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한국테크놀로지그룹(구 한국타이어그룹) ‘형제의 난’의 서막이 올랐다. 침묵을 이어오던 ‘형’ 조현식 부회장이 자신을 제치고 후계자로 낙점된 ‘동생’ 조현범 사장을 향해 마침내 입을 연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재판과 맞물려 그룹의 앞날에 짙은 안개가 드리우게 됐다.
◇ 조현범에 지분 넘긴 조양래… 현실이 된 분쟁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최근 경영권 분쟁 양상을 드러낸 바 있다. 발단이 된 것은 지난 6월 말, 조양래 회장이 보유 중이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 모두(23.59%)를 ‘차남’ 조현범 사장에게 넘기면서다. 이에 따라 조현범 사장은 그룹 지주사인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새로운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이러한 변화는 여러모로 이목을 집중시켰고, 많은 뒷말 또한 낳았다.
먼저, 그동안 이어져온 형제경영의 균형이 순식간에 완전히 깨지면서 형이 아닌 동생이 주도권을 쥔 것이었다. 이전까지 두 형제는 비슷한 수준의 지분을 보유한 채 승계의 두 축을 형성하며 균형을 이뤄왔다. 하지만 이제는 차남 조현범 사장으로 무게가 확 기울었다. 조현범 사장의 지분이 42.9%로 압도적인 반면, 조현식 부회장의 지분은 19.32%에 그친다.
더욱이 조현범 사장은 협력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은 혐의 등으로 지난해 구속 기소돼 지난 4월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후 조현범 사장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기도 했다.
이에 조현식 부회장을 중심으로 승계구도가 재편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조현식 부회장 역시 횡령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지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는 등 조현범 사장에 비해 죄질이 가벼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관측은 조현범 사장이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뤄진 지분 변동으로 완전히 깨지게 됐다.
이처럼 급작스러운 지분 변동으로 조현범 사장이 승계의 주도권을 잡게 되면서 각종 경영권 분쟁설도 솔솔 새어나왔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측은 경영권 분쟁설이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으나, 이는 곧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달 말, 오너일가 3세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은 부친 조양래 회장에 대해 성년후견을 신청했다. 조현범 사장에게 지분을 넘긴 결정이 건강한 정신상태에서 자발적 의사에 의해 내려진 것인지 객관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그러자 조양래 회장은 다음날 발표한 반박 입장을 통해 조현범 사장을 오래 전부터 후계자로 점찍어왔다고 천명하며 장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 마침내 입 연 조현식 “아버지 결정에 강한 의구심”
조현식 부회장은 이 같은 경영권 분쟁 양상에 있어 핵심인물이면서도 그동안 이렇다 할 언급이나 행동을 보이지 않아왔다. 그러나 최근 마침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조현식 부회장은 지난 25일 법률대리인을 통해 부친에 대한 성년후견 신청과 관련된 입장을 발표했다. 먼저 “가족의 일원이자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주주로서 많은 고민을 해왔으며, 아버님의 건강상태를 두고 이러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 가슴 아프다”고 밝힌 조현식 부회장 측은 “현재 조양래 회장의 건강 상태에 대해 주변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고, 그에 따라 그룹의 장래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있는 상황이다. 조현식 회장 역시 조양래 회장의 최근 결정들이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제공된 사실과 다른 정보에 근거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양래 회장 건강상태에 대한 논란은 본인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한국테크놀로지 그룹, 주주 및 임직원 등의 이익을 위해서도 법적인 절차 내에서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객관적이고 명확한 판단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라며 “현재 진행 중인 성년후견심판절차에 가족의 일원으로서 참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러한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또 다른 분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새로운 의사결정은 유보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현식 부회장의 이 같은 입장은 무척 정제된 화법으로 이뤄졌지만, 동생을 후계자로 결정한 부친과 동생 모두를 겨냥해 포문을 연 것이나 다름없다. 경영권 분쟁에 공식적으로 참전을 선언한 셈이다. 특히 성년후견 절차가 진행 중인 동안 새로운 의사결정이 없어야할 것이라고 밝힌 대목은 동생의 반격을 염두에 둔 ‘경고’로 풀이된다.
◇ 안갯속에 빠진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앞날
이처럼 조현식 부회장이 침묵을 깨고 나오면서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경영권 분쟁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비로소 본격적으로 서막이 오른 모양새다.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 양측의 유·불리한 지점이 뚜렷한 가운데, 관건은 법원의 판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성년후견 신청 결과에 따라 양측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릴 전망이다. 성년후견 신청이 받아들여지고, 결과적으로 조현범 사장에 대한 지분 이동을 백지화시키게 된다면 조현식 부회장은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점하며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다. 반면, 성년후견 신청이 무위로 돌아갈 경우 조현범 사장은 압도적인 지분을 지켜내는 것은 물론 후계자로서의 확고한 명분도 획득하게 된다.
다만, 현재 진행 중인 재판은 조현범 사장에게 상당한 부담이다. 항소심에서도 유죄 선고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인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을 경우 조현범 사장의 입장은 무척 곤란해진다. 집행유예를 선고받더라도 형량에 따라 향후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성년후견 신청 결과와 무관하게, 후계자로서의 향후 행보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오너일가의 경영권 분쟁으로 극심한 혼란이 불가피해지게 됐다. 가뜩이나 실적 악화가 이어지고 있고,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이 더해진 상황에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된 모습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 양상이 격화하면서 서로를 향한 폭로 등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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