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활동 반경을 다시 넓히고 있어 주목된다.

4월 중순 공개 활동 중단 사태로 건강 이상설이 제기됐던 김정은 위원장은 5월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건재를 과시했다.

하지만 이후 행보는 노동당의 회의를 주재하는 정적인 통치 활동에 그쳤다. 그나마 5월과 6월 각각 두 차례에 머물렀다.

군부대와 협동농장, 공장·기업소 등을 방문하는 일정이 연일 이어지던 예년과 다르다. 이 때문에 4월 모종의 건강 이상으로 수술이나 치료를 받은 김정은 위원장이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그런데 7월 들어 변화가 나타났다. 2일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어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 대처와 평양종합병원 건립 문제 등을 다룬 데 이어 8일에는 할아버지인 김일성 사망 26주기를 맞아 참배했다. 또 18일에는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열어 군대의 사상 교양 문제 등을 논의했다는 게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회의 주재나 실내에서 열린 김일성 추모행사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본격적인 공개 활동에 돌입한 건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종합병원 건설장을 방문했다는 노동신문의 7월 20일자 보도부터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노동자들이 건설 속도를 올리고 있는 데 대해 만족을 표시했다. 하지만 당 간부와 현장의 사업 추진체라 할 수 있는 ’건설연합상무‘(테스크포스 성격)가 마구잡이식으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심하게 질책했다. 이곳 방문은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 참석 이후 두 달 20일 만에 이뤄진 김정은 위원장의 외부활동이다.

이후 황북 황주의 광천닭공장(7월 23일 보도) 방문→정치국 비상확대회의 소집(7월 25일)→전승 67주 백두산기념권총 수여식(7월 26일)→제6회 전국노병대회(7월 27일) 등을 일정을 잇달아 소화했다.

북한 매체들이 전한 관련 영상을 살펴보면 김정은 위원장이 이전과 달리 상당히 건강에 자신감을 찾은 모습을 알 수 있다. 노병대회 참석 고령 인사들을 만나고, 단상에서 인사를 하는 것을 물론이고 행사장을 벗어나 노병들과 함께 걷고 환담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지금까지 드러난 추세대로라면 김정은 위원장은 현지지도로 불리는 군부나 산업현장 방문 횟수를 점차 늘려가며 통치 행보의 정상화를 꾀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등 활동을 제약할 소지가 있는 변수가 있는 상황임에도 김정은 위원장과 그의 참모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탈북민 K씨의 입북을 계기로 코로나19가 남한으로부터 유입됐다고 몰아가려는 북한 당국의 태도와 달리 핵심 지도부는 사태를 심각하게 보지 않는 듯한 분위기다. 

사실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상태가 정확히 어떤지는 알기 어렵다. 최고지도자의 건강 문제는 북한이 최고의 기밀로 간주해 쉽게 노출되거나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철통 보안을 유지하기 때문에 대부분 베일에 싸여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당시 열차역에서 담배를 피운 김정은의 꽁초를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재떨이를 받쳐가며 챙긴 것도 자칫 타액 등을 통한 건강 또는 DNA 정보가 새나가는 걸 막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적성국이나 비우호 국가를 방문한 대통령이나 최고지도자급 인사의 배설물이나 모발 등을 고스란히 챙겨가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과 관련해서는 각국 정보기관들이 서울발 첩보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대북 감시장비와 휴민트(HUMINT,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수집)를 무기로 평양의 권력 내부를 한눈에 들여다보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 관련 사안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챙겨야 할 사안 중 하나로 간주된다.

이를 토대로 최고지도자의 건강문제를 진단하고 예측도 한다. 지난 2008년 여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순환기계통 이상으로 유고 상태에 빠졌다 그해 11월 복귀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 중앙정보국(CIA) 서울 거점 I.O(intelligence officer, 정보 수집 요원)들은 수집된 정보를 토대로 “3년을 넘기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CIA를 비롯한 미 정보 당국의 정확한 판단을 가능케 한 정보 원천에 관심이 증폭되기도 했다. 

36살 청년지도자인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 문제를 두고 이런저런 논란이 벌어지고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건 무엇보다 불안정한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 이력 때문이다.

2010년 9월 노동당 대표자회를 통해 공개 석상에 처음 등장한 김정은 위원장은 건강해 보이는 ’후계자‘였다. 하지만 173cm 정도의 키에 체중이 90kg 정도였던 그가 집권 이후 130kg 이상 급격히 비만해지면서 우려가 제기됐다. 공개 활동 시 다리를 절거나 뒤뚱거리는 모습을 보였고, 공장이나 협동농장 참관 시 전동카트를 이용하는 모습까지 나타났다. 결국 2014년 9월 건강 이상이 생긴 그는 40일간 공백을 보였고, 다시 등장했을 때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의료 전문가들은 극도의 스트레스와 과도한 흡연, 가족력 등을 김정은 위원장 건강의 3대 위협요인으로 꼽는다. 촘촘한 대북제재와 풀리지 않는 남북 및 북미 관계, 그리고 경제난으로 인해 자신의 건설 프로젝트마저 차질을 빚는 상황은 공개회의에서 간부들을 질책하는 영상을 통해 드러난다.

줄담배를 피우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모습은 2018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내 말을 도통 안 들으려 한다“는 부인 이설주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이 모두 심근경색으로 급작스레 사망했다는 점도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에 대한 우려를 높인다.

서방 국가의 경우도 대통령 등 국가 원수급 최고지도자의 건강 문제는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는 게 관례다. 하지만 북한처럼 ‘최고 존엄‘ 운운하며 요란을 떠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북한 체제의 기이한 특성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절대 권력을 거머쥔 최고지도자 한사람에 의해 모든 게 좌우되는 상황에선 김정은 위원장의 유고가 곧 북한체제의 명운과 직결된다. 김정은 위원장 건강에 과도하게 쏠린 외부의 시선은 북한 체제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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