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 부부장으로부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 받고 있다. <청와대 제공>
청와대는 17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메시지를 원색적으로 비난한 데 대해 강력 비판 입장을 냈다. 사진은 2018년 2월 13일 문 대통령이 김 제1부부장으로부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 받고 있는 모습. /청와대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청와대는 17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메시지에 대해 원색적으로 비난한 데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개성 남북공동사무소 폭파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다”는 수준의 입장을 낸 것을 감안하면 청와대가 이같이 북한을 비난한 것은 이례적이다. 

◇ 청와대 “몰상식한 행위”

김 제1부부장은 이날 오전 담화를 통해 문 대통령의 6·15 메시지에 대해 “그 내용을 들어보면 새삼 혐오감을 금할 수 없다”며 “한마디로 맹물 먹고 속이 얹힌 소리 같은 철면피하고 뻔뻔스러운 내용만 구구하게 늘어놓았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러면서 북미 관계가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도 우리 정부의 ‘친미 사대주의’와 남북합의가 아닌 ‘한미동맹’ 우선주의 때문이라고 비난을 쏟아냈다. 

이에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오전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사 등을 통해 현 상황에 대해 언급했다”면서 “전쟁의 위기까지 어렵게 넘어선 지금의 남북관계를 후퇴시켜서는 안 되며 남과 북이 직면한 난제들을 소통과 협력으로 풀어나가자는 큰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측이 김 제1부부장 담화에서 이러한 취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매우 무례한 어조로 폄훼한 것은 몰상식한 행위”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면서 “이는 그간 남북정상 간 쌓아온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일이며 북측의 이러한 사리 분별 못하는 언행은 우리로서는 더 이상 감내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남측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특사로 파견하겠다는 제안을 했지만 김 제1부부장이 이를 거절했다는 북한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명했다.

윤 수석은 “북측은 우리 측이 현 상황 타개를 위해 대북 특사 파견을 비공개로 제의한 것을 일방적으로 공개했다”며 “전례 없는 비상식적 행위로 대북 특사 파견 취지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처사”라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최근 북측의 일련의 언행은 북측에도 전혀 도움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발생한 모든 사태는 북한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특히 북측은 앞으로 기본적 예의를 갖추길 바란다”고 했다.

특사 파견 제의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특사 관련 부분은 비공개로 제의하며, 그 자체가 비공개”라며 “그것을 공개한 자체가 비상식적인 행위”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전직 통일부 장관 및 원로들과 오찬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전직 통일부 장관 및 원로들과 오찬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

청와대의 강경한 입장에 맞춰 국방부도 강경한 입장을 내놓았다. 북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이날 오전 서해 포병부대 증강, 접경지 군사훈련 재개 등 9·19 군사합의 위배 행위를 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국방부는 이날 오전 “우리 군은 오늘 북한군 총참모부가 그간의 남북합의들과 2018년 판문점선언 및 9·19 군사합의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각종 군사행동계획을 비준 받겠다고 발표한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조치는 지난 20여년간 남북관계발전과 한반도 평화 유지를 위해 남북이 함께 기울여온 노력과 성과를 일거에 무산시키는 조치로서 실제 행동에 옮겨질 경우 북측은 반드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남북, 당분간 긴장 상황 유지할 듯

그간 북한의 비난 담화에 비해 다소 냉정한 태도로 맞대응을 해온 청와대와 국방부가 강경 모드로 돌변했다. 문재인 정부가 강도 높은 대북 비판 발언을 내놓은 것은 2017년 하반기 한반도 위기 국면 이후 처음이다. 

우리 측은 북한의 호전적 태도가 금도를 넘었다고 판단, 더 이상은 북한의 행태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일 수 없다고 여긴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청와대의 전날 밝힌 강력 대응 방침에 이어 현 정부 들어 가장 강경한 기조를 보이는 데 대해 “현재 인식과 상황에 대한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이에 당분간은 남북이 ‘강 대 강’ 대치 국면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와 국방부의 강경한 입장을 감안했을 때, 우리 정부는 향후 북한이 군사도발을 감행한다면 한미연합군사훈련과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 등으로 북한을 압박할 수도 있다. 

다만 남북 대화의 창을 완전히 닫을 방침은 아닌 것으로 분석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대북 특사 파견에 대해 “계속 논의를 해봐야 한다”며 “미래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가정해서 (판단)하지 않지만, 상황을 지켜보면서 신중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판단하겠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남북관계 악화의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장관의 사퇴와 함께 청와대 국가안보실 등 외교·안보라인 개편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백척간두에 선 가운데 외교·안보라인을 교체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고견을 듣기 위해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 등 원로들과 오찬 회동을 가졌다. 낮 12시부터 2시간가량 진행된 이 오찬에는 고유환 통일연구원장, 임동원·박재규·정세현·이종석 전직 통일부 장관, 박지원 전 의원 등이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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