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을 기해 한국에서의 임기를 마치는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사장이 5월 중순 출국 이후 돌아오지 않고 있다. /뉴시스
이달 말을 기해 한국에서의 임기를 마치는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사장이 5월 중순 출국 이후 돌아오지 않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국내 수입차업계의 ‘맹주’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이하 벤츠코리아)가 ‘배출가스 조작’으로 거센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는 가운데, 임기 만료가 임박한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벤츠코리아 사장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한국을 떠나있는 그가 ‘제2의 요하네스 타머’를 노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 벤츠 앞에 드리운 배출가스 조작 후폭풍

지난 5월 6일 환경부는 벤츠코리아의 배출가스 조작을 적발했다고 발표하고, 776억원의 과징금 철퇴를 내렸다. 해외에서 벤츠의 배출가스 조작 의혹이 제기된 2018년 6월 조사에 착수해 2년 가까이 조사를 진행한 환경부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국내에서 판매된 12종 3만7,154대의 벤츠코리아 차량에 인증시험 때와 실제 주행 시의 작동을 다르게 하는 불법 조작 프로그램이 설정돼있었다고 결론지었다.

벤츠코리아는 환경부의 이 같은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불복절차에 돌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환경부로부터 고발을 접수한 검찰은 5월 말과 6월 중순 벤츠코리아 본사에 대해 연이어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앞서 유사한 사건이 줄을 이었던 만큼, 업계에서는 벤츠코리아가 기소를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15년 9월 부임해 ’벤츠 전성시대‘를 열어젖힌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벤츠코리아 사장의 행보가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벤츠코리아는 환경부의 배출가스 조작 적발 발표가 있기 직전인 지난 5월 1일, 실라키스 사장이 5년의 임기를 마치고 한국을 떠날 예정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뵨 하우버 메르세데스-벤츠 스웨덴 및 덴마크 사장이 오는 8월 1일을 기해 새로운 수장으로 부임하고, 실라키스 사장은 오는 9월 1일부터 메르세데스-벤츠 USA로 건너가 영업 및 제품 총괄을 맡게 된다는 것이었다.

주목할 점은 한국에서의 공식 임기를 단 2주 밖에 남겨놓지 않은 실라키스 사장이 현재 한국에 없다는 것이다. 벤츠코리아 관계자에 따르면 실라키스 사장은 벤츠코리아의 인사이동과 환경부의 배출가스 조작 적발이 발표된 직후인 5월 중순 출장차 한국을 떠났으며, 이후 두 달 가까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실라키스 사장은 이대로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벤츠코리아 임기를 마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현재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해외에서 입국할 경우 2주간의 자가격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실라키스 사장이 임기를 마치기 전에 공식석상에 참석해 마지막 인사를 건네기 위해선 며칠 내로 입국해야 한다.

이에 대해 벤츠코리아 측은 “실라키스 사장은 출장 차 출국한 것이며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다. 입국 여부 및 시점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 않다”고 말을 아꼈다. 실라키스 사장 임기 만료 전 공식행사 마련 여부에 대해서도 “전임 사장의 경우에도 별도의 이임식 등은 없었다”고 밝혔다.

◇ 5월 중순 출국한 실라키스 사장, 귀국 미정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사장은 벤츠코리아를 국내 수입차업계 판매 1위에 올려놓은 인물이다. 하지만 배출가스 조작 파문이란 오점도 남겼다. /벤츠코리아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사장은 벤츠코리아를 국내 수입차업계 판매 1위에 올려놓은 인물이다. 하지만 배출가스 조작 파문이란 오점도 남겼다. /벤츠코리아

벤츠코리아 측 설명대로 수입차업계에서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사장이 반드시 이임식이나 간담회 등의 공식행사를 갖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실라키스 사장은 부임한 이듬해 벤츠코리아를 사장 첫 한국 수입차업계 판매 1위에 올려놓은 인물이다. 벤츠코리아는 이후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수입차업계 판매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또한 실라키스 사장은 2018년 11월 ‘명예 서울시민’에 선정되는 등 한국에 남다른 애정을 보인 인물이다.

이처럼 한국과의 인연이 각별했던 만큼, 업계의 관행을 넘어 마지막 인사를 남길 법도 하다. 업계에서도 그가 공식석상을 통해 소회를 밝힐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이제 그 가능성은 무척 낮아진 모습이다.

이 같은 실라키스 사장의 행보는 특히 요하네스 타머 전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총괄사장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요하네스 타머 전 총괄사장은 아무디폭스바겐코리아의 배출가스 조작과 관련해 회사의 대표로서 2017년 1월 함께 기소됐다. 하지만 그는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리기 직전 한국을 떠나 고국인 독일로 향했고, 이후 건강상의 이유를 들며 3년 6개월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재판이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심지어 ‘범죄인 인도 절차’까지 진행되고 있지만 소환 가능성은 물론 시점도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실라키스 사장이 요하네스 타머 전 총괄사장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가 임기를 두 달 이상 남겨 놓은 시점에 출국해 돌아오지 않고 있는 이유가 다름 아닌 배출가스 조작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지적이다.

물론 실라키스 사장과 요하네스 타머 전 총괄사장의 상황은 서로 다른 측면이 있다. 우선, 요하네스 타머 전 총괄사장은 출국 당시 이미 기소된 상태였다. 또한 퇴사해 기업인으로서 사실상 은퇴한 신분으로, 재판 회피에 대한 비판을 외면하는데 큰 무리가 없는 상황이다.

반면, 실라키스 사장은 아직 기소되지 않았다. 재판 회피용 도피로 단정 짓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아울러 미국에서 활동을 이어갈 예정인 만큼, 한국에서 기소될 경우 이를 마냥 외면하거나 회피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다만, 요하네스 타머 전 사망이 출국할 당시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검찰이 그의 출국을 허용했을 정도다. 실라키스 사장은 아직 검찰 소환조사조차 받지 않았지만, 전례에 비춰볼 때 배출가스 조작 책임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 책임을 가리기까지 여러 과정 및 절차를 남겨두고 있는 가운데, 해외에 머무르며 각종 조사 등에 소극적으로 응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미 그에 대한 검찰 소환조사는 물 건너갔고,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란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일찌감치 한국을 떠난 그의 행보가 우려와 뒷말을 낳는 이유다.

벤츠코리아 관계자는 “배출가스 조작과 관련해서는 아직 검찰 수사 중인 단계이며, 실라키스 사장의 향후 문제에 대해 특별히 답변 드릴 것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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