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에 순혈주의 타파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강희석 이마트 대표와 정경운 롯데쇼핑 신임 기획전략본부장. / 각사
유통업계에 순혈주의 타파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강희석 이마트 대표(좌)와 정경운 롯데쇼핑 신임 기획전략본부장(우). / 각사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연말을 앞두고 인사 칼바람이 불고 있는 유통업계가 외부 인재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혈통이나 계파가 아닌 능력을 우선시 하는 선진형 인사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 존립이 최우선 가치가 된 경영 환경에 직면해서야 진정한 의미에 가까운 혁신이 이뤄지고 있는 모양새다.

◇ 코로나19가 불러온 순혈주의 타파 바람

미증유의 팬데믹 위기가 불러온 의도치 않은 순기능일까. 코로나19 대응에 여념이 없는 유통업계에 순혈주의 타파 바람이 불고 있다.

업계 예상대로 예년 보다 일찍 이뤄진 유통업계의 올해 인사 키워드는 ‘외부수혈’로 정리 될 수 있다. 국내 유통 산업을 대표하는 쌍두마차인 롯데와 신세계그룹의 해결사 역할을 맡은 인물 모두 ‘외부 인재’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지난 15일 신세계그룹이 정기 인사의 포문을 열자 세간의 관심은 이마트 강희석 대표에 집중됐다. 공직과 글로벌 컨설팅 기업에서 근무한 경력을 바탕으로 지난해 10월 이마트 구원투수로 등판한 강 대표가 그룹의 신성장 동력이 될 쓱닷컴까지 총괄하는 임무를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신세계에 합류한 지 불과 1년 만에 주력 계열사인 이마트와 캐시카우가 될 통합 온라인몰 수장까지 맡게 된 강 대표에게는 ‘정용진의 남자’라는 수식어가 부여됐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변화를 이끌어 내며 경영 능력을 입증했다는 분석이다. 강 대표는 과감히 매장 구조를 손 봐 대형마트의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형마트가 온라인과 편의점 등 경쟁 채널 보다 강점을 발휘 할 수 있는 그로서리 부문에 집중해 기존 점포의 30% 이상을 리뉴얼하기로 했다. 그로서리 매장과 테넌트(임대 매장) 비중을 대폭 강화해 ‘미래형 이마트’로 통하는 월계점이 대표적이다.

◇ ‘고언’ 가능한 비순혈 인재들

또 전문점의 교통정리도 이뤄냈다. 연간 적자규모가 900억원에 달해 대수술이 시급했던 전문점에 메스를 들이댔다. 우선 이마트의 회심작이었던 삐에로쇼핑의 단계적인 철수를 진행했다. 또 3년 간 지지부진해 온 헬스앤뷰티 스토어 부츠 사업을 종료하는데 있어서도 강 대표가 총대를 멘 것으로 알려진다. 재계 관계자는 “하이어라키(계급)가 확실한 대기업 조직에서 막중한 책임이 따를 수 있는 의견을 오너에게 건의하기란 쉽지 않다”면서 “강 대표는 자신이 부름을 받은 이유를 충실히 이해한 셈”이라고 말했다.

그룹 2인자로 통하던 황각규 부회장이 퇴진하며 일찍이 변혁을 예고한 롯데도 순혈주의와 작별을 고하고 있다. 롯데쇼핑의 핵심 조직인 기획전략본부를 이끌 총괄자에 정경운 동아ST 경영기획실장이 낙점됐다. 롯데쇼핑의 5개 사업부(백화점‧마트‧슈퍼‧롭스‧이커머스)를 총괄하는 이 자리에 외부 인사가 앉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자칫 ‘롯데맨’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인사 전통을 깰 만큼 상황이 엄중하다는 걸 말해준다. 실제 롯데쇼핑의 지난 상반기 영업익은 전년 대비 82% 감소한 535억원에 그쳤다.

롯데의 이번 인사에는 신세계가 참고사항이 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 본부장은 이마트 강 대표와 마찬가지로 세계 굴지의 컨설팅 그룹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강 대표를 모범사례로 삼아 신영증권, 보스턴컨설팅그룹, 웅진그룹 서울저축은행 감사위원, 동아쏘시오 등 유통업과 다소 거리가 멀었던 정 본부장을 영입하는 모험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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