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이 부친 조양래 회장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 전량을 넘겨받았다. /뉴시스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이 부친 조양래 회장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 전량을 넘겨받았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최근 오너일가 3세의 비리 혐의 구속기소 및 유죄판결, 대표이사 사퇴 등으로 혼란에 휩싸였던 한국테크놀로지그룹(구 한국타이어그룹)의 후계구도에 중대변화가 나타났다. 오너일가 3세 차남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이 형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을 제치고 부친 조양래 회장의 지분을 모두 거머쥔 것이다. 예상을 깬 행보에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조양래 회장, ‘차남’ 조현범 사장에게 지분 모두 넘겨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공시에 따르면,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은 최근 자신이 보유 중이던 한국테크놀로지 지분 23.59%를 모두 차남 조현범 사장에게 넘겼다. 조양래 회장과 조현범 사장은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방식을 통해 지분을 주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지분 이동은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3세 승계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오너일가 3세 장남 조현식 부회장과 차남 조현범 사장이 승계의 두 축을 형성하고 있었고, 승계작업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상태였다. 경영승계는 이미 마무리됐고, 마지막으로 지분승계만 남겨놓고 있었다.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위치한 가운데, 조현식 부회장과 조현범 사장은 각각 19.32%, 19.31%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을 보유 중이었다. 최대주주는 23.59%의 지분을 가진 조양래 회장이었다. 조양래 회장의 지분이 두 형제에게 어떻게 분배되느냐에 따라 승계의 무게중심이 결정되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형을 제치고 부친의 지분을 모두 확보한 조현범 사장은 단숨에 42.9%의 지분으로 최대주주에 등극됐다. 재계에서는 조양래 회장이 진정한 후계자로 차남을 낙점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반면, 장남이자 형인 조현식 부회장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분에 머무르며 자존심을 구기게 됐다.

2016년 테크노돔 준공식 당시 함께 자리한 조현범 사장(왼쪽 두 번째)과 조현식 부회장(맨 오른쪽)의 모습. /뉴시스
2016년 테크노돔 준공식 당시 함께 자리한 조현범 사장(왼쪽 두 번째)과 조현식 부회장(맨 오른쪽)의 모습. /뉴시스

◇ 조현식과 조현범의 ‘엇갈린 운명’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오너일가의 이 같은 지분변동은 시기와 대상 모두 예상을 깬 파격행보다.

당초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3세 경영승계는 조현식 부회장과 조현범 사장이 균형을 이루는 ‘형제경영’으로 가닥이 잡혀있었다. 조현식 부회장은 지주사인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을 맡고, 조현범 사장은 지주사와 더불어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를 맡는 구도였다.

오히려 최근 상황은 조현식 부회장 쪽으로 무게가 기울어 있었다. 조현범 사장은 납품을 대가로 협력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아 지난해 11월 구속기소됐고, 지난 4월 징역 3년·집행유예 4년의 1심 판결을 받았다. 지난 23일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대표이사직에서 돌연 물러나기도 했다.

조현식 부회장 역시 친누나가 미국법인에 근무하는 것처럼 꾸며 1억여원의 인건비를 지급한 횡령 혐의로 지난해 불구속기소됐고, 지난 4월 1심에서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다만, 혐의의 내용 및 무게감이 조현범 사장에 비해 가벼웠다.

또한 조현식 부회장은 지난 3월 주요 계열사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이례적으로 주주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통렬한 반성’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동안의 경영부진 및 오너일가 관련 논란에 사과하고 대대적인 개선을 약속한 것이다.

이에 재계에서는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3세 승계구도가 조현식 부회장 쪽으로 기우는 것 아니냐는 전망에 힘이 실린 바 있다. 그런데 돌연 조양래 회장의 모든 지분을 조현범 사장이 거머쥔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최근 롯데그룹과 한진그룹 등에서 불거진 형제간의 갈등이 한국테크놀로지그룹에서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과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차남이 승계의 주도권을 잡은 점은 롯데그룹과, 형제들의 기존 지분이 팽팽한 점은 한진그룹과 닮아있어 더욱 주목을 끈다.

반면,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3세 승계구도가 조현범 사장의 ‘압승’으로 마무리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조양래 회장이 차남을 더 신임하고 두 형제의 지분 차가 극명하게 벌어진 만큼, 갈등이 벌어질 여지조차 없다는 것이다.

◇ 또 하나의 재계 ‘형제갈등’ 등장하나

형제간의 갈등 여부를 떠나더라도 한국테크놀로지그룹과 조현범 사장의 향후 행보는 여러모로 이목을 집중시킬 전망이다.

앞서 언급했듯, 조현범 사장은 1심에서 가까스로 실형을 면한 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불과 며칠 만에 조양래 회장의 지분을 모두 확보했다. 선뜻 이해하기 힘든 행보인데, 향후 그 배경이 서서히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벌써부터 조현식 부회장과 조현범 사장이 평소 자주 충돌을 빚었으며, 지난해 말부터 형제 사이에 갈등이 본격화됐다는 설이 난무하고 있다.

당장 승계구도에서 형보다 우위를 점하게 된 조현범 사장이 지니는 부담도 상당하다. 조현범 사장은 협력업체로부터 납품을 대가로 무려 10년 동안 매달 꼬박꼬박 총 6억원의 뒷돈을 챙기고, 2억여원의 계열사 자금도 정기적으로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이 같은 자금을 숨기고 유흥비로 사용하기 위해 고급주점 여종업원의 아버지 명의로 된 차명계좌를 이용한 것도 확인됐다. 조현범 사장은 1심 재판과정에서 혐의 일체를 인정한 상태다.

당장 1심에선 실형을 면했으나, 혐의의 무게감을 고려했을 때 남은 재판과정에서 어떤 판결이 내려질지 예상하기 어렵다. 재차 구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3세 경영인으로서 비리 및 구속 전력과 도덕성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을 전망이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또 하나의 ‘형제갈등’을 표출시키며 더 큰 혼란에 빠져들지, 조현범 사장은 어떤 식으로 3세 경영인으로서 입지를 다져나가게 될지,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향후 행보가 재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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