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송가영 기자  2000년대 대한민국의 MP3 플레이어 시장을 이끌었던 ‘아이리버’가 창시자를 떠나보내고 홀로 남겨졌다.

아이리버로 국내 디지털 음악 재생기기 시장의 기반을 만든 양덕준 씨가 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0세. 그의 별세 소식에 아이리버 세대를 살았던 이용자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양씨는 지난 1999년 아이리버의 전신인 레인콤을 창업, MP3 플레이어인 아이리버를 개발해낸 인물이다. 아이리버는 2000년대 국내 MP3 플레이어 시장의 선두주자로 디지털 음악재생기 시장의 기반을 형성했다. MP3 플레이어 사업의 빠른 성장으로 2004년 회사의 매출은 4,540억원에 달했다. 삼성의 옙(yepp), 코원, 소니, 샤프 등 경쟁사들이 다수 있었지만 아이리버는 국내 시장에서 점유율 75%이라는 압도적 입지를 차지했다.

아이리버의 부진은 미국 애플사의 ‘아이팟’ 출시부터 시작됐다. 애플은 자사의 음악관리 프로그램 ‘아이튠즈’를 앞세워 아이팟 클래식, 아이팟 나노, 아이팟 터치 등 다양한 MP3 플레이어를 출시하며 국내외 시장을 빠르게 장악해 나갔다.

애플의 공세 이후 전자기기 시장은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태블릿PC와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아이리버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양씨는 지난 2008년 아이리버를 떠나 네트워크 단말기기 ‘민트패스’를 설립했으나 스마트폰 보급의 빠른 확산으로 2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그가 떠난 후 경영난에 허덕이던 아이리버는 지난 2014년 SK텔레콤에 인수됐고 2019년에는 드림어스컴퍼니로 개명했다. 드럼어스컴퍼니는 아이리버샵을 운영하며 프리미엄 디지털오디오플레이어(DAP) ‘아스텔앤컨’과 보급형 MP3 플레이어 ‘아이리버’를 선보이며 디지털 음악 재생기기 시장에서 굳건히 버티고 있다.

지난 2016년을 끝으로 이렇다 할 신제품을 내놓지 않았던 아이리버는 지난 3일 2015년 출시한 T70의 리뉴얼 버전 ‘T70 시즌2’를 선보이며 여전히 존재함을 알렸다. 

그의 별세 소식과 아이리버의 신제품 출시 소식은 MP3 플레이어가 세상의 전부였던 리스너의 마음 한켠을 적잖이 아릿하게 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을 통한 음원 서비스가 활발하지 않았던 2000년대 초반 아이리버를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끼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리버를 포함해 옙, 코원, 소니 등 다양한 MP3 플레이어를 사용했지만 아이리버만의 감성과 혁신, 품질 만큼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기자 역시 아이리버 제품을 사용한 세대다. 하지만 아이리버의 제품 경쟁력이 하락하면서, 경쟁사 제품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 기기를 통해 음악을 듣는 시대인 지금도, 별도의 MP3 플레이어인 보급형 DAP ‘플레뉴 D2’를 사용하고 있다.

DAP를 사용하고 있으면 ‘왜 아직도 불편하게 별도의 MP3 플레이어를 사용하고 있느냐’는 소리를 듣는다. 지금까지 쓴 미소로 대충 넘어간 말이었지만 아이리버가 선사해준 경험과 습관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를 사용할 당시 지금은 턱없이 부족한 256MB 용량에 좋아하는 가수의 신곡이나 새로운 노래를 넣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아, 또 어떤 애정곡을 지워야 하나 몇 시간을 고민했다. 지나가면서 흘러나오는 취향저격 음악을 MP3 플레이어에 넣어 듣겠다고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들리는 대로 쓴 가사를 검색하며 노래를 찾아다녔다. 

질풍노도 사춘기 시절에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오롯이 나만 아는 추억을 쌓아갔다. 좋은 추억이든 나쁜 추억이든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를 통한 경험과 습관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갖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MP3 플레이어, DAP 등 디지털 음원 재생기기의 비중은 국내 전자기기 시장에서 상당히 낮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편리함을 앞에 두고 단순히 음악 하나만 바라보고 별도의 기기를 선택하는 사람이 드물어지고 있는 만큼 어쩌면 앞으로 더 낮아질지도 모르겠다.

아이리버 창시자는 떠났지만 아이리버는 남아있다.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MP3 플레이어를 한 몸처럼 여기며 그때 쌓은 경험과 습관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는 리스너들을 위해 부디 아이리버는 더욱 오랫동안 머물러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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