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의 항소심이 본격 시작됐다. /뉴시스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의 항소심이 본격 시작됐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한국테크놀로지그룹(구 한국타이어그룹)의 3세 후계자로 입지를 굳힌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이 항소심에서도 ‘반성전략’에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반성의 진정성을 향한 물음표는 쉽사리 가시지 않는 모습이다. 조현범 사장의 반성전략이 항소심에서도 소기의 성과로 이어지게 될지 주목된다.

◇ 반성전략으로 실형 면한 조현범, 항소심도 ‘반성모드’

지난 17일, 조현범 사장의 항소심 1차 공판기일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렸다. 항소심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조현범 사장은 협력업체로부터 납품을 대가로 뒷돈을 받고, 계열사 자금을 빼돌린 혐의를 받는다. 협력업체로부터는 10년에 걸쳐 매달 수백만원씩 6억여원을 받아 챙겼고, 계열사 자금은 2억원여원을 빼돌렸다. 조현범 사장은 이 같은 혐의로 지난해 11월 구속기소 됐고, 지난 3월 보석으로 풀려난 뒤 4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과정에서 조현범 사장은 철저하게 ‘반성전략’을 앞세웠다. 혐의를 일체 인정하는 한편 형량을 최대한 줄이고, 특히 실형을 면하는데 주력했다.

1심 최후변론에서 조현범 사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가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비상경영 체제를 이끌고 우리 사회와 국가 경제에 미력이나마 기여할 기회를 달라”며 “과거를 거울삼아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호소했다. 검찰 측이 “형량을 낮추기 위한 것 아니냐”고 꼬집자 “앞으로 제 행동을 보면 진정성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또한 자신의 친누나가 미국법인에 근무하는 것처럼 꾸며 인건비를 지급한 혐의로 함께 기소됐던 형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은 지난 3월 주주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통렬한 반성의 입장과 대대적인 개선의지를 밝혔다. 여기엔 정도경영 구축과 주주가치 제고에 대한 다짐도 담겼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미 보석으로 풀려나있던 조현범 사장은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며 재수감을 면했다. 조현범 사장에 비해 혐의가 가벼웠던 조현식 부회장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지난 17일 본격 시작된 항소심 재판에서도 조현범 사장은 같은 전략을 취했다.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한편, 1심 형량이 과도하다고 항소 이유를 밝혔다. 또한 조현범 사장은 “4개월의 수감기간 동안 앞으로 어떤 사람이 돼야할지 생각했다.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바로 하고, 사회구성원이자 경영진으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직접 선처를 호소했다.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대표이사 사임도 반성전략의 일환으로 확인됐다. 조현범 사장은 “죗값을 치르지 못했다고 생각해 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23일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대표이사 자리에서 돌연 물러난 바 있다.

◇ 대표이사 물러나더니 3세 후계자 등극… 반성 진정성 ‘물음표’

문제는 조현범 사장의 이 같은 반성에 꾸준히 물음표가 따라붙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1심 판결 이후 나타난 후계구도의 큰 변화는 반성 차원의 대표이사직 사임과 정면으로 대치된다.

조현범 사장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은 며칠 뒤 부친 조양래 회장으로부터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 23.59%를 모두 넘겨받았다. 이로써 조현범 사장은 지분구도에서 형 조현식 부회장을 여유있게 제치게 됐다. 다소 불리해진 것으로 여겨졌던 3세 후계구도에서 오히려 최종승자 자리를 굳히게 된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반성의 의미에서 핵심 계열사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은 조현범 사장은 곧장 그룹 3세 후계자로 우뚝 서게 됐다. 이는 그의 대표이사직 사임이 ‘보여주기식 반성’임을 역설하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다. 또 다른 핵심계열사는 정도경영과 투명경영과 여전히 거리가 먼 모습을 노출하고 있다. <서울경제>는 지난 16일 단독보도를 통해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부적절한 인물이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한국아트라스BX에서 사실상 대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아트라스BX는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조현범 사장의 범죄혐의에 연루된 박정호 전무를 사내이사 후보자로 올렸다가 주주들의 반발 및 논란이 커지자 이를 철회한 바 있다. 박정호 전무는 조현범 사장으로부터 받은 계좌를 협력업체에게 전달하고 뒷돈을 요구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사내이사 선임 무산됐음에도 불구하고 박정호 전무가 한국아트라스BX의 실질적인 대표 역할을 맡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해당 보도에서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측은 “회사 경영 전반을 담당하고 있지만 대표이사 결재권은 갖고 있지 않다”고 해명했으나, 소액주주들의 의구심은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자진상폐 추진과 주주권익 보호 등을 놓고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오너일가 및 사측과 갈등을 이어오고 있는 한국아트라스BX 소액주주 측 한 관계자는 “조현범 사장이 경영권 장악 및 보은을 위해 자신의 범죄를 도운 공범을 자회사의 실질적인 대표이사로 임명한 것”이라며 “이는 진정한 반성이 아니라, 꼼수 반성이고 국민과 재판부를 우롱하는 것이다. 단지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는데 그치지 말고, 회사 임직원과 강제적 거리두기를 통해 경영에서 물러나야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소액주주 측 관계자는 “조현식 부회장의 메시지 이후 최대주주 및 사측에 서한을 보냈으나 아직까지 응답이 없다”며 “조현범 사장의 현재 혐의는 몇 억원 수준이지만, 한국아트라스BX를 둘러싼 문제는 소액주주로부터 2,500억원 이상을 편취하는 사안이다. 이를 멈추지 않는 것은 진정한 반성이 아닌 감형을 위한 시늉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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