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뉴시스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4‧15총선 압승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국난 극복 우선'을 외치던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과거사 규명’ 카드를 꺼내들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민주당은 총선 직후 당 내에서 개헌이나 윤석열 검찰총장 거취 문제 등이 거론되자 함구령까지 내렸다.

이해찬 대표는 총선 직후인 지난 4월 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코로나 국난과 경제 위기, 일자리 비상사태 타개가 엄중한 상황이다. 우리 당은 이런 상황에 집중하겠다”며 “개헌이나 (윤석열)검찰총장 거취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현재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코로나19로 인한 국난 극복”이라고 함구령을 내렸다.

김태년 원내대표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기 때문에 지금 당장 개헌을 얘기해서 이게 정쟁의 도구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민생 과제 우선 방침을 강조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이 같은 메시지를 낸 것은 총선 압승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상황에서 민생 문제 해결에 집중하지 않고 정치 이슈에 더 치중할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총선 직후의 이 같은 다짐과는 상반되게 돌연 ‘과거사 규명’ 카드를 꺼내들고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대표는 최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과거사 관련 법안들에 대해 “우선 처리해야 할 법안”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원내 177석의 안정적 과반을 확보하고 있는 21대 국회 초반이 과거사 관련 법안들을 처리할 수 있는 적기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해찬 대표는 지난 2일 의원총회에서는 “이번 총선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압도적 성원을 국민이 보냈다. 역사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며 “잘못된 현대사에서 왜곡된 것들을 하나씩 바로잡아가는 막중한 책무가 여러분에게 있다”고 과거사 규명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는 ‘바로잡아야 할 현대사가 무엇인지’ 묻자 “우리나라가 분단돼 있고 일제강점기도 거쳤고 우리 사회가 왜곡된 점이 많다”며 “우리 정치사도 굉장히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내가 학생운동을 시작한 것이 1972년 10월 유신 때부터인데 그 이전에는 말할 것도 없고 유신 후에도 우리 정치사가 얼마나 많이 왜곡돼 있느냐”며 “그 과정에서 바로잡아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가 이처럼 ‘과거사 규명’ 필요성을 역설한 가운데 최근 민주당 내에서는 과거사 규명을 위한 작업들이 앞다퉈 진행되고 있다.
 
민주당 정책위원회는 당선인 워크숍에서 4·3 특별법과 5·18 특별법을 21대 국회 주요 추진 과제로 제시한 바 있으며 지도부는 여순사건특별법, 세월호특별법 등 추가로 진상 규명 필요성이 제기돼온 근현대사 관련 입법에도 나설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회재 의원은 지난 4일 원내정책조정회의에서 “여순사건은 제주 4·3사건과 함께, 한국전쟁 전후에 발생한 대표적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이고,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왜곡된 한국 현대사”라며 1948년 10월 여수·순천 지역에서 발생한 여순사건 특별법을 당론으로 채택하는 절차를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설훈 최고위원과 우원식, 이학영 의원은 최근 ‘유신청산민주연대’ 발족식에 참석해 유신헌법에 기반해 벌어진 국가 폭력의 진상을 규명하도록 하는 내용의 ‘유신 청산 특별법’ 제정을 주장했다. 설 최고위원은 지난달 25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는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에 대한 2007년 노무현 정부 시절 진상조사가 미진한 것이 너무나 많다며 재조사 필요성도 언급했다.

양향자 의원은 지난 1일 1호 법안으로 일제강점기 전쟁범죄, 5·18민주화운동, 4·16 세월호 참사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폄훼하거나 국가유공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역사왜곡금지법을 발의했다. 일제 식민통치 주장에 동조하거나 찬양·고무한 경우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국가보안법에서 문제점으로 지목돼온 찬양·고무 조항을 가져다 썼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김병기, 이수진 의원은 최근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국립현충원에 묻힌 친일파 파묘 법안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친일 이력이 있는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사후 국립묘지 안장 논란으로 번졌다.

최근 민주당이 집중 부각시키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사건에 대한 재조사 목소리도 이 같은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거론되고 있다.

민주당에서 언급하고 있는 과거사들이 대부분 보수정권 시절 역사적 사건들인 만큼 과거사 규명을 통해 민주당 정권이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음을 입증하고 이를 통해 집권의 정당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여권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우려도 나온다. 잘못된 과거사를 바로잡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고 5·18 관련 법안도 시급하다. 그러나 여당의 메시지가 가장 최우선이 돼야 할 코로나19 위기 극복이 아닌 논란 소지가 많은 과거사 규명 문제에 과도하게 집중될 경우 자칫 불필요한 이념 논쟁을 일으켜 진영간 갈등만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8일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민주당이 과거사 규명 얘기를 꺼내든 것은 집권의 정당성을 계속 유지, 확대하려고 하는 의도로 보이고 개개인 정치인들의 한풀이 정치 성격도 있는 것 같다”며 “보수가 집권을 했을 때 역사적 사건들이 잘못 규정됐고 바로잡는 것은 자신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어 “역사를 한 집단이 규정할 수는 없다”며 “향후 민주당이 집권을 못했을 경우 교체된 집권세력에 의해 역사를 다시 판단하고 규정하려는 시도가 반복될 수 있다. 사회적 갈등만 증폭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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