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민생경제연구소 공동기획

소처럼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는 듯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민생 경제’ 위기는 단 한 가지 원인으로 귀결될 수 없다.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 중에는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각종 불공정한 시스템도 중심축 역할을 한다. <본지>는 시민활동가인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주요 민생 이슈를 살펴보고,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말이다. [편집자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경제사회의 위기감이 고조된 가운데 취약계층 지원, 공공의료 확충 등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우리의 일상의 풍경을 바꿨을 뿐 아니라, 기존의 경제·사회 시스템을 단숨에 뒤흔들었다. 인적·물적 이동이 제한되면서 경제는 빠르게 침체됐다. 이 같은 경제난은 수많은 사람을 길거리로 내모는 고용 위기를 고조시켰다. 여기에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질병은 각국 보건의료시스템을 되돌아보게 했다. 감염병 재난 사태에 대응할 보건의료시스템이 취약할 나라의 경우, 인류의 생명이 얼마나 위협받을 수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케 했다. 

◇ 코로나 위기 극복이 비대면 활성화?… “공공시스템 기반 더 확충해야”

한국은 극단적인 이동 봉쇄정책 없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사태를 효과적으로 대응해 주목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질병관리본부의 발 빠른 대응, 기본적인 공공의료시스템, 의료진들의 헌신, 사회적 거리두기 등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노력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방역 전문가들은 머지않아 2차 대유행이 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5월 들어 수도권을 중심으로 다시 확진자수가 늘면서 다시 위기감은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코로나19 사태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코로나19에 따른 사회경제 위기를 대응하기 위한 정부 및 각계각층에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최근 정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한 ‘한국판 뉴딜 정책’ 시행을 예고했다. 비대면 서비스 경제를 활성화할 산업구조를 마련하고 새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먼저 정부는 디지털 인프라 구축, 비대면 사업 육성, 사회간접자본(SOC) 디지털화 등 3대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10대 과제를 마련해 발표했다. 

이 같은 정책 구상이 발표된 후, 시민사회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취약계층 지원과 사회안전망 및 공공의료 확충 등 보다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아울러 비대면 산업 활성화가 기존 산업체계를 붕괴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근 쟁점으로 떠오른 ‘원격진료제도’가 대표적인 예다. 

지난달 발족한 코로나19-사회경제위기대응 시민사회대책위원회(코로나19 시민대책위)는 이런 목소리를 한데 모아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코로나19 시민대책위는 지난달 28일 발족식을 가졌다. 민주노총, 참여연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한국진보연대, 경실련, 무상의료운동본부, 등 500곳이 넘는 시민·사회단체가 사회경제 위기 대응을 위해 뭉쳤다. 이날 발족 회견에서 대책위는 정부에는 △해고 금지 및 고용 유지 △차별 없는 직접 지원 △취약계층 추가 지원 △공공 의료 확대 △사회안전망 확충 등을 촉구했다. 

이승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은 “코로나 사태가 인류에게 보낸 가장 큰 싸인은 ‘공공의 가치”며 “그나마 우리나라가 코로나19 사태에서 버틸 수 있었던 배경엔 기본적인 의료시스템과 공공의료가 잘 돼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미정 기자

본지는 지난 22일  서울시 중구 NPO지원센터에서 대책위에서 활동 중인 이승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을 만나 이와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사무처장은 “코로나 사태가 인류에게 보낸 가장 큰 사인은 ‘공공의 가치”라며 “그나마 우리나라가 코로나19 사태에서 버틸 수 있었던 배경엔 기본적인 의료시스템과 공공의료가 잘 돼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시스템이 충분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 사무처장은 “대구에서 코로나 확산 사태가 극심할 당시, 치료 병실을 제때 배정받지 못해 확진자가 사망한 사례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2차 유행이나 또 다른 감염병 재난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선 공공병원을 확충하고 감염병 전문병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원격의료 도입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에 대해선 강한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최근 정부는 비대면 사업 육성을 정책 과제로 내세우는 과정에서 원격의료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상태다. 

원격의료는 현재 국내에서 금지돼 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한시적으로 허용된 사례만 있을 뿐이다. 원격의료제도는 그간 보건의료단체와 시민단체들이 맹렬하게 반대해왔던 사안이다. 기존 의료시스템을 붕괴시키고 의료 민영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이 사무처장은 “원격진료는 의료영리화로 가는 첫 단추가 될 것이라는 이유로 의료계와 진보 시민사회 내에서 항상 반대해왔던 사안”이라며 “원격의료가 전면적으로 도입되면 기존 의료체계가 붕괴되고 작은 병원이나 주변 약국들은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지금 시점에 원격의료 이슈를 들고 나온 정부에게 실망감도 드러냈다. 이 사무처장은 “많은 의료진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코로나 확산 사태는 쉽게 억제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그런데 의료계에서 반대할 것이 자명한 사안을 왜 지금 화두로 올렸는지 이해가 안 된다. 코로나 사태 대응을 위해 고생한 의사와 약사들 입장에선 배신감을 느낄 수 있는 사안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원격진료보다는 보건의료업계에서 필요성을 호소해온 상병수당 정책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병수당은 일을 하다 다치거나 앓게 될 때 요양에 필요한 비용 외에 따로 더 받는 수당을 일컫는다. 정부는 코로나19 예방 수칙 중 하나로 ‘아프면 출근하지 않고 집에 머무르기’를 내걸었던 바 있다. 하지만 당장 생계가 급급한 노동자 입장에선 이 같은 수칙을 지키기가 쉽지 않는 구조다. 이런 이유로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예방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 감염병전문병원 등 공공의료 확충 필요성 부상

이에 소득 손실 없이 걱정없이 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이 사무처장은 말했다. 그는 상병수당제도가 이 같은 대안책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이외에도 그는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에 대해 차별없는 직접 지원제도를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승훈 사무처장은 “원격진료는 의료영리화로 가는 첫 단추가 될 것이라는 이유로 의료계와 진보 시민사회 내에서 항상 반대해왔던 사안”이라며 “원격의료가 전면적으로 도입되면 기존 의료체계가 붕괴되고 작은 병원이나 주변 약국들은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정 기자

이 사무처장은 “이주노동자 등을 비롯해 여전히 사회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며 “지원에는 차별이 없어야 하며, 신속하게 진행되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해 기본소득 제도 도입에 대한 필요성도 강조했다. 기본소득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인간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조건 없이 지급하는 소득을 말한다. 이번에 재난안정지원 대책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 이와 관련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분위기다. 

이외에도 이 사무처장은 재난 사태 대응에 있어, 행정당국과 시민사회와 연계한 협력 및 거버넌스 체계 구축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서울시는 올해 코로나 사태 대응 과정에서 재난안전대책본부에 처음으로 시민사회가 함께하는 민관협력반을 설치해 방역에 큰 효과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 서민 지원 적극 나서야” 

코로나19 시민대책위 공동대표인 송경용 성공회 신부도 코로나 위기 대책에 있어서 사회 경제적 약자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우리 사회의 민낯이 많이 드러났다”며 “전염병 재앙이 사회경제적 약자들과 노동자·서민들만 더욱더 힘들게 하고 있는데, 이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럴 때일수록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보호하고 노동자·서민들의 일자리를 보장하며 이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안전망·노동안전망을 더 두텁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세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노동자·서민들까지 모두 참여하는 제대로 된 위기 대응과 위기 극복을 위한 거버넌스와 꾸준한 사회적 대화와 협의에 나서야 한다”고 설명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코로나19사태를 맞이해서, 사회 각계각층의 토의를 통해 완성된 정부와 지자체의 재난긴급지원금제도가 아주 좋은 정책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 제 구성원들의 힘과 지혜를 모으는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시사위크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전대미문의 코로나19사태를 맞이해서, 사회 각계각층의 토의를 통해 완성된 정부와 지자체의 재난긴급지원금제도가 아주 좋은 정책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 제 구성원들의 힘과 지혜를 모으는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동자·서민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는 일만큼은 막아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코로나19 시민사회대책위에 양대노총과 주요 민중-시민사회단체들까지 모두 참여한 만큼 코로나19시민사회대책위가 코로나 19사태를 통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총제적 위기를 극복하는데 인내와 끈기를 바탕으로 끝까지 앞장서주실 것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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