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회와 함께 동거동락 해온 노래방이 벼랑 끝에 몰렸다. 학창시절 우정을 다졌던 추억의 공간이자 직장인들에게는 해우소 역할을 해 온 노래방이 코로나19 앞에서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에 놓였다. 업계에선 정부가 친대중적 유흥시설로 오랜 세월 한국인의 여가 생활을 책임져 온 노래방에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 정책, 문제는 없을까. [편집자주]

지난달 24일 유흥업소가 밀집해 있는 서울 시청 주변 북창동의 한 노래연습장 입구가 집합금지명령서가 붙어있는 채로 굳게 닫혀 있다. / 범찬희 기자
지난달 24일 유흥업소가 밀집해 있는 서울 시청 주변 북창동의 한 노래연습장 입구가 집합금지명령서와 함께 굳게 닫혀 있다. / 범찬희 기자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수도권에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 중이던 지난달 초 벼랑 끝에 내몰린 자영업자의 현실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경기 안양에서 25년째 노래바(유흥주점)를 운영해 온 60대 자매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동생은 숨을 거둔 5살 터울의 언니를 대신해 최근 폐업 신고를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변을 숙연케 했다.

삼중고에 생계 위협 받는 K-POP 발전 역군

한국의 독특한 ‘방’ 문화를 대변하는 노래방은 국내 음악 산업의 주축을 맡아 왔다. 지난 7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표한 ‘2019 콘텐츠산업 통계조사’에 따르면 ‘노래연습장 운영업’에서만 2018년 한 해 동안 1조 4,450억원의 매출이 발생해 ‘온라인 음악유통업’의 뒤를 이었다. ‘음반 도소매업’(2,207억)은 물론 ‘음악 공연업’(1조581억) 보다도 비중이 컸다. 오늘날 K-POP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까지 골목 곳곳의 노래방이 숨은 조력자 역할을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한국인들의 희노애락을 함께 해 온 노래방은 현재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여 있다. 김영란법과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 ‘술 권하지 않는 사회’로 점점 굳어지는 가운데서 코로나19라는 초대형 악재가 겹쳤다. 정부가 ‘비말이 튈 수 있는 환경’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노래방을 방역상 고위험 시설로 분류해 서울, 경기, 인천 수도권의 1만6,000여 업소에 족쇄가 채워졌다. 지난 14일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2단계로 다소 완화됐음에도 여전히 영업장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음악산업에 있어 '노래연습장 운영업'은 '온라인 음악 유통업' 다음으로 많은 경제 규모를 차지하는 K-POP 발전의 숨은 조력자 역할을 했다. / 그래픽=이현주 기자
음악산업에 있어 '노래연습장 운영업'은 '온라인 음악 유통업' 다음으로 많은 경제 규모를 차지하며 K-POP 발전의 숨은 조력자 역할을 했다. / 그래픽=이현주 기자

◇ 100일째 문 닫은 코노정부가 희생양 삼아

한 달 넘게 영업을 하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이 계속된다면 제2, 제3의 ‘안양 자매’가 발생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게 업계 종사자들의 목소리다. 이철근 대한노래연습장협회 중앙회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한 달 임대료로만 200~250만원에 이른다. 여기에 방마다 저작권비로 6,000원 정도, 신곡 업데이트 비용으로 2만5,000원 정도가 나간다. 10개 방이라고 치면 한 달에 최소 300만원이 고정비로 쓰인다”면서 “그런데 정부에 손세정제라도 지원해달라고 해도 답변이 없다. 해도 너무 한다. 유흥업소를 포함해 전국 노래 연습 시설이 7만 곳에 이르는 데 폭발 직전이다”고 강조했다.

코인노래방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숨통이 트일 만 하면 또 다시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져 폐업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지난 3월 이후 강제적으로 영업을 하지 못한 날이 100여일에 이른다. 노래방 등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진 업종에 지원하기로 한 200만원은 그간의 손실을 메우기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10대 방역수칙을 준수하고 상시관리자까지 고용하는 등 정부 지침을 꼬박꼬박 지켰음에도 코로나19 발원지 취급을 받고 있는 코인노래방 업주들은 참다 못해 지난 19일 상복을 입고 국회 앞에 모여 영업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코인노래방 업주들은 지금까지 코인노래방발(發) 감염 사례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업종 특성상 방 하나당 2~ 3명이 사용하기 때문에 집단 감염 가능성이 낮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오히려 ‘혼족’도 많아 일반 식당이나 카페보다도 안전하다는 인식이 적지 않다.

김익환 한국코인노래연습장협회 사무총장은 “폐업 하지 않는 곳을 찾는 게 더 어려울 만큼 힘들다. 코인노래방은 주요 고객인 학생들은 기계나 시설이 좋지 않으면 찾지 않아 폐업으로 인한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다”면서 “구조상 n차 감염이 발생할 수 없음에도 정부가 코인노래방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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