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가 지난 9일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현대·기아차 본사 사옥 앞에서 대기업의 중고차 매매업 진출 반대와 중고차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요구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시사위크=제갈민 기자  자동차업계에서 중고차시장을 두고 대기업과 소상공인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내 대기업 현대자동차그룹과 공유자동차를 운영하는 카쉐어링 기업 쏘카에서 중고차시장에 발을 뻗치려는 분위기가 감지되자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측이 이를 저지하고 나섰다.

업계에 따르면 중고차시장은 30조원 규모에 이른다. 이 시장은 지난 2013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후 대기업의 시장 참여가 제한됐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규제 밖에 놓인 수입차 업계는 이곳을 선점하고 있다.

수입차 업계는 각 브랜드가 한국법인을 세워 차량을 수입하고, 딜러사를 통해 신차를 공급한다. 딜러사는 대부분이 매출규모 기준 중소기업에 해당되며, 수입차 브랜드의 한국법인 또한 중견기업 수준이라 중고차 매매업을 영위할 수 있다.

수입차 업계는 수입사를 기준으로 2003년부터 크라이슬러, BMW, 아우디, 포르쉐, 푸조, 포드가 인증 중고차사업을 시작했다. 2008년에는 폭스바겐, 캐딜락, 사브 등도 인증 중고차 판매에 뛰어들어 사업을 확장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한국토요타자동차도 발맞춰 2015년 장한평에 1호 전시장을 개장하고 지속적으로 지점을 늘려가고 있다.

이 시장에 국내 자동차 기업인 현대·기아자동차와 한국GM(쉐보레), 르노삼성자동차, 쌍용자동차 등은 규제로 인해 먼발치에서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초 ‘대기업의 중고차 매매업 진출’과 관련된 규정이 폐지됐고, 동반성장위원회 측은 여기에 드라이브를 걸어 지난해 11월 중소벤처기업부에 ‘대기업의 중고차시장 진출’을 허용하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중기부는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지 않는 대신 대기업과 소상공인단체 간 상생협약을 맺기 위해 양측에 의견서를 제출하도록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지난 9일 ‘중고차관련 국내 업체들의 수입차와의 역차별 해소 시급’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감가율 관련 자료를 함께 첨부했다. /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지난 9일 ‘중고차관련 국내 업체들의 수입차와의 역차별 해소 시급’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감가율 관련 자료를 함께 첨부했다. / 한국자동차산업협회

◇ KAMA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입시 시장 활성화 및 투명성 강화 도움” 

이런 가운데 9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가 △국산 인증 중고차 부재 △성능·상태 점검 부실 △불투명한 가격 등으로 인해 중고차 시장 전반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이 높다는 점을 지적함과 동시에 대기업의 중고차시장 진입이 시장 활성화 및 투명성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면서 대기업 측에 힘을 실었다.

이어 시장진입 규제가 없는 외국에선 우리 중고차도 제값을 받는 것으로 나타난다면서, 미국시장과 국내시장에서 3년이 경과한 중고 세단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감가율을 비교해 근거자료로 제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미국시장에서 현대차 엘란트라(아반떼)는 3년 경과 후 감가율이 34.8%로 비슷한 체급의 폭스바겐 제타의 감가율 34.8%와 동일한 수준이다. 쏘나타도 3년 감가율이 43.3%로, 폭스바겐 파사트 감가율 43.9%와 유사함을 제시했다.

SUV도 △현대 투싼(37.7%↓) △GM 트랙스(38.1%↓) △폭스바겐 티구안(47.4%↓)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쏘나타 차량의 3년 감가율은 45.7%, 제네시스 G80은 30.7% 감가 수준이지만 3년 경과한 수입차의 감가율은 △BMW 3시리즈 40.9%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25.5%감가에 그쳤다. SUV도 △싼타페(32.4%↓) △BMW X3(25.6%↓) △벤츠 GLC(20.6%↓) 등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즉, 현대차가 인증 중고차를 운영하는데 제약이 없는 미국에서 현대차의 중고차 감가가 덜했으며, 국내에서 수입차 브랜드가 인증 중고차를 운영하고 있어서 수입차 브랜드의 감가율이 더 낮았다는 얘기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자료가 공정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미국시장과 국내시장의 중고차 감가율을 비교하는데 차종부터가 다르다는 것이다. 비교 대상 차종이 겹치는 것으로는 현대차 쏘나타가 유일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미국과 국내에서 3년이 경과한 차량의 감가율 차이가 단 2.4%p 수준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해 KAMA 측에 문의를 한 결과 “국산 차량과 경쟁 수입 브랜드의 각 시장 별 감가율을 비교를 한 것”이라며 “우리나라 중고차 시장의 감가율이 더 크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KAMA 측은 이 자료를 조사할 때 미국 중고차 거래 플랫폼인 ‘카구루스(CarGurus)’에서 판매 중인 차량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다고 설명해 직접 자료를 비교해 본 결과, 국산차의 감가율은 차종에 따라 차이는 보이지만 국내가 더 적게 나타나기도 했다.

실제 카구루스를 통해 미국 뉴욕주 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네시스 G80 2017년식 차종은 최저가 2만1,995달러(2,603만원)∼최고가 3만998달러(3,668만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 반면 G80 2017년식 국내 중고차 거래 시세는 케이카(K-Car) 기준 2,690만∼4,290만원에 형성돼 있다. 판매 가격에서부터 국내가 더 비싸다.

감가율을 비교하면 미국에서는 최저트림 판매가 기준 최고 46.9% 감가를 보였다. 국내에서는 G80 2017년식 당시 최저트림 판매가 대비 감가율이 최고 44.1% 정도로 나타났다. 즉, 제네시스 브랜드의 경우 국내에서 브랜드에서 인증 중고차를 운영하고 있지 않음에도 감가율 방어가 미국 시장보다 잘 되고 있는 모습이다.

케이카가 침수차를 걱정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안심 보상서비스를 시행한다. /케이카
케이카가 침수차를 걱정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매년 여름철 안심 보상서비스를 시행한다. /케이카

◇ 중고차 가격 인상 가능성 상존… 케이카에서 직영 중고차 이미 운영 중

이러한 상황에도 대기업 측의 중고차 시장 진입 움직임이 포착되자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이하 연합회)가 이를 저지하고 나섰다.

연합회 측은 국내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면 전반적으로 중고차의 거래가격이 인상될 수 있으며, 또한 이러한 인증 중고차는 이미 케이카에서도 운영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곽태훈 연합회 회장은 “국내 자동차 제조사는 현재 판매와 유통까지 담당하는 등 전 세계 유례없는 혜택을 받고 있음에도, 중고차 매매까지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중고차 매매업은 대기업 진출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들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대기업이 중고차시장에 발을 뻗칠 경우, 양질의 중고차 매물을 독점할 수도 있어 보인다고 우려했다.

익명을 요구한 중고차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에서까지 중고차시장에 진출할 시에는 딜러들이 고객들에게 차량을 매입하는 가격보다 대기업에서 매입하는 가격이 조금 더 높게 책정될 것”이라며 “매입 단가가 높으면 결국 중고차의 판매 단가를 높게 하는 요인으로 직결되는데, 대기업이 성능과 상태를 인증까지 해주는 차량이라 하면 단가는 더 높아지고, 결국 중고차 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중고차 가격 인상으로 인한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가 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일부 소비자들은 대기업의 중고차시장 진입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최근 유튜브를 비롯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허위매물·강매 등을 행하는 악질 중고차 딜러와 관련된 내용이 끊이지 않고 업로드 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SK엔카는 진단보증차량 및 헛걸음 보상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케이카는 직영으로 운영하면서 허위매물과 차량성능에 대한 소비자들의 걱정을 덜어주고 있다. 여기에 대기업이 진입할 시에는 이러한 문제가 더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국내 완성차업체들의 중고차시장 진입을 규제하는 수입차와의 역차별은 조속 해소돼야 한다”며 “국내 완성차업체의 철저한 품질 관리, 합리적인 가격산출 등 객관적인 인증절차를 거친 중고차 제품의 공급을 보장함으로써, 소비자 측면에서도 안심하고 중고차를 거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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