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정보통신(IT) 최강국’는 우리나라가 자주 듣는 수식어다. 실제 우리나라는 지난 4월 △5G통신의 세계 최초 상용화와 더불어 △인터넷 평균속도 1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정 광케이블 보급 1위 국가 △UN전자정부평가 2위를 기록하며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 강국으로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빅데이터, 통신, 인공지능(AI) 등 ICT기술을 기반으로 ‘디지털 뉴딜’ 정책까지 추진한다고 밝히면서 국민 대다수가 우리나라의 산업과 경제 전반이 ICT기술을 통해 크게 발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ICT최강국’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우리나라 ICT산업의 인력과 기술 활용도가 상당히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력난과 함께 클라우드, 플랫폼, AI 분야의 기술마저 글로벌 선진국에 밀리는 상황이다.
◇ “인재 부족한데 해외로 빠지기 까지”… 인력난 겪는 ICT업계
먼저 국내 ICT분야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히는 것은 우수한 인력의 부족 문제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의 의뢰로 제작해 3일 발표한 ‘2019년 ICT인력동향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국내 전체 산업인력에서 ICT산업인력의 비중이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3년 기준 전체 산업인력에서 ICT산업인력의 비율은 약 5.1%였다. 이후 2014년부터 5.0%로 감소하기 시작해 △2014년 5.0% △2015년 4.9% △2016.년 4.8% △2017년과 2018년 4.7%로 ICT산업인력 비중이 줄어들었다.
ICT산업인력의 ‘고용 탄성치’ 역시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기준 ICT산업의 고용 탄성치는 0.55였다. 이후 2017년에는 0.14로 감소했으며, 2018년 0.22로 조금 올랐으나, 2019년 -0.04로 마이너스 돌아섰다.
고용 탄성치란 취업자 증가율을 실질 GDP 증가율로 나눈 값이다. 경제 성장이 일자리 창출로 얼마나 이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지표다. 수치가 크면 산업 성장 대비 취업자가 많이 늘어난 것을 의미한다. 반면 수치가 감소하면 산업 성장 대비 취업자가 감소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ICT산업인력이 부족해지는 이유로 투자 부족과 각종 규제 때문이라고 말한다. 특히 AI와 빅데이터, 가상현실·증강현실(VR·AR)과 같은 ‘신(新)’ ICT산업 분야에 국내에서 너무 많은 규제가 걸려있고, 해외 시장에 비해 투자 금액도 부족해 우수한 인력들이 해외 ICT기업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한국경제연구원에서 실시한 ‘AI인재 현황 및 육성 방안 전문가 의견조사’에 참가한 ICT분야 전문가들은 미국의 AI 인재경쟁력이 10일 경우 한·중·일 3국의 AI 인재 경쟁력 수준은 중국 8.1, 일본 6.0, 한국 5.2인 것으로 평가했다.
AI분야에서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에게도 밀리는 이유에 대해 IT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AI 인재경쟁력은 미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며 “대규모 투자를 추진 중인 중국과 비교해도 상당히 격차가 나기 때문에, 국내 인재들이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 ICT분야 연구 종사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예전에 홍콩, 중국 기업과 연구소 등에서 거액의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으나, 우리나라 기술 발전 등을 위해 국내에 남는 결정을 했었다”며 “하지만 지금 이공계 지원과 법률상의 규제 때문에 연구활동에 걸림돌이 많아 답답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 인프라는 최고지만 글로벌 ICT기업에 기술·활용·점유율 모두 밀려
이 같은 ICT산업인력의 부족 현상과 인력 유출이 지속됨에 따라 우리나라의 ICT 인프라는 세계 최고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ICT 서비스산업 대부분도 외국기업에게 선점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이 7월 30일 발표한 ‘한국 ICT산업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클라우드·플랫폼 시장 등 국내 ICT서비스업 시장은 이미 글로벌 해외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경련 측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글로벌 ICT기업의 국내 클라우드 시장 점유율은 67%에 달한다. 여기서 클라우드 시장 주요 3개 분야인 △인프라 서비스(IaaS) △플랫폼 서비스(PaaS) △소프트웨어 서비스(SaaS) 모두 외국 기업이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인프라 서비스 분야에서는 미국의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점유율 51%로 1위를 차지했다. 플랫폼 서비스 분야에서는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S)가 점유율 18%를 차지하고 있으며, 소프트웨어 서비스 분야에서는 독일의 SAP가 9%로 1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의 기업의 ICT 활용도도 OECD 평균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기업들은 인터넷을 통한 거래(수주, 발주)와, 고객관리 및 공급망 관리 분야에서 ICT 기술을 이용하는 기업 비율이 OECD 평균보다 낮았다. OECD 평균 전산망을 통해 발주하는 기업의 비율은 46.4%이며, 수주는 22.8%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각각 41.1% 15.7%에 그쳤다.
클라우드와 빅데이터 분야에서 이를 활용하는 기업 비율도 OECD 평균 대비 낮았다. OECD 평균 클라우드를 활용하는 기업 비율은 31.2%,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기업은 12.5%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클라우드를 활용하는 기업 비율은 22.7%에 그쳤으며, 빅데이터는 7.7%에 불과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ICT산업의 기술 수준도 주요 경쟁국 대비 뒤처진 실정이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26개 ICT 분야별 평균 기술수준은 선도국 미국을 100%로 봤을 때, △유럽(92.9%) △일본(88.9%) △중국(86.1%) △한국(84.5%) 순이다.
26개 ICT 기술분야에서 미국·일본·중국·유럽 등 4대 글로벌 선진국 모두에 열위인 분야는 13개로, 4차 산업혁명의 핵심분야인 AI, 클라우드, 빅데이터 분야도 포함됐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훌륭한 ICT인프라를 보유한 한국이 글로벌 외국기업의 놀이터가 되지 않으려면 ICT산업에 관한 제도 정비가 필수적”이라며 “정부가 ICT업계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ICT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만성적인 업계 인력부족 문제 해결을 위한 교육환경의 개선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혁신적인 ICT서비스 기업 육성을 위해 창업환경 개선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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