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실에서 열린 당무위원회의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이 지사가 정치적 앙금이 깊은 친문을 향해 화해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뉴시스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실에서 열린 당무위원회의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이 지사가 정치적 앙금이 깊은 친문을 향해 화해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뉴시스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2017년 19대 대선 경선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운 것에 대해 “내가 좀 싸가지가 없었던 것 같다”고 몸을 낮춰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지사는 지난 16일 대법원에서 ‘친형 강제입원’과 관련한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아 사법적 족쇄에서 풀려난 이후 유력 대선주자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양강 구도를 형성하며 대선주자로서 확실한 입지를 굳혔다.

그럼에도 이 지사가 2017년의 일을 꺼내 반성문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지사는 민주당의 최대 주주인 친문과는 정치적 ‘앙금’이 깊다. 이 지사는 정치를 ‘정동영계’로 시작해 출신 자체가 친노‧친문과는 거리가 있는 철저한 비주류다. 이 지사는 지난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민주당 전신) 대선 경선 과정에서 ‘정동영계’로 활동했으며 정동영 전 의원의 지지 그룹인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 이재명, 친문과 무슨 일 있었기에...

이 지사는 성남시장 재임 당시인 지난 2017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해 문재인 대통령과 날선 대립각을 세웠고, 이 과정에서 친문 지지자들에게 미운털이 박혔다. 특히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펼쳐진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서 이 지사가 친문 핵심인 전해철 의원과 맞붙으면서 친문과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당시 전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등을 비난하는 글을 올린 이른바 ‘혜경궁 김씨’(‘정의를 위하여’ @08_hkkim) 트위터 계정의 소유주가 이 지사의 부인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고발장을 접수하기도 했다.

심지어 당시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 등이 모인 네이버의 한 카페 회원들은 신문에 이 지사를 겨냥해 ‘혜경궁김씨는 누구입니까’라는 문구가 담긴 광고를 게재할 정도로 이 지사에게 강한 거부감을 표출했다. 전해철 의원이 경선에서 지자 친문세력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남경필 자유한국당 후보가 되는 것이 낫다’라는 말까지 돌았다. 

이후 전 의원은 “당 내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고소를 취하했고, 당시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해당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다.

최근 친문 열성 지지자들은 대법원의 이 지사에 대한 판결에 대해 민주당 당원 게시판을 통해 “여기가 거짓말해도 묻어주는 당이냐”, “대선은 절대 못 가게 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 지사는 친문 세력과의 갈등이 극에 달하자 한때 문재인 정부에서 자신이 탄압을 받고 있다는 속내를 넌지시 표출하기도 했다. 이 지사는 지난 2018년 10월 성남시장 재직 당시 '친형 정신병원 강제 입원' 의혹과 관련 경찰이 압수수색을 하자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도 문제 되지 않은 사건인데 6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왜 이런 과도한 일이 벌어지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불편한 심경을 표출했다.

그러나 이후 이 지사는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언론 등을 통해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대해 “되돌아 봤을 때 보면 정말 싸가지 없었다”라며 한껏 몸을 낮췄다.

이번에도 이 지사는 28일 시사평론가 김용민씨의 유튜브 채널 ‘김용민TV 프로그램 용터뷰’와의 인터뷰에서 “어느날 지지율 좀 올라가니까 마치 필로폰을 맞은 것처럼 회까닥했다”며 “싸가지가 없었다”고 반성문을 썼다. 이어 “맞아야 정신을 차리고 먹어봐야 맛을 안다고 앞으로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지사는 “문재인 정부가 성공해야 정권 재창출할 수 있고 그래야 나도 활동할 공간이 생긴다”면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지사는 “공격한다고 공격되는 건 아닌데 공격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을 공격할 때보다 완화된 행태라 생각했는데 그조차 불필요한 것이었다. 제 입으로 안해도 되는데”라고 강조했다.

이 지사의 이날 발언은 대법원 판결 이후 그의 정치적 위상과 무게감이 달라진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어서 더욱 더 큰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국무회의 전 박원순(왼쪽부터)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박남춘 인천시장, 이낙연 국무총리와 차담을 하고 있다. 이재명 지사는 지난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강하게 공격해 친문 지지자들의 반감을 샀다./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국무회의 전 박원순(왼쪽부터)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박남춘 인천시장, 이낙연 국무총리와 차담을 하고 있다. 이재명 지사는 지난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강하게 공격해 친문 지지자들의 반감을 샀다./뉴시스

◇ 친문 향한 ‘화해의 제스처’?

이 지사의 이 같은 고해성사는 친문을 향한 화해의 ‘제스처’로 해석되고 있다. ‘대법원 판결’을 통해 기사회생한 이 지사에게 앞으로 남은 최대 ‘미션’은 척을 진 친문의 ‘마음 돌리기’라는 얘기가 있다.

차재원 부산 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이 지사에 대한 친문의 정치적 앙금은 깊다”며 “그것을 어떻게 해소할 것이냐가 이 지사에게는 가장 큰 과제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지사가 친문의 낙점을 받아야 민주당의 대선주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SBS 의뢰로 지난 24∼25일 실시한 차기 대권주자 지지도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 포인트) 결과, 이낙연 의원의 지지율은 28.4%였고 이재명 지사는 21.2%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층이라고 밝힌 응답자의 경우 50%가 이 의원을, 27%가 이 지사를 지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이 지사는 지지 정당이 없거나 모른다는 무당층에서는 17.1%를 얻어 이낙연 의원(13.6%)보다 앞섰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지사가 무당층에서 이 의원에게 우위를 보인 반면 친문 세력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이 의원에게 큰 폭으로 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은 이 지사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친문을 향해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고 있는 이 지사는 ‘대선주자 이재명’의 경쟁력을 키워 친문의 지지를 끌어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지사는 지난 27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친문을 우군으로 만들 복안이 있나’라는 질문을 받고 “사람 마음인데 억지로 되겠나. ‘이재명이 우리한테 필요한 존재다’라는 걸 증명하는 게 중요하다”며 “아무나 내도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면 다르겠지만, ‘어려운 상황에 이재명 아니면 이길 수 없다’ 이런 상황이면 지지하지 않겠는가”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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