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협치′ 메시지에는 공감했지만, 정부‧여당의 태도 변화가 먼저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신구 기자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아프리카 반투족의 말. 참으로 의미 있는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8일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선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전날(7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협치 제안에 대해 이같이 화답했다. 다만 정부‧여당의 태도 변화가 선행돼야 진정한 협치가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의료계에 사과해야"

이날 연설문에는 그간 정부·여당과 대척점에 서 왔던 사안들에 대한 지적이 담겼다. 주 원내대표는 의료계 파업과 관련해 정부와 여당의 책임이 분명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간 정부·여당이 추진했던 공공의대 설립 등 의료 정책을 비판해온 것의 연장선이다. 

주 원내대표는 “의료 인력의 헌신이 있었기에 정부가 K-방역이라고 자랑할 수 있었다”며 “의료진들마저 편 가르고 의료현장에 혼란과 불안을 초래한 정부와 여당은 사과부터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료계와 합의를 이룬지 닷새만인 이날 여권과 의료계 사이에서는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합의문에 담긴 ‘원점 재논의’에 대해 여당은 “(정책 철회는) 의협의 주장”이라고 일축했고, 의사 국가고시 연장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주 원내대표는 “정부가 의료계와 협의 없이 불요불급한 공공의대 신설, 의대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다 자초한 평지풍파였다”라며 “원점에서 논의한다는 합의대로 국회는 여·야·의·정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만들어 적정 수준의 인력 양성과 최적의 의료 전달 체계 마련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자”고 덧붙였다.

◇ 정부·여당, 경제관 우려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비판도 빠지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현 상황이 국가적 위기라는 점에 공감하면서 2차 재난지원금과 4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수용하기는 했지만, 재정 건전성을 거론하며 여전한 입장차를 보였다. 정부가 2차 재난지원금 재원을 국채로 충당한다고 한 것에 대한 우려가 섞인 것이다.

주 원내대표는 “대한민국은 하루살이 국가가 아니다”라며 “한 개인의 살림도 수입과 지출을 따져서 계획이 있는 법인데 한 나라의 재정을 어떻게 운용하겠다는 기준과 원칙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코로나가 심화 됐다지만, 정권 내내 빚내어서 생색내고 뒷감당은 누가 하라는 말이냐”라며 “문재인 정부는 겁 없이 개발 연대 이후 지켜온 나라 살림살이의 금도를 허물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도 맹폭은 이어졌다. 주 원내대표는 “23번째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부동산 정책은 문재인 정권이 그동안 보여 온 실정과 무능의 결정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 여권에서 추진 중인 ‘부동산 감시기구’에 대해 “국민의 경제활동을 일일이 감시하는 기구”라면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제안에 더불어민주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꺼내 들면서 갈등의 불씨가 피어나는 모습이다. /뉴시스

◇ ′법치주의 파괴′ 비난

주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법치주의를 파괴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이 정권의 가장 큰 잘못은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를 다 파괴했다는 사실”이라며 “176석의 거대 여당은 행정부를 견제하기는커녕 거수기를 넘어 전위대 노릇을 하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특히 정치권 최대 화두로 떠오른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휴가 의혹’에 대해서는 추 장관이 직접 ‘특임검사’를 임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권이 추 장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 데 지원 사격을 한 셈이다.

주 원내대표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행태는 기가 막히다”라며 “중립성이 엄격히 요구되는 법무부 장관에 여당 당적을 가진 전 대표를 임명한 것부터가 대단히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추 장관 아들 사건은 추 장관의 이야기대로 간단한 사건이다. 그런데 왜 서울 동부지검은 8개월째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가”라며 “추 장관은 ‘소설 쓰네’라는 자신의 말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특임검사나 특별 검사의 수사를 자청해야 한다. 못하겠다면 사임하는 게 맞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는 공정과 정의가 그 핵심 가치”라며 “청와대 회의실 문 대통령의 뒤편에는 ‘나라답게 정의롭게’라는 문구가 보인다. 그것을 본 국민들은 ‘정의, 네가 왜 거기서 나와’라고 조소하고 있다”고 비꼬았다.

◇ ‘공수처’ 갈등 여전, 협치 불투명

주 원내대표는 이낙연 대표가 쏘아올린 협치에 공감하기는 했지만, 강도 높은 비판과 제안을 쏟아내며 여야 간 갈등 요소가 곳곳에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야당에서는 박수가 나왔지만, 여권 인사들은 냉랭한 반응을 보인 것도 이같은 분위기를 드러낸 셈이다.

주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통과된 법을 내가 찬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의회민주주의의 자기부정’이라는 이 대표의 전날(7일) 연설을 인용하며 '북한인권재단 이사', '북한 인권대사', '대통령 특별감찰관'을 임명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여당에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압박을 하면서 이미 갈등의 조짐은 피어나고 있는 모양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단-상임위원회 연석회의에서 “국민의힘이 공수처 후보 추천위원을 즉각 추천하고 공수처의 정상적인 출범을 약속한다면 특별감찰관 후보자와 북한인권재단이사회 국회 추천을 진행하겠다”라며 맞불을 놓았다.

민주당은 박범계 의원이 초안을 준비해 공수처법 개정안 발의를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 국민의힘이 공수처를 반대하면서 공수처장 추천위원을 지연해 온 만큼, 최후의 일격을 준비 중인 셈이다. 여야의 갈등이 시간 문제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신영대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을 통해 주 원내대표의 연설에 대해 “비판으로 일관해 많은 아쉬움이 남지만, 협치의 끈은 놓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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