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북한이 유튜브에 ‘먹방'을 올리는 일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요리법이나 음식 먹는 모습 등을 담은 영상을 의미하는 먹방은 유튜브를 주도하는 콘텐츠 중 하나로, 국내에도 이 분야 유명 유튜버들이 적지 않다.

북한에서 유튜브의 등장이나 먹방은 뜻밖이다. 일반 주민들의 경우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도록 차단되는데다, 철저한 통제 시스템 속에 있는 북한에서 SNS나 유튜브를 통해 개인의 소소한 일상이나 활동 모습을 방송하고 공개·공유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란 점에서다. 

북한 당국이 유튜브의 효용성에 눈을 떠 체제선전이나 결속에 적극 활용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유튜브 채널 ’NEW DPRK‘에 등장한 여성은 평양의 한 음식점에서 햄버거를 먹고 음료를 마시는 장면을 보여준다. 또 다른 채널에서는 퇴근 후 대형마트에 들른 북한 주민이 쇼핑을 하고 음식을 즐기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는 코로나19 사태나 대북 제재 상황에서도 북한 주민들이 일상생활을 누리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실제 북한은 평양에 물품 부족과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외신 보도를 부인하려는 듯 판매 상품이 가득 쌓인 매대를 보여주는 유튜브를 만들어 ’끄떡없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북한이 유튜브로 내부 소식을 내보내기 이전까지는 주로 평양에 주재하는 외국 대사관 인사나 북한과 우호적인 중국 등지의 유튜버들이 활약했다. 관광차 평양을 찾은 중국의 한 유명 유튜버는 평양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은 뒤 촬영한 영상과 함께 후기를 올렸고, 원산과 함흥 등 지방을 찾아 길거리 음식이나 해변에서 조개구이를 즐기는 모습을 소개하기도 했다.

평양에 주재하는 몽골 대사관 관계자는 분식점에서 김밥을 사먹으며 “한 줄에 1500원(북한 돈) 한다. 맛은 어떤지 먹어 보겠다”며 즉석 먹방을 진행하기도 했다. 북한이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의 방북객에게는 통제를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한다는 점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평양 주재 인도네시아 대사관 외교관으로 근무한 자카 파커 씨는 2016년 5월 올린 영상으로 ‘북한 영상 조회수’ 순위 2위(1위는 오청성 판문점 탈북 망명)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는 김밥과 ‘튀기’(튀김의 북한식 표현) 등을 파는 길거리 음식점 형태의 매대와 이를 먹는 주민과 군인들의 모습을 담아 인기를 끌었다.

파커 씨는 한글로 설명 글을 올려 “평양의 북새 거리에서 길거리 음식을 맛보려 했어요. 음식을 많이 사지는 않았고요, 우리가 무슬림이라서 음식을 고를 때 매우 조심한답니다. 채소나 해산물, 밥과 밀가루 든 음식만 사 먹어요”라고 전했다.

이처럼 북한의 먹거리 문화가 유튜브에서 큰 관심을 받는 현상에 자극받은 듯, 북한 관영TV 매체나 인터넷 선전물도 최근 들어 북한의 음식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준비해와 화제가 됐던 평양냉면이나 해외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대동강 맥주 등을 주로 내세우던 데서, 점차 다양한 먹거리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평양이나 중산층 이상의 특권계급에 제한된 경향일 수 있고 북한 체제를 외부에 홍보하려는 선전 성격을 띠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이 공언해온 민생 챙기기를 신경 쓰는 듯한 측면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아이템이지만 먹거리 소재를 다양화하려는 움직임도 눈길을 끈다.

노동신문은 평양면옥에서 치러진 미꾸라지 요리 경연 소식을 전한 뒤 “추어탕을 만드는 방법이 지방마다 더욱 다양해지고 창안 요리의 가짓수도 훨씬 많아졌다”고 전했다. 북한의 강원도 지역에서는 원산 조개밥이 새로운 명물 요리로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재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강원도에서 원산 조개밥이 새 명요리로 등장해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다”면서 “여러 가지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상어는 뜻밖에도 북한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먹거리 가운데 하나다. 김정은 위원장이 철갑상어 양식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인민들에게 보급할 것”을 지시한데 따른 것이다. 2018년 9월 평양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한 문재인 대통령과 남측 대표단 일행이 만찬을 한 대동강 수산물시장의 경우도 철갑상어 요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음에 드는 어류를 골라 즉석에서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북한이 이런 먹거리 다양화에 나선 건 1990년대 중후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의 트라우마라 할 수 있다. 당시 잇단 대홍수로 인해 식량난이 발생했고 아사자가 200~300만 명에 이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참한 상황이 이어졌다. 노동당이 주던 배급이 끊겼고 초근목피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파국적 위기가 닥쳤다. 더 이상 ‘풀과 고기를 바꾸자’며 토끼 기르기나 장려하던 수준으로는 위기 극복이 어려운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먹는 문제의 해결은 북한 당국이 절실하게 매달려온 이슈다. 하지만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모순에다 1990년을 전후한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는 그렇지 않아도 빈사 상태였던 북한 경제 전반에 충격파를 던졌다. 근근이 버텨주던 해외 수출 시장이 쪼그라든 건 물론이고 변변한 원조를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개혁·개방을 택한 중국은 아직 북한에게 의미 있는 구원의 손길을 내밀 처지가 아니었다.

이 같은 총체적 경제난국 속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넘겨받은 김정일에겐 험난한 앞날이 예고됐다. 세습을 통해 최고 권력자라는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부채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여기에 핵과 미사일을 앞세운 호전적인 선군 노선은 한국과 국제사회의 반감을 샀다.

정작 주민들은 인터넷과 차단된 폐쇄체제에서 살도록 하면서, 선전선동을 위해서는 유튜브까지 동원하는 북한의 모습은 주민은 물론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TV나 유튜브의 영상 속에서는 풍성한 먹거리가 넘쳐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식량난으로 주민의 40%인 1,100만 명이 만성적인 기아에 시달린다는 국제기구의 지적이 잇따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로 인한 국경차단 등으로 곡물 수입 등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한다. 올해의 경우도 약 86만t의 곡물이 부족할 것이란 게 통일부의 추산이다. 북한에 대한 구호활동을 벌여온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코로나19 등으로 북한에 대한 영양 지원 활동을 중단한 상태라고 밝히고 있다. 북한의 유튜브 먹방의 뒷맛이 개운치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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