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Minari, 감독 리 아이작 정)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공개된다. /사람엔터테인먼트, A24, Pland B
영화 ‘미나리’(Minari, 감독 리 아이작 정)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공개된다. /사람엔터테인먼트, A24, Pland B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언어나 문화, 물리적 거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힐링 포인트가 되길 바라면서 작업했다. 우린 서로 다 연결돼있다.”

23일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BIFF)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된 영화 ‘미나리’(Minari, 감독 리 아이작 정) 기자회견이 열렸다. 갈라 프레젠테이션은 거장 감독의 신작 또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화제작 가운데 감독 혹은 배우가 직접 참석해 영화를 소개하는 섹션이다.

이날 행사는 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으로 진행된 가운데, 배우 윤여정‧한예리는 부산에서, 배우 스티븐 연과 리 아이작 정(한국명 정이삭) 감독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화상 시스템을 통해 취재진과 만났다.

‘미나리’는 1980년대 아메리칸드림을 따라 미 아칸소주의 농장으로 이주한 한인 가정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데뷔작 ‘문유랑가보’(2007)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올랐던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작 정 감독의 신작으로,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과 배우 한예리‧윤여정 등이 열연했다.  

‘미나리’는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아 해외 유수의 시상식에서 수상 낭보를 전하고 있다. 제36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자국 영화 경쟁 부문(U.S. Dramatic Competition) 심사위원 대상(The Grand Jury Prize)과 관객상(The Audience Award) 2관왕을 차지한 것은 물론, 제8회 미들버그영화제 배우조합상인 앙상블 어워드 부문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오는 11월 5일부터 29일까지 열리는 제40회 하와이 국제영화제(Hawaii International Film Festival)의 개막작으로도 선정된 ‘미나리’는 지난 9월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가 예측한  ‘2021년 오스카 후보 예측’ 작품 중 작품상과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레젠테이션 기자회견에 참석한 ‘미나리’ 주역들. /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레젠테이션 기자회견에 참석한 ‘미나리’ 주역들. /부산국제영화제

‘미나리’는 리 아이작 정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다. 아이작 감독은 “이 영화의 대본 작업을 하면서 ‘마이 안토니아’라는 책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며 “네브래스카 농장에서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인데, 본인의 기억에 대해 진실되게 다가가려는 것에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나도 내 기억을 진실되게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다”며 “1980년대 내가 갖고 있는 기억들을 리스트로 만들었고, 순서를 되짚어보면서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나열해봤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실제 가족들의 이야기고, 이런 과정을 통해 내용을 만들다 보니 다큐가 아니라 픽션 영화가 됐다”고 설명했다.

미국 영화임에도 영화의 제목은 한국어 ‘미나리’다. 이에 대해 아이작 감독은 “시작 때부터 ‘미니리’여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저희 가족이 미국에 갔을 때 할머니가 미나리 씨앗을 가져와 심었다. 우리 가족만을 위해 심고 기른 건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심었던 것 중에 가장 잘 자라고 계속 자랐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할머니가 저희에게 가졌던 사랑이 녹아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며 “‘미나리’라는 제목이 영화 전체에 녹아있는 감정과 정서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신적인 것뿐 아니라, 일상적 이야기도 보여줄 수 있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미나리’를 연출한 리 아이작 정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미나리’를 연출한 리 아이작 정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아이작 감독은 해외 영화제에서 잇달아 좋은 결과를 얻고 있는 것에 대해 감격스러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자랑스럽긴 하지만 비현실적”이라고 놀라워하며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이 각자 자신의 삶과 가족의 관계를 느낀 것 같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과 개인적인 삶을 투영해서 좋아해주는 듯 하다”고 말했다.

또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의 북미 흥행을 언급하며 “‘기생충’이 엄청난 사랑을 받는 걸 보면서, 미국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폭이 더 넓어지고 있구나 생각했다”며 “한국적 콘텐츠가 미국 관객들에게도 연결되고 공감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덧붙여 눈길을 끌었다.

실제 이민자인 스티븐 연은 자신이 연기한 제이콥에 많은 부분 공감했다고 밝혔다. 스티븐 연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면서 그 어느 곳에도 속해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고, 중간에 끼어있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렇다 보니 우리 가족이 훨씬 더 끈끈하게 결속하고 연대했던 것 같다”며 “제이콥을 연기하면서 아버지로서의 나와 내 아버지의 외적인 부분뿐 아니라 내면의 이야기도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녹록지 않은 삶을 이겨내고 아메리칸드림을 이루기 위해 미국에 온 아버지를 더 이해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미나리’에서 열연한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 /부산국제영화제
‘미나리’에서 열연한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 /부산국제영화제

그러면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도 있지만 같이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다”며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배우로서 많이 배우게 된 것은 서로 다 연결돼 있고, 서로가 없이는 안 된다는 거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언어나 물리적인 거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힐링 포인트가 되길 바라면서 작업했다”고 진심을 전했다. 

극 중 대부분의 대사를 한국어로 소화한 것에 대해서는 “한국어 연기를 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무서웠다”며 “처음 윤여정 선생님에게 ‘도와주세요’라고 부탁했다”고 털어놨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을 통해 한국어 연기를 경험했던 그는 “‘버닝’은 단조로운 톤을 만들어 느낌이 다른 한국어를 구사해서 어렵지 않았는데, ‘미나리’는 자연스러운 구어체로 해야 해서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이어 “부모님 말할 때 많이 관찰했고, 아이작 감독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면서도 “한국에서 온 이민자의 대표적인 이미지보다 제이콥이라는 사람 자체에 집중했다. 그의 내면과 제이콥이라면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연기했다”고 말했다.

부부로 호흡을 맞춘 한예리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 스티븐 연은 “한예리와 작업하면서 내가 명확하게 보지 못했던 심오하고 진지한 이야기들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며 “나에게도 좋은 배움의 과정이었다”며 웃었다.

스티븐 연은 이번 영화에 제작에도 참여했다. 이에 대해 그는 “미국인들이 이해하는 한국인과 우리 한국인은 다르다”면서 “우리의 진실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한국인의 모습을 전하기 위해서 영화가 만들어지는 모든 경로에서 컨트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제작에 참여한 이유를 밝혔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윤여정(왼쪽)과 한예리. /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윤여정(왼쪽)과 한예리. /부산국제영화제

한예리와 윤여정은 처음 할리우드 작품에 도전했다. 두 사람은 “할리우드 진출은 너무 거창하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이면서 리 아이작 정 감독에 대한 믿음으로 작품을 택했다고 전했다.

먼저 한예리는 “아이작 감독님을 만났을 때 인상이 되게 좋았다”며 “되게 편안했다. 영어를 못하는데도 소통이 잘 됐고,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극 중 한예리는 아칸소의 황량한 삶에 지쳐 캘리포니아로 돌아가고픈 어머니 모니카를 연기했다. 모니카에 대해서 그는 “한국적인 부분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며 “엄마나 이모, 할머니 등 주변에서 많이 봤던 모습이 모니카 안에 있었고, 감독님과 모니카를 잘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딸과 함께 살려고 미국에 온 외할머니를 연기한 윤여정은 전형적인 한국의 할머니의 모습이 아닌, 자신만의 해석을 더해 더욱 입체적인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윤여정은 “처음 대본을 받고 감독에게 ‘너희 할머니와 똑같이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마음대로 하라고 해서 더 믿음이 갔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전형적인 할머니, 전형적인 엄마 그런 연기를 하고 싶지 않다”며 “조금 다르게 하고 싶었고, 전형적이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아이작 감독이 나를 믿어줘서 잘 할 수 있었다”고 아이작 감독에게 공을 돌렸다.

이날 윤여정은 ‘미나리’를 위해 함께 해준 많은 사람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 훈훈함을 자아내기도 했다. 윤여정은 “우리는 엔딩크레딧에 이름이 올라가지만, 올라가지 않은 많은 사람들과 많은 가슴이 모여서 만든 영화”라며 “한국인이라는 것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이 작품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자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고 전해 눈길을 끌었다.

‘미나리’는 이날 오후 8시 부산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공식 상영돼 국내 관객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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