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당 최고위원들과 함께 어두운 표정으로 참석해 있다. 이 대표는 이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당 최고위원들과 함께 어두운 표정으로 참석해 있다. 이 대표는 이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뉴시스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여론이 악화되자 당 지도부 차원의 공식 사과를 내놨지만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 받고 있다.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박 전 시장이 숨진 채 발견된지 6일만인 15일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민주당은 그동안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 규명 목소리에 대해 “추모가 먼저”라는 입장을 보이며 “박원순 가해자 기정사실화는 사자 명예훼손”이라고 대응해왔다.

이 대표는 심지어 지난 10일 박 전 시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을 마친 뒤 한 기자가 ‘고인에 대한 의혹이 있는데 당 차원의 대응을 할 것인가’라고 묻자 “그건 예의가 아니다. 그런 걸 이 자리에서 예의라고 하는 것인가. 최소한 가릴 게 있고”라며 “나쁜 자식 같으니”라고 격노했다.

그러나 박 전 시장 의혹에 대해 여론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사과 입장을 밝히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민주당은 사과 뜻을 밝히며 고개를 숙이면서도 박 전 시장을 고소한 전직 비서를 ‘피해자’가 아닌 ‘피해 호소인’이라고 지칭해 논란이 되고 있다.

◇ 민주당, '피해 호소인' 용어 사용한 이유

이해찬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피해 호소인께서 겪으시는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이런 상황에 대해 민주당 대표로서 다시 한 번 통절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젠더폭력대책TF위원장인 남인순 최고위원도 “피해 호소인이 겪었을 고통에 대해 위로와 사과를 드리며 무분별한 신상털기와 확인되지 않은 사실 유포 등 또 다른 가해가 중단되길 거듭 호소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여성 의원들도 전날 입장문을 내고 “피해 호소 여성이 느꼈을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유력 대선주자이자 당권주자인 이낙연 의원은 ‘피해 고소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이 느끼는 실망과 분노에 공감한다”며 “피해 고소인과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는 입장을 내놨다.

서울시도 이날 박 전 시장의 직원 성추행 의혹 관련 입장을 발표하면서 “피해 호소 직원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실효적이고 충분한,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며 ‘피해자’가 아닌 ‘피해 호소 직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논란이 되고 있다.

박 전 시장의 전 비서인 A씨는 지난 8일 오후 서울지방경찰청에 박 전 시장의 성추행에 대해 고소장을 접수했으며 9일 오전 새벽까지 경찰에서 진술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박 전 시장이 사망하면서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검찰사건사무규칙’ 제69조에 따르면, 수사 받던 피의자가 사망할 경우 검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불기소 처분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법적인 시비가 가려지기 이전에 A씨를 ‘피해자’로, 박 전 시장을 ‘가해자’라고 단정 지을 수 없게 됐다. 그러나 ‘피해 호소인’이나 ‘고소인’의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그동안 여성계에서 피해자의 구체적이고 일관된 주장이 있다면 객관적 증거가 없더라도 피해를 인정할 수 있다고 본 관례와는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문’ 사건 때는 ‘피해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번에는 ‘피해 호소인’이라는 표현을 고집하는 것은 피해자가 말하는 이야기가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기 때문에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심리가 깔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이해찬 대표가 이날 박 전 시장 사망으로 성추행 의혹에 대한 당 차원의 진상 규명이 어렵다는 점을 강조해 이 같은 분석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대표는 “이 사안도 마찬가지로 피해자의 입장에서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당으로서는 아시다시피 고인의 부재로 인해서 현실적으로 진상조사가 어렵다는 점을 이해해주시길 바란다”며 “피해 호소인의 뜻에 따라 서울시가 사건 경위를 철저하게 밝혀주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송갑석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피해자가 아닌 피해 호소인이라고 지칭하는 이유가 있나’라는 질문에 “사람에 따라서 피해자라고 하시는 분도 있고, 피해 호소인이라고 하는 분도 있다”며 “특별하게 입장이 있어서가 아니라 둘 다 부르는 분들이 있어 용어가 혼용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서울시 황인식 대변인은 질의응답에서 ‘피해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현재 이 직원이 아직은 피해에 대해서 우리 서울시에 공식적으로 말한 것이 없다”며 “피해 호소 직원 용어 문제는, 우리 내부에 공식적으로 접수가 되고 (조사 등이) 진행되는 스타트 시점에 ‘피해자’라는 용어를 쓴다”고 설명했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종배 정책위의장과 대화하고 있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민주당의 박원순 전 서울시장 관련 사과에 대해 “영원 없는 반성”이라고 비판했다./뉴시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종배 정책위의장과 대화하고 있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민주당의 박원순 전 서울시장 관련 사과에 대해 “영원 없는 반성”이라고 비판했다./뉴시스

◇ 야당 “피해자를 피해자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당이냐”

그러나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야당을 비롯한 정치권 안팎에서는 민주당의 ‘피해 호소인’ 용어 사용에 대해 거센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또다시 ‘피해 호소인’이라고 해 2차 가해를 가한 점 역시 매우 아쉽다”며 “들끓는 여론에 못 견뎌 한 영혼 없는 반성”이라고 비판했다.

김은혜 통합당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피해자를 피해자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당, 왜인가”라며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민주당이 피해자를 피해자라 부르고 싶지 않아 집단 창작을 시작했다. 의혹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민주당의 ‘우아한 2차 가해’다”고 주장했다.

하태경 통합당 의원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피해자와 피해 호소인의 구분 기준은 무엇이냐”며 “안희정 전 지사와 오거돈 전 시장은 억울하지 않은데 박원순 전 시장은 억울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냐”고 따져 물었다.

진보 논객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비판에 가세했다. 진 전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제대로 하라. 속지 마세요. 저 인간들, 사과하는 거 아니다. 지지율 관리하는 것”이라며 “한편으로 ‘피해 호소인’이라 부르고, 다른 한편으로 ‘진상조사’를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결국 당의 공식 입장은 ‘피해자는 없다, 고로 가해자도 없다. 있는지 없는지 알고 싶지 않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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