곧 회복될 것이라며 일반적인 민심과는 동떨어진 상황 인식을 보였다. 결국 ‘조국 사태’는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기회 평등, 과정 공정, 결과 정의’라는 문재인 정부의 모토를 크게 퇴색시키면서 여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민생당 박지원 의원은 BBS 라디오에 출연해 “(윤 당선인이)해명 없이 더 버텼다가는 안 된다고 느끼는 민주당 의원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며 “처음부터 민주당이 일정 부분 선을 그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정의당 장혜영 혁신위원장은 YTN라디오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대응에 대해 “정치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는 공당, 그리고 여당이기 때문에 그렇게 검찰 수사에만 의존하는 것은 우리 정치를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총선이 1주일 뒤라면 민주당이 윤 당선인을 바로 제명시켰을 것”이라며 “이해찬 대표 말대로 사실 확인을 하려면 대법원까지 가면 몇 년이 걸리는데 그때까지 정치권은 앉아서 구경만 하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의 오늘 발언은 선거에서 압승했기 때문에 이제는 승리감에 도취돼서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윤 당선인을 공천한 사람들은 먼저 책임지고 물러나야 맞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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