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고아성이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감독 이종필)으로 돌아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고아성이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감독 이종필)으로 돌아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아역배우로 시작해 연기 인생 16년을 맞은 배우 고아성은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작품을 소화하며 독보적인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특히 선역과 악역을 넘나드는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으로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주고 있는데, 최근 몇 년간 주체적이고 당당한 여성캐릭터를 그려내며 충무로의 ‘여풍’에 힘을 싣고 있다.

이번에도 매력적인 여성캐릭터를 완성해냈다. 90년대 당찬 여성들의 특별한 연대를 담은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감독 이종필)을 통해서다. 1995년 입사 8년 차, 업무능력은 베테랑이지만 늘 말단, 회사 토익반을 같이 듣는 세 친구가 힘을 합쳐 회사가 저지른 비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고아성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실무 능력은 완벽하나 현실은 커피타기 달인인 생산관리3부 이자영 역을 맡았다. 자영은 실무 능력은 대졸 대리 보다 나은 베테랑이지만, 잡무를 도맡아 하는 말단 사원이다. 잔심부름을 하러 간 공장에서 우연히 폐수 무단 방류 현장을 목격하고 회사가 덮으려는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자영은 세상의 잣대가 아닌 자신만의 기준으로 ‘일’을 사랑한다. 언뜻 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포기를 모르는 뚝심과 용기로 불의에 맞서 싸우는 용감한 여성이기도 하다. 고아성은 늘 그렇듯 비장하지 않게, 담담하게 제 갈 길을 가는 인물로 캐릭터를 완성해 호평을 얻고 있다. 

또 하나의 매력적인 여성캐릭터를 완성한 고아성. /롯데엔터테인먼트
또 하나의 매력적인 여성캐릭터를 완성한 고아성. /롯데엔터테인먼트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고아성 역시 자영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다. 자영을 통해 본인도 성장했다면서 “자영처럼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진심을 전했다.

-완성된 영화를 본 소감은.
“개봉을 앞두고 긴장하고 있는데, 영화 본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너무 설렌다. (영화는) 시나리오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인물들이 직접 움직이면서 말과 행동을 하니 글로 읽었을 때보다 더 다채로운 풍경이 만들어진 것 같다. 좋았다.”

-자영은 어떤 인물이었나.
“시나리오부터 탄탄하게 그려져 있어서 내 아이디어를 더할 필요가 없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되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선하고 정의로운데 뻔하지만은 않고, 옆에 같이 있고 싶은 그런 사람이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내가 느꼈던 선한 사람들의 매력을 모아서 복합적으로 자영을 만들었다.”

-본인의 모습이 투영된 부분은 없나.
“없다.(웃음) 처음 시나리오 읽었을 때 자영과 나는 비슷한 점이 없었다. 자영과 달리 나는 내성적이다. 그럼에도 시나리오를 보고 자영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제일 와닿았던 인물이고, 제일 연기하고 싶은 인물이기도 했다. 그리고 유나는 키가 커야 할 것 같고, 보람은 이과느낌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너무 문과다. 하하. 그래서 상상이 잘 안됐다. 자영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난 후 촬영에 들어가면서 나를 많이 바꾸려고 노력했다. 의도적으로 에너지를 끌어올리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기도 했다. 조금 더 외향적으로 바꾸려고 노력을 했다.”

-90년대 직장인 여성을 연기했는데, 이모에게 힌트를 얻기도 했다고.
“어렴풋이 남아있는 기억이 있다. 기억이라기보다 잔상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어렸을 때 할머니 댁에 가있으면 이모가 퇴근하고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내가 그 시대의 의상을 입고 분장까지 마쳤을 때 그때 이모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유년기 때 최초로 인지했던 일하는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 시절 이모의 사진을 다시 봤는데, 자영이랑 비슷하고 느낌이 너무 새로운 거다. 시대극이긴 하지만 그렇게 먼 과거가 아니라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것이고, 그 시절을 겪은 분들도 너무 많을 거다. 그래서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대극을 많이 했지만, 이번엔 더 특별했던 것 같다.”

여성들의 특별한 연대를 그려낸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롯데엔터테인먼트
여성들의 특별한 연대를 그려낸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롯데엔터테인먼트

-영어토익반 직원들의 연대의식이 돋보였는데.
“우리 영화의 특징 같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합을 이루는 이야기지만, 누구의 집도 나오지 않고 가정사가 나오는 인물이 없다. 전체로 보는 시각이 영화에서 계속 유지된다. 그런 부분에 맞게 나도 연기를 했다. 자영의 내면과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추진력, 과정도 중요하지만 이 사람들과 함께 일어난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연기했다.” 

-여러 작품에서 영어 연기를 했는데, 이번 자영의 영어는 완전히 달랐다.
“작품마다 나름의 설정을 갖고 있었다. ‘설국열차’는 국적이 없는 영어를 목표로 했다. 다국적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의 영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풍문으로 들었소’에서도 짧게 영어 연기를 했는데, 그땐 유창하긴 했지만 유학은 간 적 없는, 학습지로 배운 사람이라고 설정했다. 그래서 또박또박 정석대로 말했다. 이번 자영도 나름의 설정이 있었다. 90년대 세계화 시대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었을 때, 그때 막 영어를 배운 사람. 실제 자료를 찾아보면 지금보다 악센트도 강하고 발음도 세더라. 또 특유의 운율이 있었다. 재밌었다.”

-이종필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감독이 디테일하고 복잡하게 설정해놓는 걸 좋아한다. 뭘 하나 쓰더라도 그냥 쓸 분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래서 물어보면 되게 자세히 설명해 준다. 또 이종필 감독의 놀라운 방식이 있는데, 매일 아침 일정표를 모든 사람들에게 준다. 몇 신을 찍을 것인지, 밥은 언제 먹는지 등이 적혀있다. 그리고 오늘 찍을 신에 대해 ‘내가 왜 이 장면을 썼는지, 무슨 의미인지’ 등 짧은 코멘트를 달아준다. 거기에 많이 의지를 했다. 말도 잘 하지만, 필력이 더 좋은 분이다.(웃음)”

의미 있는 작품 행보를 보이고 있는 고아성. /롯데엔터테인먼트
의미 있는 작품 행보를 보이고 있는 고아성. /롯데엔터테인먼트

-‘항거: 유관순 이야기’(2019)에 이어 또 다시 사회적 메시지를 지닌 작품을 택했는데.
“의도했다고 생각하진 않은데, 돌이켜보면 부정할 순 없을 것 같다. 의미가 있는 캐릭터에 더 끌리는 것 같다.”

-의미 있는 캐릭터라면.
“명확한 기준은 모르겠다. 시나리오 보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거다. 연기하는 재미를 외부에서 찾을 때도 있고, 내부에서 찾을 때도 있다. 내부는 내가 그동안 느껴왔던 인간의 진짜 모습들을 연기로 구현했을 때 그때 느끼는 쾌감이 정말 크다. 외부는 결과물이 나왔을 때 영화를 본 분들이 내가 정성을 들였던 숨은 의미를 알아줄 때 보람을 느낀다. 모든 과정에서 캐릭터의 의미가 생기는 것 같다. 내가 믿고 있는 세상의 일부분을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

-아역부터 시작해 성인 연기자가 됐는데, 다른 배우들과 다른 길을 걸어오면서 느끼는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
“먼저 장점은 성인이 된 후 연기자가 된 친구들보다 대중들한테 느끼는 막연한 겁이 좀 덜하다는 거다. 어렸을 때부터 나를 봐줬던 사람들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다. 그 점이 참 좋은 것 같다. 단점이라고 한다면, 흑역사가 많다는 거다. 옛날에 내가 했던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 창피하다.(웃음)”

-배우 고아성의 어떤 점이 대중들에게 좋은 평가를 이끌어냈다고 생각하나. 또 그런 대중들에게 어떤 배우로서 어떤 작품으로 보답하고 싶은지.
“변화는 있었던 것 같다. 20대 초반에는 다양한 도전을 했던 것 같다. 장르도 다양했고, 악역도 하고 살인마도 했었다. 20대 후반에 들어서는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 혹은 닮고 싶은 사람을 연기하게 되더라. 이자영도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선한 기운을 주는 사람한테 빠져있는 것 같다. 대중을 상대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경계하는 건, 대중을 하나의 개체로 보는 거다. 어떤 일이든 반응은 다양하게 존재하는데, 하나의 반응으로 모아지고 하나의 사람으로 생각하는 걸 경계하려고 한다. 항상 감사한 마음이 있다.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고, 자영처럼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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