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지난 7월 24일 세종시청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서울이 ‘천박한’도시라고 말했다가 많은 비난을 받은 것을 알고 있지? 나도 평소 서울이 점점 천박한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떤 맥락에서 그 말이 나왔는지 궁금해서 검색해 보았네. 이 대표가 행정수도 이전을 이야기하면서 했다는 말을 옮기면 다음과 같아. “서울 한강을 배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무슨 아파트는 한 평에 얼마’라는 설명을 쭉 해야 한다. 갔다가 올 적에도 아파트 설명밖에 없다. (프랑스) 센강 같은 곳을 가면 노트르담 성당 등 역사 유적이 쭉 있고 그게 큰 관광 유람이고, 그것을 들으면 프랑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안다. 우리는 한강 변에 아파트만 들어서가지고 단가 얼마 얼마라고 하는데, 이런 천박한 도시를 만들면 안 된다.”

서울이 고향이거나 서울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슴 아픈 말이지만 맞는 지적 아닌가? 나도 남쪽 고향에서보다 서울에서 사는 기간이 훨씬 더 길고 아들딸 모두 서울이 고향인지라 누구 못지않게 서울을 좋아하네. 그리고 지금 내가 40년 넘게 살고 있는 관악산 기슭의 신림동 산동네를 사랑하지. 하지만 서울이 점점 천박한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 않아.

한강변에 아파트들이 죽 들어선 것도 사실이고, 한강 유람선을 타면 보이는 게 아파트뿐이어서 많은 보통 사람들이 ‘저기 아파트는 xx아파트인데 평 당 얼마고, 저기 보이는 것은 몇 평짜리인데 보통 xx억은 줘야 살 수 있다’고 말하면서 부러워하는 게 사실 아닌가? 그러니 새로운 행정수도를 계획할 때 그런 도시가 되지 않도록 유의하자는 당부인데 그게 무슨 큰 실언이라고 거의 모든 언론들이 비난만 하고 있는 게 더 이상해. 물론 정치인, 그것도 집권당의 대표가 한 말이라 무게가 달라서 나온 반응이겠지만 너무 일방적인 비판 같네.

언젠가 친구랑 강남 거리를 지나가는데 도로변에 있는 아파트에 ‘경축! 안전진단통과!’라는 문구가 쓰여진 대형 현수막들이 그 아파트단지 곳곳에 걸려 있더군. 그래서 혼자 생각 중얼거렸지. ‘그래. 지은 지 이삼십 년 밖에 안 돼 보이는 건물인데 무슨 문제가 있겠어?’ 그때 함께 가던 친구가 내 말을 듣고 의아한 표정으로 묻더군. ‘저게 무슨 뜻인지 알아?’난 평생 아파트에서 살아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모를 수밖에. ‘왜? 건물이 안전하다는 판정을 받았으니 좋다는 뜻 아니야?’다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친구가 말하더군. ‘그 반대야. 건물이 안전하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다는 뜻이야.’그래서 다시 물었지. ‘그런데 웬 경축이야?’재건축을 해서 아파트 값이 오르게 되었으니 모두가 축하할 일이라서 그런다나. 참 충격적인 순간이었네.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안전해서가 아니고 안전하지 않아서 좋다니… 어디 그게 보통사람들 생각인가? 재건축으로 불어날 돈만 생각하는 천박한 사람들의 반응이지. 아마 지금도 서울 어딘가에는 이런 현수막이 걸려 있는 아파트가 있을 걸세.

근대 자본주의 문명은 근본적으로 천박할 수밖에 없네. 자본주의는 자기가 만든 것을 계속 폐기하고 새롭게 만들어내야만 유지될 수 있는 체제이거든. 지금 누구나 갖고 있는 휴대폰을 모든 사람들이 5년 이상 사용한다고 생각해보게. 그러면 아마 휴대폰을 만드는 기업들이 하나 둘 문을 닫게 될 걸세. 아파트도 마찬가지야. 옛 한옥들처럼 100년 이상 살 수 있는 아파트를 짓는다고 생각해봐. 그러면 지금처럼 많은 건설 회사들이 필요 없을 거야. 그래서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계속 만들었다가 계속 허무는 일을 그만 둘 수가 없어. 거기에다가 입주민들의 욕망까지 가세하게 되니 아파트가 점점 더 높이 올라갈 수밖에 없네. 아파트값이 계속 오르는 이유 중 하나야. 이쯤에서 우리 솔직해지세. 지금 우리는 아파트값 올리기 위해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을 허물고 다시 쌓아올리는 바보짓을 반복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 천박하다는 말을 들어도 감당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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