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된 불만 표출인가, 내부결속 위한 ‘남한 때리기’인가

단독회담을 마친 뒤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이 나란히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북한이 9일 남북 정상 간 핫라인을 포함한 남북 사이의 모든 연락망을 차단할 것을 선언하면서 남북관계가 문재인 정부 초의 상태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6월 단독회담을 마친 뒤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이 나란히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을 나서고 있는 모습. /뉴시스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북한이 9일 남북 정상 간 ‘핫라인’을 포함해 남북 사이의 모든 연락망 차단·폐기를 공식 선언하면서 남북관계가 문재인 정부 초의 상태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4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대북전단 살포 행위와 남한 당국을 비난하며 조치가 없을 경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단절, 9·19 군사합의 파기 등을 경고한 바 있다. 단계별로 대응 수위를 높여갈 것을 예고한 북한이 그 첫 시행 조치로 ‘대화 창구’인 연락망을 다 끊으면서 남북관계를 4·27 판문점선언 이전으로 돌리려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과 김여정 제1부부장이 북남 사이의 모든 통신련락선을 완전 차단해 버릴 데 대한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김영철 부위원장과 김여정 제1부부장이 대남(對南) 사업부서들의 향후 사업 방향성을 철저한 적대 정책으로 전환하고, 그 첫 조치로 남측과의 모든 연락 채널을 폐기할 것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남북 당국 사이의 통신연락선·남북 군부 간 동서해 통신연락선·남북 통신 시험 연락선, 노동당 중앙위 본부 청사와 청와대 사이의 직통 통신연락선 등을 이날 정오부터 차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통신은 이번 조치에 대해 “남조선 것들과의 일체 접촉 공간을 완전 격폐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버리기로 결심한 첫 단계의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청와대·통일부·국방부에 설치된 모든 연락 채널을 폐기하겠다는 것은 향후 있을 대화의 가능성까지 차단한 완전한 관계 단절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남북 정상 간 핫라인은 문 대통령 취임 후 남북관계의 변화를 알린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이 핫라인은 지난 2018년 3월 대북특사단 방북 성과로 설치된 것으로, 개통 2년 만에 끊길 위기에 처했다.

북한이 대북전단을 구실삼아 남한과의 모든 연락망을 끊은 이면에는 북미 비핵화 협상 중재에 나섰다가 실패한 후 1년 간 큰 진전이 없었던 남한 당국에 대한 불만이 깔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 청와대, 별다른 입장 없이 통일부 입장 발표로 갈음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으로서 남북정상회담 실무를 총괄했던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전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선언에 대해 “남북정상 간 있었던 합의사항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에 따른 북측의 누적된 불만 같다”고 진단했다.

윤 의원은 “대표적인 게 대북 전단지 살포”라며 “(대북전단 살포는) 4.27 판문점선언에서 남과 북 정상이 합의했던 것인데, 남과 북의 정상들이 합의한 사항에 대해서 북측이 보기에는 제대로 안 지켜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북한이 11월에 있을 미국 대선 이전까지는 ‘자력갱생’을 목표로 내부결속을 위해 ‘남한 때리기’를 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올해 초부터 김여정 제1부부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대신해 대남 및 대미 담화를 발표해왔다. 대신 김정은 위원장은 비료공장 시찰·민생 관련 회의 등 내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최근 정치국 회의에서도 민생·경제와 관련된 메시지만을 내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4일 김여정 제1부부장의 ‘대북전단 살포 비난’ 담화 발표 이후 북한 곳곳에서는 남한을 규탄하는 집회가 수차례 열린 바 있다. 이는 북미 비핵화 협상 파트너였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현재 입장이 명확치 않은 상태라, 대선이 열리는 올해 11월까지는 독자 노선을 취하면서 북한 내부단속을 위해 이같은 행동을 취한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앞서 북한이 경고한대로 연락망을 끊었으므로, 이것을 시작으로 적대 행위 수위를 높여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윤 의원은 “단순하게 경고 차원으로만 해석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며 ”종합적으로 봐야 하지만 현재 있는 상황을 그대로 보자면 대단히 무겁게 봐야 될 상황인 건 맞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 발표 이후 현재까지 청와대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고 통일부의 입장 발표로 갈음하고 있다. 

또 청와대는 이날 북한의 연락망 차단 조치와 관련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소집하지 않기로 했다. NSC는 예정된 날짜에 개최할 것이며, 북한의 이번 조치와 관련해서 별도의 회의를 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에 청와대에서는 북한의 선언에 대해 예견된 범위 내의 행동으로 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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