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영진 원내수석부대표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본회의를 마친 후 회의장을 나오고 있다./뉴시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영진 원내수석부대표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본회의를 마친 후 회의장을 나오고 있다./뉴시스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21대 국회 전반기 원 구성 협상이 29일 끝내 결렬되면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18개 전체 상임위원장 독식이 현실화됐다. 민주당의 모든 상임위원장 싹쓸이로 향후 정국은 더욱 경색될 전망이다. 

과반수 넘는 원내 1당이 상임위원장 전석을 독식한 것은 지난 1985년 12대 국회 이후 35년 만이다. 의석수 비율에 따라 상임위원장직을 배분하는 관행은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된 13대 국회때부터 시작돼 20대 국회까지 유지돼왔다.

민주당은 원구성 협상 초기 미래통합당을 향해 “절대 과반 의석을 가진 정당이 상임위원장 전석을 갖고 책임있게 운영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에 맞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자 통합당은 "법제사법위원장을 다시 넘기든지 아니면 18개 상임위원장을 다 가져가라”고 응수했던 게 그대로 현실화됐다.

전날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만난 민주당 김태년,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원구성을 놓고 마라톤 협상을 벌였으며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는 이 자리에서 합의문 초안까지 만들었으나 결국 이날 오전 회동에서 최종 합의에 실패했다.

민주당의 설명에 따르면, 합의문 초안에는 ▲전체 상임위원장을 ‘11대 7’로 배분 ▲집권여당에 21대 국회 후반기 법제사법위원장에 대해 우선 선택권 부여 ▲법사위 제도 개혁 ▲6월 임시국회 회기 내 3차 추경 처리 ▲30일 개원식 개최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국정조사와 한명숙 전 총리 사건 관련 법사위 청문회 등도 합의문에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 합의문 초안까지 작성했는데 결국 결렬

민주당은 "협상이 최종 결렬된 이유는 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과도한 개입 때문"이라며 김 비대위원장에게 책임을 돌렸다. 김영진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난 금요일과 오늘, 비슷한 합의안이 부결된 것은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과도하게 원내 상황에 개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주호영 원내대표의 협상과 합의에 대한 결정권을 인정해주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반면 통합당은 "21대 국회 후반기에 통합당이 법사위원장 자리를 맡겠다는 요구를 민주당이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했다. 통합당이 국회 전반기든 후반기든 명확하게 법사위원장을 맡는 것이 담보되지 않을 바에 민주당이 18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맡게 해 ‘일방 독재’ 프레임을 짜는 게 향후 정국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긴급 기자회견에서 “법사위원장을 나눠서 하는 것조차 되지 않는 것은 민주당이 상생과 협치를 걷어차고 국회를 일방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것이고 우리가 나머지 상임위원장을 맡는다는 것은 들러리 내지 발목잡기 시비만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그래서 민주당이 제안한 7개 상임위원장을 맡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여야 협상이 최종 결렬되면서 민주당은 이날 오후 2시 본회의를 열고 국회 원 구성을 단독으로 진행했다. 국회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정무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등 11개 상임위원장을 민주당 의원으로 선출했다.

이날 선출된 상임위원장은 운영위원장 김태년, 국토위원장 진선미, 정무위원장 윤관석, 교육위원장 유기홍, 환노위원장 송옥주, 과방위원장 박광온, 행안위원장 서영교, 농해수위원장 이개호, 문체위원장 도종환, 예결위원장 정성호, 여가위원장 정춘숙 의원 등이다. 다만 여야 국회부의장 합의가 필요한 정보위원장은 이날 선출하지 않았다. 지난 15일에도 민주당은 법사위 등 6개 상임위원장을 단독 선출한 바 있다.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만나 28일과 29일 원구성 협상을 벌였으나 끝내 합의에 실패했다./뉴시스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만나 28일과 29일 원구성 협상을 벌였으나 끝내 합의에 실패했다./뉴시스

◇ 민주당, 정치적 부담에도 ‘상임위원장 독식’

민주당이 단독으로 상임위원장을 모두 싹쓸이 할 경우 국회 운영에 대한 책임을 모두 져야 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부담감이 클 것으로 예상됐지만 결국 민주당은 강공을 선택했다. 통합당과의 합의 불발로 이미 원 구성 시한을 5번이나 연기한 상황에서 3차 추경 처리의 시급성을 감안해 더 이상 원 구성을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해찬 대표는 이날 국회 본회의 전 의원총회에서 “오늘 이렇게 되는 상황이 안 오길 정말로 바랬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라며 “모든 것을 다 짊어지고 가는 상황이라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원내 1당인 민주당이 35년 만에 상임위원장 전석을 독식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표출되고 있다. 민주당이 일단 '원 구성 마무리'라는 급한 불은 껐지만 통합당이 “일당독재, 의회독재가 시작됐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만큼 여야의 대치는 더욱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통합당은 향후 추경 심의, 주요 쟁점 상임위 등에서 정부·여당에 대한 공세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2020년 6월 29일, 33년 전 전두환 정권이 국민에게 무릎 꿇었던 그날, 문재인 정권이 몰락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역사는 기록할 것”이라며 “민주당과 집권세력이 1987년 체제 이후 우리가 이룬 의회 운영의 원칙을 깡그리 무시했다”고 반발했다.

차재원 부산 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향후 정국 전망에 대해 “통합당이 민주당에 전 상임위원장을 모두 내준 것은 여당의 오만과 독주를 부각시겠다는 의도”라며 “통합당이 앞으로 국회의 정상적인 운영에 협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어 “여당의 독주로 보이는 것은 정책 추진력을 지탱하게 하는 정당성이 떨어지게 할 수 있다”며 “여당 입장에서는 정치적 책임을 모두 다 뒤집어 쓸 수도 있기 때문에 정국을 운영하는데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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