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니스트
하도겸 칼럼니스트

대부분의 사람들의 사주를 보면 어려움이 참 많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있는지 이해가 안되는 사주도 더러 있다. 다른 사람은 잘 모르겠고 스스로의 경우 역시 늘 어려웠지만 그런대로 살아왔다. 아마도 나름 어려움을 극복했기 때문인데, 그러기에 그 고난이 추억이나 교훈으로 남아 있다.

인생이 쉽고 순탄하면 누구나 좋아하겠지만 그건 전생에 나라를 구하지 않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한 치도 틀림이 없는 불교의 인과응보를 안다면 굳이 바라고픈 생각조차 사라진다. 그런 입장에서는 늘 어려움이 오면 힘들어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그냥 소소하게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도 청산유수와 같은 불자들의 도교적인 삶의 방법이기도 하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절에도 사주를 보는 역술인이나 사주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나보다. 어쩌다 자신의 사주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안 이상 그와 다른 흐름, 즉 많이는 아니지만 조금 나은 방향으로 바꾸거나 그 세기라도 좀 떨어뜨리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런 모습도 코로나19로 초래된 위험한 시기에는 참으로 흥미로운 이벤트가 되는 듯하다.

사주계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좀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잘 해석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지행불일치 즉 그 아는 만큼 따르는 더 적절한 올곧은 행동이 없을 경우는 심각한 피해를 끼치기도 한다. 그래서 잘 모르지만 모두들 한입으로 역술인들은 수행하는 것처럼 살아야 하며 지행합일을 이뤄야 한다고 하나 보다.

많은 사람들의 사주에 공통되는 부분과도 관련이 있는 집단무의식이 커질수록 그 영향범위는 커진다. 다른 사람이나 지역, 나아가 나라나 민족의 운명에 굳이 간섭하고 싶지 않더라도 묘한 인과는 결국 사람들의 집단적인 인식변화, 재난이나 혁명에까지 이르게 한다. 그래서 민심은 천심이고 사람이 하늘이라고 했나 보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그 영향 범위는 예견치 못하는 크기로 증폭 또는 확산되어 커다란 재난이나 혁명을 부르기도 한다.

여하튼 역술인이든 사주를 보러가는 사람이든 누구나 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얄궂은 지식들을 더 업데이트하고 품격을 보다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강한 동기부여인 듯하다. 그게 다름이 아닌 바로 ‘어려움’이라는 고통이 있다고 부처님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말하고 싶으셨나 보다.

이런 시기 사주를 본다는 것은 결국 더 행복하고 덜 불행하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이다. 코로나19에도 안 걸려야 하고 어려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가능하면 취업도 하고 성업도 하고 싶은 무의식이 의식으로 표출된 것이리라. 그러니 어려움과 관련된 사주의 형극이나 신살이니 충이란 듣는 것만으로 커다란 괴로움으로 다가온다.

사진은 수안스님이 쓴 것으로 보이는 바라밀에 관한 선화이다. / 하도겸 제공
사진은 수안스님이 쓴 것으로 보이는 바라밀에 관한 선화이다. / 하도겸 제공

하지만, 이 모든 고통들은 바로 당장 피할 수 없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면 한번 부딪혀 볼 만한 것이 된다고 한다. 운명을 포함한 미래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늘 변수가 있는 확률일 따름인 듯하다. 그리고 그 미래는 개운으로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라 작은 실천의 아주 오랜 쌓임(선업)을 통해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단언하고 싶다.

그렇게 오래된 미래를 점차 만들어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나온 일들을 참회하게 된다. 여력이 되면 가까운 것부터 조금씩 고쳐나가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큰 후회가 된 잘못도 고치거나 그 빚을 갚을 수 있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야만 사주(운명)의 확률을 아주 조금이나마 빗겨가게 수 있을 듯 싶다. 잘못을 한 순간의 그때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때 찾아오는 인과는 적어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없는 듯이 숨어 지내는 삶의 고수의 길이 아닐까도 싶다.

말은 늘 그럴 듯하고 나름 흥미진진하게 받아들이고 싶다고 하지만, 등 뒤로 흐르는 땀같은 느낌을 보면 속마음으로는 그리 편치만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이 생에서는 정말 조금이나마 간절하게 운명의 방향을 맑고 밝음으로 1도라도 바꾸고 싶다. 까닭에 어려움과 고통과의 불편한 만남을 늘 시도해본다.

사실 사주에 나오는 신살을 다 보면 한사람이 죽어도 수십번을 죽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측면에서 보면 그냥 사람이 왜 쉽게 안 죽는지 의아스럽기도 하다. 사주는 인생의 운명에 단지 몇 프로 또는 반도 안 되는 확률이기 때문 아닐까 싶다. 100년이나 120년까지 운명을 볼 수 있는 만세력 등을 보다보면 가끔 이러다가 혹시 다시 120년이 반복될 때까지 안 죽게 될까봐 걱정은 왜 안하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의학도 급발전하고 AI로 뇌과학을 이용해서 마음이나 의식만 대체될 수 있는 몸으로 옮길 수 있게 될 것도 같다. 그런 생명 연장의 방법들이 다방면에서 너무 급성장하고 있기도 하다. 천수를 누리다 못해 덤으로 더 누리며 신의 영역으로 접근하는 인간들에 대한 시샘으로 코로나19가 발생한 것은 아닐까도 싶을 정도이다.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환경의 문제나 금권적 독점자본주의의 공고화, 문예부흥을 잊을 정도로 다시 신에게 예속되어 가는 광신도들…. 세기말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모든 것들의 방향은 늘 질곡이며 그 다음은 질적인 변화로서의 시대의 혁명적 대전환이 아닐까 싶다.

그 내용은 차츰 밝혀질 것인데, 그것이 지금의 모순적인 부조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에는 한 표 던지고 싶다. 안을 들여다보면 다 똑같이 별 재미없을 것 같은 소위 연예인 등 잘나가는 사람들의 보여주기식 불쌍한 인생이 뭐 그리고 좋다고 꼭 같은걸 먹어야 하고 같은 곳에 가봐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다보면 결국 부유한 권력자가 건강하게 장수하겠다는 욕심쟁이들의 양적 확대만 이뤄질까 두렵다.

도덕적인 반성과 정신적인 수양이 없는 이웃나라들의 패망이 하향평준화된 한류와 K-pop에 도취된 우리의 자존감에 어떤 자극을 줄까? 인권을 넘은 인간성을 회복한 인문적인 민본주의라는 새로운 우리겨레에 맞는 사상이나 철학의 출현을 기대해 본다. 사주나 역술은 조롱받아야 할 우리의 동양철학이 아니다. 당시에는 수학이며 과학이었던 주역 등을 기반으로 공자와 주자의 학문도 완성을 향했다. 유교 뿐만 아니라 도교나 불교 모두 이를 기반으로 발전했고 오늘에 이루었다. 그런 유불선을 기반으로 코로나19를 맞이한 세계에게 한줄기 빛을 선사할 수 있는 사상이 출현하여 앞으로의 1000년을 이끌어주었으면 한다.

어차피 죽으면 썩을 몸이고 재산은 가지고 가는 게 아니라 다 두고 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유형의 재산은 불교의 무아로 다 묻어두고 자신만의 가치나 개념을 만들어 놓고 가서 다시 찾아와서 자랑스러워 해야 할 것이 있어야겠다. 이런 좀 긴 안목으로 사는 입장에 서게 되면, 그냥 일희일비하면서 희희낙락하는 게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어려워지기만 한다.

누구나 사주를 보게 되면 어려움을 예견하기도 한다. 그렇게 미리 형극을 예견하고 나름 장기적인 준비도 하게 된다. 만약 충분하게 대비하거나 나름 만족하게 되었다면 주변에 좋은 인연들의 도움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우리를 둘러싼 기미나 분위기가 조금씩 맑고 밝게 나아가고 있다면 모두가 대자대비한 육자명왕진언인 ‘옴마니반매훔’을 주력한 이치라고 하면 너무 종교적이며 추상적일까?

갑자기 마무리하는 느낌이지만, 사주를 잘 보고 10년 또는 30년 어쩌면 60년을 두고 계획적으로 아름다운 죽음을 대비하는 그런 준비된 인생이 내 오래된 미래를 맑고 밝게 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최근에 개운하는 방법 몇 가지를 추천받았다. 일시적이기에 몇 년 공들인 것과는 범위가 다르겠지만 그래도 흥미진진하게 해보고 그 운이 정말 바뀌는지 시험해보고 싶어졌다. 사실 해보긴 하겠는데 굳이 할 이유도 없는 이 모순이 주는 즐거움이 일희일비와 또 다른 즐거움이어서 만족스럽다. 어차피 다 내 것이 될 것도 아니고 잠시 머물다 가는 삶에서 그냥 조용히 여행가듯이 살다가는 것이지만, 가끔 날개잃은 천사처럼 나락에 떨어지기 직전 바닥치기 하듯이 스릴을 즐기려는 충동을 대체하려는 좀 루시퍼틱한 하루가 아닐까 싶다. 요즘 한약방을 돌아다니며 사상의학이나 오행을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사주도 공부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잠시 틈을 내 생각난 게 있어서 이와 같이 길게 옮겨보았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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